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사장과 노조의 갈등이 극에 달한 이유, 결국 공영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게 문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막했다. 그러나 방송사는 파업을 풀지 않았다. 

언론인은 파업을 풀지 못 한 이유를 두고 “올림픽 외에 다른 중요한 취재거리는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 돌아봐야 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한 다른 언론인들도 “우리가 어떻게 망가져왔는지를 똑똑히 봐왔다”고 증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가 9일 10시 서울 상암동 YTN 사옥에서 파업집회를 열었다. 노조는 “내가 YTN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YTN 구성원 개개인들의 자율적인 판단과 해석이 보도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인 만큼 보도국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철학이 반영돼 있다.

노조가 내건 구호로 구성원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조가 내건 구호로 구성원 개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조는 YTN 사옥 내부 로비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조는 YTN 사옥 내부 로비에서 파업 집회를 열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상엽 YTN 촬영기자는 기자와 만나 “YTN은 내부에서 데스크와 평기자 간에 격렬하게 토론하면서 뉴스를 만들어내는 문화가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 기자는 지난 9년 동안 그런 문화가 서서히 퇴색되어갔고 이제 다시 정상화가 이뤄지는 와중에 난국을 맞았기 때문에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파업에 돌입한지 9일째 되는 날이고 올림픽이 시작됐고 넉 달 후에 지방선거가 있다. 24시간 뉴스를 방송해야 하는 YTN 구성원들 입장에서 부담이 없을 수가 없다. 

이 기자는 “노조 내부에서도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며 “MB(이명박 전 대통령)나 국정농단 때 우리가 제대로 보도했는지 반성해보면 그렇지 못 했다”고 밝혔다.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YTN이 올림픽 말고도 공적으로 꼭 보도해야 할 중요한 이슈를 그동안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인데 올림픽 기간에만 파업을 잠깐 풀고 다시 파업을 재개하는 대안을 고민했지만 더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YTN 빌딩이 있는 서울 상암동 전경. (사진=박효영 기자)
YTN 빌딩이 있는 서울 상암동 전경. (사진=박효영 기자)

YTN은 1995년 국가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에 의해 창립됐다. 24시간 뉴스전문 채널로서 시청자에게 각인된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였다. YTN은 광고도 건너뛰고 24시간 내내 가장 적극적으로 심층 보도를 이어갔고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4년 JTBC가 세월호 참사의 배경과 정부 책임을 파고들고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도를 하면서 영향력을 얻기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YTN은 공영방송의 성격이 강하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연합뉴스가 YTN 경영에서 손을 떼고 ‘한국전력공사·KT&G·한국마사회·우리은행’ 등 공기업이 YTN의 최대 주주가 됐고 그런만큼 KBS와 MBC처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 기자는 <돌발영상> 등 다른 언론사가 하지 못 하는 YTN만의 보도가 살아있던 시절에 입사해서 열심히 일했다면서, 그때 그 자부심이 땅에 떨어진지 오래됐다고 푸념했다. 

최남수를 사장으로 반대하는 이유

노조는 물이 100도에서 끓듯 이미 99도가 된지 오래다. 파업의 직접적인 명분으로 꼽는 것은 최남수 YTN 사장의 일방적인 ‘노사 합의 파기’이고 더 이상 최 사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사장이 물러나는 길 말고는 YTN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최남수 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최 사장이 물러나야 하는 이유로는 △노사합의 파기 △SNS 성희롱 △노조를 향한 공격 △이명박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한 옹호 등이 있다. 

이날 집회에는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와 추혜선 의원이 지지 발언차 참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집회에는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와 추혜선 의원이 지지 발언차 참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조는 최 사장이 물러나야만이 파업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조는 최 사장이 물러나야만이 파업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보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지난해 8월28일 노종면·조승호·현덕수 등 YTN 해직기자가 복직되면서 MBC·KBS 보다 먼저 갈등의 사슬이 풀리는가 했는데, YTN은 두 공영방송의 파업이 끝난지 한참 된 상황에서도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노사의 불신은 매우 깊다.

11월5일 최 사장이 진통 끝에 YTN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사장으로 내정됐다. 노조는 최 사장이 주요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지만 끝내 막지 못 했고 이후 노사 간의 협상이 시작됐다. 

11월30일 전 YTN 노조위원장 출신인 노종면 기자가 보도국장으로 내정됐다. 노 기자는 최 사장에게 보도국 정상화 등 YTN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달라 요구했고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보도국장직을 거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보도국 정상화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박진수 현 노조위원장과 최 사장이 접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 했고 노 기자는 보도국장직을 거부했다. 

