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펴낸 나호열 시인

아무개

나호열

 

머리도 뎅강 쳐주고 꼬리도 사정없이 잘라주세요 몸통 속의 오장육부도 뼈도 아끼지 말고 발라주세요 자, 뭐가 남았나요 이제 아무개라고 불러주세요 아무개야 근본도 모르고 씨도 모르는 것이 치욕이 뭔지 몰라도 거세한 수컷의 해방감이 뭔지는 알 것 같아요

지화자!

 

-나호열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에서

---------------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같다. 나호열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의 제목처럼...

울컥 무언가 치밀어 쏟아낸 듯 속이 시원하다. 그래, 간이고 쓸개고 다 무허가 전당포에 맡겨야 인생을 살기 쉽다. 빤히 보이는 권모술수도 비수를 감춘 악수도 웃음도 울음까지도 질끈 잘 체면 차리면서 넘어가주자. 처세술이 늘어갈수록 인생이 편해진다. 신나게 흔들어대던 내 꼬리가 피곤한 밤이면 그 꼬랑지 뎅강 잘라내고 어느 무인도나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 혼자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아주아주 먼 옛날 원시 시절의 우리는 걸친 것 없이 계급도 이름도 없는 아무개여서 자유로웠다. 마늘과 쑥을 먹고 얻은 인간이라는 허울을 쓰고부터 욕망과 밥그릇 그리고 체면 전쟁은 시작되었던 것,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어지럽고 답답한 현실이다. 이 작은 몸뚱이에 치렁치렁 걸친 것들 다 떼어 던지고 아무 개(犬)가 되어 컹컹 짖어보고 싶다. 한번쯤은 목청껏 시원하게 말이다.

어쩌면 한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의 애환이 절절하게 깔려 마초의 뼛속으로 흐르는 눈물이 미루어 읽히는 시인의 절규 같은 시다. 짧은 위 시가 주는 파장이 한동안 지속될 것만 같다. 시 한 수가 주는 기쁨이요 카타르시스이다. 반복해서 자꾸 음미할수록 해방감이 전이되는 축축하게 맛깔진 시에 잠시 머물러보자.

[최한나]

----------------

나호열 시인 /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 『촉도 눈물이 시킨 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외 다수

최한나 기자
최한나 기자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