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서영 시인

 

 

은신처

박서영

 

숨을 곳을 찾았다

검은 펄 속에 구멍을 내고 숨은 지렁이처럼

침묵은 아름다워지려고 입술을 다물었을까

분홍 지렁이의 울음을 들은 자들은

키스의 입구를 본 사람들이다

그곳으로 깊이 말려 들어간 사랑은

흰 나무들이 서 있는 숲에서 통증을 앓는다

입술 안에 사랑이 산다

하루에도 열두 번

몸을 뒤집는 붉은 짐승과 함께.

 

----------------

인간에게 정직한 은신처란 어디일까?

한 시인의 부음을 접하고 그 시인이 남긴 시들을 다시 읽어보며 아린 묵념을 여기에 놓는다.

이제 아프지도 고단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영원한 은신처를 그녀는 찾은 것일까!

그렇다고 나는 끄덕이고 싶다.

아니 끄덕인다. 그곳에서는 부디 어둠에게 들키지 말기를 빌면서...

분홍 지렁이의 울음이 흰 나무숲을 울리다가 성급히 떠난 자리를 바라본다.

그곳에서 그녀의 시와 펜이 편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하며 시인이 남긴 시 한 수 다시 음미해 본다. 동병상련의 통증을 오늘은 마냥 지긋히 들여마신다. 사람은 떠났어도 노래들은 가슴에 남아 숨 쉰다는 것이 남은 자들에게 위로라면 위로이려니.

[최한나]

----------------

박서영 시인

1968년 경남 고성 출생.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좋은 구름』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