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적으로 간주하고 전면적인 폭격 시도, 육해공 모두 동원, 전투기 폭탄 장전 대기, 헬기사격 확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군대가 외국의 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국민을 학살했다면 이보다 끔찍한 일이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이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8월 JTBC의 보도를 통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공군 전투기가 폭탄을 장전한 채 출격 대기 중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5.18 민주화운동특별조사위원회>가 7일 5개월 만에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군 수뇌부의 헬기 출동 지시가 있었고 사격까지 가해졌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의혹으로 제기되던 전투기 대기, 헬기사격 등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위원장은 의혹으로 제기되던 전투기 대기, 헬기사격 등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특조위에 따르면 당시 출격 대기 중인 전투기들이 대북용이라거나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만 특조위는 강력한 권한이 없는 한계 때문에 민주화운동을 폭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직접적인 문건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전투기 비상대기가 있었고 이게 광주 진압 작전과 연관성이 높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건리 특조위원장은 이날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1980년) 5월21일과 5월27일 광주 시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며 “공군은 수원 제10전투비행단 F-5 전투기들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 A-37 공격기들에 각각 MK-82 폭탄을 이례적으로 장착한 채 대기시켰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황영시 당시 계엄사령부 부사령관부터 내려진 헬기사격 지시 지휘계통과 더불어 사격용으로 20mm 발칸이 적합하다는 방침이 담겨진 문건까지 공개했다. 윤자중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광주비행장에 전투기 2대와 수송기 1대를 비상 대기시켰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결론을 낸 근거로 ‘당시 목격자 및 군인들의 증언·전일빌딩 탄흔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헬기사격 명령권자의 지시내용과 문건’ 등을 제시했다. 

또한 당시 미군의 조기경보기 AWACS(에이왁스)와 핵항모 2척이 한반도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수도권을 방어해야 할 지상군 병력이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려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며 “그 상황을 미국이 안 것”이라고 말했다. 

특조위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및 보안사 문건 등을 조사한 결과 출격대기 중인 전투기가 북한에 대응한 훈련용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위원장은 “무장장착 훈련·실무장 투하 준비·대간첩 작전과 같은 4가지 주장은 모두 적절하지 않다”며 “MK-82 폭탄은 공대지 수단인데 북한 지상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전쟁이 임박한 상황이 아닌 이상 쉽게 상정하기 어렵고 공대지 폭탄을 장착해서 상당 시간 대기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육해공을 동원할 실질적은 권한은 누구에게?

특조위는 공군과 해군의 개입까지 확인했고 이에 따라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육해공 전군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위원장은 육해공이 동원되어 진압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위원장은 육해공이 동원되어 진압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위원장은 “평상시 운항방법과 달리 광주기지에 입출항하는 항공기는 광주 시내 상공을 통과하도록 지시했고 해상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해군 함정을 출동시켜 목포 항만에서 해경과 합동으로 해상봉쇄작전을 전개했다”며 육해공이 동원된 합동 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 이후 당시 상황을 봤을 때 전군을 동원할 실질적인 군통수권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 밖에는 없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되면서 빠르게 군부 실력자로 떠올랐다. 이어 10.26 직후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퇴출시키고 육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통해 1979년 12월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대한민국 군조직을 장악했다. 

군조직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을 ‘신군부’라 했을 때, 신군부는 1980년 5월17일 정권 장악을 위해 비상계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등 쿠데타에 성공했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보안사령관에 불과했지만, 지휘계통을 뛰어 넘어 전국 92개 대학에 계엄군 병력 중 93%인 2만2342명을 배치하게 했고 대학생들의 집회시위를 탄압했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 세력의 실권자로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에 올랐다.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모두가 알고 있고 이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이 당시 5.18 진압의 총 책임자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고 관리통제를 했다는 명백한 문건과 증거가 없어서 현재까지 집단 총기 발포 등 실제 명령권자를 밝히지는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 위원장은 “육군기록정보관리단이 전폭적으로 모든 자료를 제공했다”고 말했지만 “일부 기관의 비협조와 강제조사권이 없어서 자료 확보와 면담조사에 많은 제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완벽한 진상규명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을 토로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원내 5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민주평화당·바른정당·정의당)은 전부 5.18특별법을 통과시키거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논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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