노조는 원래 최 사장을 반대했던 만큼 강하게 반발했지만 절차를 거쳐서 내정된 사장을 마냥 보이콧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노조의 파업 카드가 있고 최 사장은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라 파행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12월24일 김환균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의 중재로 박진수 위원장과 최 사장이 3자 회동을 가졌다.

여기서 인사문제를 비롯해서 노 기자를 다시 보도국장에 내정하는 등 일련의 합의가 있었고 관련 녹취록도 공개됐는데 최 사장이 이를 지키지 않아 더 이상 못 참고 파업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2월2일 노조가 대표이사실에 찾아갔고 이 자리에서 노종면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2월2일 노조가 대표이사실에 찾아갔고 이 자리에서 노종면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캡처사진=YTN 노조)

최 사장은 2일 MBC <뉴스투데이>에서 “노조의 녹취록이 조작됐다”고 주장했고 7일 tbs <뉴스공장>에서는 “그런 합의가 없었고 그러니 합의 파기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 사장은 뉴스공장에서 “노종면 기자는 그 전에 한번 지명을 했는데 거부했고 또 나에 대한 전면퇴진 운동을 쭉 벌여왔던 후보라 좀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왔다”며 사실상 노 기자를 보도국장에 임명하는 것을 부적절하게 생각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최 사장은 3자 회동 당시 여러사항을 담은 문서 합의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중에 갑자기 노 기자 보도국장 내정 문제가 제시됐는데 이때 구두로 이야기한 것은 합의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상엽 기자는 그동안 “구두합의도 합의로 인정돼 왔고” 녹취파일도 있는데 구체적으로 합의가 있었다 없었다를 가지고 따지고 들 정도로 최 사장이 보도국 정상화와 YTN 적폐청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의 경우도 2010년 당시 노조가 출근을 저지하자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에게 “MBC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후 결과를 놓고 봤을 때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의 “큰 집 쪼인트”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말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 언론계의 중론이다. 

마찬가지로 최 사장은 YTN 노조가 강조하고 있는 보도국 정상화 문제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 사장은 노조가 요구하는 근본적인 언론 독립의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디테일만 강조하고 있다. 

최 사장은 뉴스공장에서 이 기자가 주장한대로, 3자 회동 당시 했던 말의 토씨 하나 하나에 신경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노조가 자신에 대해 가한 공격이 도를 넘었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은 “불법적인 방식으로 출근 저지하고 지난 금요일(2일)에 4시간 반 동안 거의 감금된 상태에서 불법린치를 당했다”며 “온갖 욕설·고성·폭언·폭행이 없는 걸 다행으로 알라는 얘기까지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2일 최 사장과 노조가 대치했고 노조는 최 사장에 요구사항을 호소했다. (캡처사진=YTN 노조)
2일 최 사장과 노조가 대치했고 노조는 최 사장에 요구사항을 호소했다. (캡처사진=YTN 노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조는 2일 YTN 대표이사실에서 면담을 요청했지만 최 사장이 나오지 않자 3시간 반 동안 기다렸다. 최 사장이 결국 문을 열고 나왔고 이때 1대 다로 “합의가 없었다고 왜 거짓말 했냐”는 등 그런 식의 추궁을 들었다. 

최 사장은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노조는 그동안 답답했던 문제에 대한 호소를 쏟아냈다. 

다시 한번 돌아가보면. 최 사장은 △보도국장 문제도 문서합의로 했어야 했다 △(보도국장 문제는) 회사에 1월3일까지 답을 주겠다고 했지 노 기자를 내정하겠다는 확답은 아니다 △여러 보도국장 후보들 중 노 기자는 사장의 인사권을 침해했고 해직기간이 길어 취재경험이 풍부하지 않아 보도국장으로 부적절하다는 등의 사유를 내세우고 있다.

더불어 최 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YTN 공정방송 투쟁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함께 못 해서 미안하다”고 발언했지만 출근 저지를 이유로 노조원 12명에 대해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노사 간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조는 이미 배수의 진을 쳤다. 3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지만 파업을 감행했을 정도다. 이 와중에 자진사퇴를 촉구하기 위해 사장실로 찾아갔고 최 사장과 맞닥뜨린 것이다. 흥분하지 않고 이야기하기 어렵지 않을까. 

