천안함 46용사의 묘비엔 2줄의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 전사. 그리고 또 한 줄. 2010년 서해 NLL 사수작전 수행. 생(生)은 다르나 몰(歿)은 같은 묘비에 참배하는 이들의 가슴은 먹먹해진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오늘에도 많은 사람이 46용사의 묘역을 찾는다. 젊은 넋들의 뜻을 되새긴다.

천안함 46용사가 안장돼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군장병에서 학생, 일반시민 등 각계각층의 참배객들이 일년 내내 줄을 잇는다.
천안함 46용사가 안장돼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군장병에서 학생, 일반시민 등 각계각층의 참배객들이 일년 내내 줄을 잇는다.

지난 3월 15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이하 현충원)에 들어서자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추모 천안함 피격 1주기 천안함을 잊지 말자!’ 지역의 한 시민단체가 걸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천안함 46용사와 실종 장병을 수색하던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가 안장돼 있는 현충원은 한적했다. 갑작스런 꽃샘추위 탓인지 인적조차 드물었다.

“잊히다니요.”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이 말했다. “천안함 46용사를 참배하는 분들은 많게는 하루에도 수백 명에 이릅니다. 군부대나 학교 등에서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경우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찾는 일반시민들의 참배도 줄을 잇습니다. 요즘엔 천안함 1주기가 다가오면서 언론의 문의도 쇄도하고 있죠. 지금도 한 방송사가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46용사는 사병제3묘역의 한 곳에 조성된 ‘천안함46용사묘역’에 안장돼 있다. 줄을 맞춰 서 있는 46기의 묘비에는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2010년 서해 NLL 사수작전 수행’과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 전사’가 그것이다.

차가운 날씨 탓에 참배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지레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후가 되면서 군부대 장병과 일반시민들의 참배가 줄을 이었다. 봉사활동을 왔다는 회사원들도 이곳을 찾았다.

생전에 용사들과 안면이 있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참배객들의 표정은 피붙이의 무덤을 찾은 듯 처연했다.

“내 자식의 일인 듯 애틋하죠”

자식 기르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제 자식을 넘어 생면부지의 젊은 넋들에게도 닿아 있었다. 현충원 인근에 거주한다는 한 시민의 말이다.

“집이 가까워서 종종 찾아요. 내 자식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제 아이들과 나이도 비슷하고, 제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니던 용사도 있습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서울에서 왔다는 또 다른 참배객이 거들었다. “천안함이 피격됐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의 놀란 가슴을 어떻게 잊겠어요. 당장 전쟁이 날 것 같이 불안했죠. 저는 그나마 아들들이 제대를 해서 괜찮았지 아들이 아직 복무 중인 부모들 마음은 어땠겠어요. 제 친구 아들이 당시 입대했는데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더라고요. 그때 마음이 자꾸 생각나서 한 번 가야지 가야지 벼르다가 오늘에야 찾았네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스러진 46용사의 넋을 기리는 데는 종교의 경계도 없었다. 이날은 대전시 옥계동성당의 신자들이 단체로 참배를 왔다. 윤필수(대전시 거주)씨는 “봉안식을 치른 뒤 가끔 이곳을 찾는다”며 “벌써 1주기가 다가온다니 마음이 더 아파서 신도들을 모시고 왔다”고 말했다.

꽃샘추위는 바람을 동반했다. 변덕꾸러기처럼 방향을 바꿔 가며 바람이 묘역을 훑고 지나갔다. 거친 기세의 바람을 헤치고 일군의 참배객이 나타났다.

인근 32사단 장병들이었다. 이제 막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들이었다. 천안함 용사 중에도 이등병 신분의 장병이 여럿 있었다. 이들을 인솔하고 온 H원사의 설명이다.

추모 사진전에 몰리는 참배행렬

“신병교육의 일환으로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 군생활이 아직 낯선 신병들이 참배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군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를 위해 산화한 선배들의 헌신을 되새기며 소명의식을 다지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4시간 정도를 머무는데 신병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육군 32사단은 천안함 46용사 참배를 신병 교육의 필수코스로 삼고 있다. 오른쪽은 고 한주호 준위의 묘비.
육군 32사단은 천안함 46용사 참배를 신병 교육의 필수코스로 삼고 있다. 오른쪽은 고 한주호 준위의 묘비.

천안함 46용사 묘역 곁에는 ‘장교 제3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실종 장병을 수색하다가 숨을 거둔 한주호 준위가 이곳에 안장돼 있다. 그의 묏자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른 선열의 묘와는 얼른 봐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먼저 묘비를 받치고 있는 묘단의 생김이 다르다. 돌이 아니라 넓은 합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위엔 꽃다발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주변에서 묘역을 정비하고 있던 한 직원의 설명이다.

“원래는 다른 묘단과 똑같이 만들었죠. 지금도 저 합판을 걷어 내면 똑같은 묘단이 나옵니다. 합판 묘단은 워낙 참배객이 많아서 만들었어요. 꽃을 놓을 자리가 부족했거든요. 지금도 참배객이 많지만 안장 초기에는 하루에 천 명 이상이 다녀갔습니다.”

묘역 외에 최근에는 참배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 하나 더 생겼다. 정문에서 가까운 보훈미래관 2층 야외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천안함 46용사 1주기 추모 특별 사진전시회’가 그것이다.

현충원은 천안함을 기억하는 행사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개최하고 있다. 천안함 용사들이 가진 남다른 의미 때문이다. 특히 유족에 대한 애정이 깊다. 지난해 11월 개최한 ‘보훈 사랑 현충원 길 걷기 대회’에 유족을 초청하고 연말에는 유족과 함께 송년회를 가지기도 했다.

홈페이지(www.dnc.go.kr)를 통해 지속적으로 천안함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 3월 15일 현재 사진전과 함께 추모 글짓기 공모전도 진행하고 있었다. 권 원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천안함 용사들의 희생이 쉽게 망각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잊히지 않아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익숙해서 자유와 평화가 거저 얻어진 것으로 여기는 풍조에서 천안함 46용사의 희생은 큰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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