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차 수제화 장인, JS 슈즈디자인 전태수 대표

[중앙뉴스=오은서 기자] 오랫동안 한 가지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이라고 부른다. 화려하지 않지만 순박하고 감동적인 삶을 살며 우리 문화의 일부분이 된 장인. 그들이 손수 만든 제품 속에 삶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중앙뉴스>에서는 열세살 때 서울로 올라와 신발 만드는 기술로 손님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신발을 만든 50년차 구두명장, JS 슈즈디자인 전태수 대표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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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만드는 기술로 손님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신발 명장 전태수 대표. (사진=오은서 기자)

먹고살기 힘든 시절, 구둣방 견습생, 고된 서울살이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어요. 사남매 중 셋째였는데 그 당시는 우리 형제들은 늘 배고팠죠.  아버지는 하루종일 불과 씨름하며 수천 번 무거운 쇠붙이 메질을 했고 어깨며 팔이 성한 날 없었어요. 집 근처에 사찰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서울에서 구둣방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내려왔어요. 아버지의 고된 일을 답습하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는 나를 견습생으로 딸려 보냈어요. 그때 부터 내 신발이 내 운명이 되버린 거죠.

서울역 뒤 염천교라는 곳에 구둣방 가게가 있었어요. 열세살 때 올라와서 아주 혹독하게 일을 배웠어요, 월급도 없이 숙식만 제공받고. 하루종일 풀칠만 했던 견습생, 저음질만 했던 중견습생, 미싱일만 했던 상견습생을 거쳐 4년만인 열일곱살 때 드디어 '선생님'이 됐어요. 그때 첫 월급도 탔어요. 

가족과 떨어진 서러움, 작업하며 혼나기도 일쑤였고 고된 노동에 지치기도 했지만 내게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집념이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게 했고 성장시켰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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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이 꽉 끼면 늘리고 크면 깔창을 까는 건 잘못된 습관. (사진=오은서 기자)

명동의 고급 신발매장에서 수제화에 대한 첫 영감 얻어
그당시 명동에 '팬시 부띠끄'라는 고급신발매장이 있었어요. 파충류 가죽처럼 진귀하고 질 좋은 재료만 사용해서 명품구두를 만드는 가게였는데 십여년 넘게 근무했어요. 그곳에서 명품신발을 분해하며 다양한 손님의 성향을 체험하며 실제 신발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죠.

그러다가 이태리, 홍콩 등 해외로 출장가서 선진화된 신발 시스템을 접했고 우리나라 신발이 기능이나 디자인에서 많이 떨어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발이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수제화에 대한 사명감의 싹을 틔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전까지 일반 구둣방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지녔던 신발에 대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계기가 된거죠.

신발이 꽉 끼면 늘리고 크면 깔창을 까는 건 잘못된 습관
신발은 속이 중요합니다. 걷거나 서 있을 때 발뒤꿈치부터 무게가 가해지고 엄지발가락 쪽도 몸무게의 힘을 받게 되니 신발 속을 균형에 맞게 설계해야 발 건강에도 좋습니다.

그래야 내 몸을 지탱하는 안정된 신발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겉에 보이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신발을 만들면 그 속의 균형에 맞지 않아 오래 걷거나 서있으면 발이 불편하고 건강에도 무리가 가죠.

사실 1970년 중후반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신발산업은 큰 호황을 누렸죠.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으로 만들어진 남성·여성 구두와 캐주얼화가 전국적으로 잘 팔렸지만 그 당시 신발 컨셉은 발의 건강이나 편안함이 아니라 이른바 ‘싸고 멋진 신발’ 즉 멋부리는 신발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손님은 발뒤꿈치가 까지고 발가락이 퉁퉁 붓고 아파도 참고 신었어요. 하지만 신발이 작으면 늘려서 신고 크다고 깔창을 깔아서 신는 건 잘못된 습관입니다. 정말 좋은 신발은 처음 신었을 때 발에 잘 맞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손님 한분의 소중한 사연을 담은 JS 수제화. (사진=오은서 기자)

신발에 '진심' 담지 않으면 장수할 수 없다
1991년에 신발공장을 열어 신발을 납품했습니다. 그때 유명 S브랜드가 핸드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회사 대표는 여성고객을 겨냥해서 구두도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제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고급재료로 심혈을 기울여 수제화를 만들었고 S브랜드 수제화는 편안한 기능과 디자인, 품질력까지 골고루 갖추면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렸어요.
그러나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고, 매출이 늘어나자 S브랜드 대표는 구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저는 구두의 품질 때문에 좋은 원료를 써야 해서 단가를 낮출 수 없었어요.