이 기자는 최 사장이 꼬투리를 잡고 있는 인사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 “노조가 사장의 인사권 자체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핵심은 “보도국장 등 중요한 인사가 결정될 때 구성원의 의사가 폭넓게 반영되어야 하고 그렇게 선임된 보도국장이 보도국 내부 인사를 진행할 때 사장이 보도국장의 인사권을 존중해달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언론사의 보도편집국 인사는 경영진이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사를 반영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언론계 추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렇게 뽑힌 보도국장이 독립적인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임명제청권’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기자는 “이게 어떻게 사장의 인사권을 침해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최 사장의 언론플레이와 여러 주장들에 일일이 반론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더 이상 최 사장과의 협상은 무의미해서 파업을 한 것”이라고 말해 즉각 사퇴 외에는 파업을 해제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내서라도 파업하는 이유

이 기자와 긴 시간 인터뷰를 했다. 이 기자는 YTN 구성원들이 느끼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괴감’을 호소했다. 젋은 후배 기자들부터 고참 기자들까지 조합원들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라도 이번 파업을 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이 기자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9년 동안 공정 보도를 위해 낙하산으로 임명된 구본홍·배석규·조준희 전 YTN 사장과 맞서 싸웠는데, 최 사장은 그때 도대체 뭘 했냐는 날카로운 물음을 던졌다. 

최 사장은 민주적인 절차로 사장에 선임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고 그런만큼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캡처사진=YTN 노조)
최 사장은 민주적인 절차로 사장에 선임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고 그런만큼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캡처사진=YTN 노조)

최 사장은 한국경제와 서울경제에서 처음 언론 경력을 쌓았고 YTN으로 이직한 이후에도 주로 경제 분야를 취재하며 간부급 언론인이 됐다. 경영기획실장·경제부장 등을 맡을 정도로 언론사의 재정과 경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08년 3월 MTN(머니투데이방송) 설립의 원년 멤버가 됐고 사장에까지 올랐다.

이런 이력 자체는 전혀 문제되지 않지만, 노조는 적어도 YTN이 공영방송으로서 보도 공정성을 위해 투쟁했던 시기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았던 인물이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YTN의 새로운 사령탑이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언론사의 보도 경쟁력 보다는 재정과 경영에만 애를 쓴 그가 YTN의 독립성을 지킬 수 없고 철학적으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2009년 최 사장이 MTN 보도본부장일 때 이 전 대통령의 재산 헌납에 대해 “부인할 수 없는 위대한 부자의 선행”이라 미화했고,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 후에 눈물 사과를 보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있었고 눈물의 의미를 퇴색시키자 말자”고 옹호했다.  

언론인이 대통령에 대해 감성적으로 두둔하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최 사장은 이런 평가들이 자기 소신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며 부적절했다고 인정했다. 

최 사장은 뉴스공장에서 “기자생활 하면서 글을 참 많이 썼고 그중에 몇 개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데 표현이 과했고 부적절한 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사과도 했다”며 두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글도 많이 썼는데 칭송론자라고 묘사되는 것은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대선캠프 특보 출신이 공영방송 사장이 되면 안 된다는 상식이 무너졌듯이, 보수정권 9년간 YTN은 부침을 겪었고 마침내 정상화의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하는 노조 입장에서 최 사장은 위에서 서술한대로 부적격일 수밖에 없다. 

이상엽 기자는 YTN에 대한 애사심과 자부심이 크지만 9년 간 그런 것들이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진=이상엽 기자 제공)
이상엽 기자는 YTN에 대한 애사심과 자부심이 크지만 9년 간 그런 것들이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진=이상엽 기자 제공)

YTN 파업은 MBC와 KBS 때보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많이 못 받고 있다. 김민식 PD가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유행어처럼 외쳤듯이, MBC 노조원들이 ‘MBC 프리덤’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듯이 YTN 노조도 뭔가 국민에게 더욱 많이 알릴 수 있는 파업 홍보 전략이 있지 않을까.

이 기자는 이와 관련 “고민을 많이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런 걸 잘 해야겠지만 우리가 파업하는 본질을 잊지 않고 정면승부를 하려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PD는 존경하는 선배다. 사람들은 김 PD의 쇼맨십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땐 얼마나 간절했으면 혼자 그렇게 외쳤을까 싶어서 보면서 슬펐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끝으로 “올림픽도 시작됐고 정치권 뉴스도 중요한 게 많은데 어떻게 지금 YTN 파업 소식에 국민들이 쉽게 관심을 주겠냐”며 “언젠가는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뚜벅뚜벅 묵묵히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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