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건설전문 건설사의 퇴출 이후 최근 중견그룹 계열 건설사의 줄도산이 이어지면서 건설업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룹 계열 건설사의 경우 그룹의
자금지원을 기대할 수 있고, 자금 조달 여건도상대적으로 양호해 최근 건설경기 침체 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할 것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다음달
채권은행의 추가 구조조정예고되면서 건설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택
전문업체에 이어 그룹사를 대주주로 둔 건설사들마저 줄줄이 무너지고 있는상황에서 추가 구조조정이 있을 경우 시장에 미칠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업계에는 중견 건설사의 퇴출이 계속될 경우 건설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룹
인수 건설사 '5년을 못간다' = 시공능력평가 47위의 LIG건설은 지난 2006년 LIG그룹에 인수된 지 5년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보험ㆍ증권 등
금융전문 중견그룹인 LIG그룹이 건영을 인수할 당시만해도 금융과 건설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옛 '건영'의 부활을 꿈꿨지만 결과는 '법정관리'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LIG그룹은 부실 계열사의 '꼬리 자르기'라는 비난과 함께 지난 21일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 600억원의 기업어음(CP)을 발행한 사실 때문에 그룹의 도덕성까지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 2008년
효성그룹에 인수된 진흥기업은 지난달 중순과 이달 초 잇따라 최종부도 위기에 처하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그룹의
자금 지원으로 가까스로 부도는 면했지만 부실 규모가 커 자력 생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이 회사는 현재
워크아웃을 추진중이다.

지난 2008년
대한전선의 계열사로 편입됐다가 그룹의 지원을 못받고 2년여만에 워크아웃 신세가 된 남광토건도 비슷한 경우다.

작년 워크아웃 직전까지 모기업의 지원을 기대했지만 대한전선 역시 재무구조개선약정 기업이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다.

대아그룹이 2004년 인수한 경남기업도 '그룹 계열사'라는 이름이 무색한 상황이되며 인수 5년만에 워크아웃 대상이 됐다.

근래 중견 그룹사에
인수합병된 건설사들이 대부분 5년도 못넘기고 다시 부실화된 셈이다.

기존 중견그룹의 계열 건설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한일시멘트그룹 계열의
한일건설, 이수그룹 계열의 이수건설,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 등이 잇따라 자금난을 겪으며 워크아웃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한솔그룹 계열 한솔건설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건설경기 침체, 모그룹 '꼬리자르기' 합작품 = 중견 그룹 계열 건설사들의 일차적인 부실 원인은 주택ㆍ건설경기 침체의 장기화다.

LIG건설은 최근 수년간 수도권 각지에서 총 8천9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을 벌였으나 주택경기 침체로 착공도 못하고 영업이익보다 많은 이자를 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진흥기업 등 다른 건설업체들 역시 사정
이 비슷하다.

여기에 준공 후 미분양까지 쌓이면서 자금줄이 막히자 모그룹도 점점 늘어나는 차입금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손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 김관수 실장은 "결국 주택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면서 "부동산경기 침체로 집을 지어도 팔리지 않으니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건설업체들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주택과 함께 건설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공공
공사 물량도 감소하면서 중견 업체들은 사실상 '솟아날 구멍'이 없는 실정이다.

건설산업연구원 김영덕
팀장은 "과거 시장이 성장세를 타고 수익이 충분히 보장될 때는 PF 리스크감수하면서 사업을 확장했지만 이제 주택ㆍ개발사업의 부담을 건설업체가 떠맡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룹에 인수된 중견 건설사들이 인수된 지 5년도 못돼 줄줄이 쓰러진 것과 관련해 인수기업의
경영능력과 도덕성을 탓하는 시각도 많다.

건설업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그룹사가 외형 확장을 위해 건설사를 인수한 뒤 부실 또는 방만 경영으로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회사가 부실화되자 냉정하게 잘라버리는 식이다.

최근 LIG건설의 기업어음(CP)을
매입투자자들은 LIG그룹이 일방적으로 LIG건설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에 반발해 법정 소송을 제기하
기로 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LIG건설 사태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산물"이라면서 "건설을 잘 모르면서
무턱대고 인수한 뒤 경영부실의 책임을 피인수기업에 떠넘기고 손을 딱 끊는 모양새가 씁쓸하다"고 전했다.

한 민간
연구소의 관계자는 "건설사의 부도는 결국 입주민,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며 "인수기업에 대한 무한책임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모그룹의 배경을 보고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한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회사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차례는 누구'..내달 추가 구조조정 예고 = 그룹 건설사가 잇따라 좌초하면서 건설업계에는 벌써부터 다음 퇴출 기업을 점치는 '블랙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최근 주택 미분양이 늘고 있는 STX그룹 계열
STX건설의 부도설이나돌아 해당 업체가 적극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STX건설의 부도 루머로 STX그룹은 물론
대형 건설업체의 주가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룹사가 인수한 중견 건설사들마저 잇따라 휘청거리면서 작은 루머 하나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다음달 채권은행들이 4월부터 일제히 정기 신용위험평가에 들어가기로 하면서 추가 구조조정에 대한
공포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다음달 말까지 기본평가를 마무리해
세부평가 대상 업체를 선정하고 5~6월 이들 업체를 종합 평가해 A(정상), B(일시적 유동성 부족), C(워크아웃), D(법정관리) 등급을 나눌 방침이다.

C, D등급을 받은 기업은 채권단과 협약을 맺고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건설업계과
금융권은 최근 건설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있어 지난해 B등급을 받아 구조조정을 면한 업체라도 올해 등급이 하락하는 곳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과거
신용평가에서 B등급(일시적 유동성 부족) 판정을 받았던 동일토건이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워크아웃 중이던 월드건설은 법정관리로 추락한전례가 있다"며 "이번 평가에서 어떤 건설사가 C,D 등급을 받게 될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부도 건설사가 계속해서 늘어날 경우 건설 및 주택 공급시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상위 10개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건설사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주택사업을 주로 했던건설사들이 줄줄이 무너지면 앞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