결국 그들은 값싼 구두 재료를 찾기 위해 중국에 있는 회사로 납품업체를 바꿨고 그 이후 5년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진심이 아닌 신발은 만들지 말자. 고객은 체험해 보면 바로 아니까.
옷은 일주일에 몇번씩 갈아입지만 신발은 보통 하루 또는 며칠 동안 신지 않습니까. 고객들은 신발이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 느끼는 영민함이 있어요. 한번 신어보고 발이 편안하면 또 그 신발가게나 그 브랜드를 찾는 건 당연하죠.

내가 하는 이 일에 진심을 담지 않으면 고객은 금방 알아요. 트렌드 쫓아서 겉모양만 화려하게 꾸민 신발은 몇 번 신다 버려져요. 손으로 만들었다고 다 같은 수제화가 아니죠. 좋은 재료, 손님 개개인의 발 균형을 맞춘 안정적인 신발 설계, 정성을 다해 신발을 다듬는 태도까지 다 수제화에 녹아있어요.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고 명품 수제화를 고르는 고객은 신발 속에 녹아있는 장인의 가치관과 노력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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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구두 만드는 기술' 이라는 전 대표가 만든 수제화 (사진=오은서 기자)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기술은 살아있더라
신발공장을 운영하던 90년대 중반시절, 하루에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정도 주문이 들어왔고 그만큼 물량을 제작해서 납품했습니다. 그러나 IMF 사태가 발생하자 떼이고 못 받은 가계수표와 어음이 십억이 됐고 부도가 났어요. 통장에 잔고 없이 빈털터리가 되자 가족이 흩어지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가족도 돈도 다 잃고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도 희망은 '구두 만드는 기술'이었어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십대 시절 빈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기술 하나로 수십년을 살았던 힘든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재기에 힘썼어요.

다행히 기술을 인정해준 업체에게 천만원을 미리 받고 기본생계를 유지하며 다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직원으로 들어갔지만 주인의식을 갖고 밤늦게까지 야근하며 계속 일했어요. 꿀벌처럼 밤낮으로 일하는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았고 스카웃 제의도 받게 됐죠. 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하루에 2000켤레 신발을 만드는 포천의 한 신발공장으로 당시 청계천 상가에 신발을 납품하던 업체였는데 7년을 더 일했어요.

그렇게 수십년간 구두에 대한 경험과 안목, 대중성, 신발을 만드는 노하우를 계속 쌓으면서 확신이 생기자 2014년에 드디어 제 이름을 따서 공장겸 매장인 JS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영분인이 신을 구두를 만들어서 감사했다
이곳은 구두를 만들면서 판매도 하며 일반인에게 알려졌고 작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 보좌관들이 청와대에 저를 초청해서 영분인의 구두를 만든 장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정숙 여사가 발이 편하다고 칭찬한 수제화를 제작해 화제가 된 것인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 마음입니다.

성수동은 2012년 서울시에 의해 수제화산업특화지역으로 지정됐는데 2016년  성수동  제1회  대한민국 수제화 명장 선발대회가 열렸고 20년 이상 수제화 분야에서 종사한사람들이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1호 명장으로 인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같은 해에 ‘서울 학생 직업체험 교육기부 인증기관’이라는 정부지원교육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수제화를 배우고 싶어하는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1년간 교육봉사로 재능기부도 했어요. 그때 제가 설계한 신발을 직접 디자인해서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을 보면 참 뿌듯했습니다.

손님 한분의 소중한 사연을 담은 JS 수제화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소아마비 걸린 분이 자녀분 결혼식 때 편안하게 신을 특별한 신발을 맞춤 제작하러 왔을 때입니다. 완성된 신발을 신어보고 너무 편하다고 환히 웃는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았죠.

무대에서 공연을 앞둔 분이 발이 편하고 특별한 디자인을 주문하는 경우부터 해외여행을 가는데 오래 걷기 위한 편한 신발을 주문하는 분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한분한분의 이야기가 다 수제화에 녹아들어 JS 만의 특별한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매일의 노력을 소중히 생각하며 젊은층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소통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고객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구두를 만들면서 또 구두를 배웁니다. 신발을 주문하고, 찾으러 오고, 신어보고 만족해서 또 찾아오는 고객님들과의 만남이 제가 구두라는 기술을 평생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착용감이 좋은 구두를 설계하기에 앞서 고객 미처 말하지 못한 내면의 요구사항까지 파악하는 것이 명장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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