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중앙뉴스=전대열] 평창동계 올림픽은 세 번째 시도 끝에 성공했다. 평창은 강원도 두메산골 중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내륙이어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효석이 쓴 ‘메밀꽃 필 무렵’ 덕분에 봉평 막국수가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다.

메밀로 만든 음식은 주로 막국수지만 전을 부쳐도 맛이 일품이어서 식도락가 사이에 인기도 높고 서울 구석구석에도 봉평 메밀식당이 번창한다. 이 깊은 산골에서 세계적인 겨울스포츠 대전이 벌어진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이지만 강원도민 전체가 앞장서 유치작전에 뛰어든 것은 물론이다. 평창은 기후조건상 동계스포츠를 치르는데 가장 적합한 곳으로 판정받았지만 평창 같은 곳이 세계 어느 나라에는 없겠는가.

물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에서는 눈이 오지 않으니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스케이트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겨울스포츠 종목이 있지만 설원에서 펼쳐지는 스키종목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열이 펄펄 끓는 아부다비에 칠성급 얼음호텔을 열었다는 보도는 접했는데 돈만 있으면 실내를 그렇게 하는 일이야 누워서 떡 먹기다. 그러나 하늘을 가리고 산을 덮어 기계로 생산된 눈으로 스키를 지칠 수야 있겠는가. 평창은 그런 면에서 천혜를 누린 곳이다.

2018년 2월9일 역사적인 개막식을 치렀으며 25일까지 17일간 열전을 치르는 중이다.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개최지의 강점을 이용하여 종합 4위 전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갈고닦은 선수들의 기량으로 볼 때 무난히 목표를 달성하리라고 기대한다.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에서는 미사일을 쏴대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도발을 그치지 않아 자칫 전쟁이 터지는 것 아니냐하는 외국의 우려가 컸다.

국내에서는 전쟁불감증에 걸렸다는 비판이 걸맞듯 “설마 김정은이 망국을 각오하면서까지 도발을 계속하겠느냐.”하는 낙관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내는 조용한데 외국에서는 아시아의 화약고로 부르며 한반도 전쟁을 우려한 것이다.

그 첫째 원인은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핵실험을 여섯 차례나 강행하고 1만km가 넘는 사거리를 가진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쏴대면서 미국을 위협한 북한정권에 책임이 있다.

이에 맞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코피작전’ 등 자극적인 위협발언으로 김정은 정권을 금방이라도 치겠다는 강압을 과시하면서 전쟁위험이 턱 앞에 닥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긴 시일을 끌면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막말위협은 좀 누그러든 듯싶으나 최근에는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된 빅터 차가 코피작전에 회의적이라는 이유로 낙마하는데서 보여준 미국정부의 강경노선은 변했다고 볼 수 없다.

이 시점에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민주평통 전체회의가 지난해 10월31일 올림픽 개최장소인 강릉아레나스타다움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1만7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막을 올렸다.

나도 노원구 자문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가 퍼뜩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날 캠페인의 주어는 ‘평화! 평창!’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평창올림픽만은 평화로이 개최되어 세계인의 축전이 되어야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평화와 평창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평자 돌림 호흡이다.

여기에 나는 평양을 덧붙이기로 했다. 평화! 평창!에 ‘평양’이 합쳐져야만 진정한 평화올림픽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즉석에서 “평화! 평창!에 ‘평양’이 합쳐진다면” 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고정칼럼을 게재하는 신문사도 대환영이었다.

이 칼럼에서 나는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고 직접 관람할 것을 제의했다. 전쟁의 화신처럼 알려져 있는 김정은이 선수단을 이끌고 올림픽 대제전에 참석하기만 하면 지금까지 보여줬던 나쁜 인상을 일거에 씻을 수 있을 것이고 전 세계인이 바라는 핵 폐기로 나아가 평화를 구가하여 궁극적으로 민족통일의 거대한 숙원을 성취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르긴 몰라도 김정은이 이 칼럼을 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신년사에서 내가 제의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올림픽에 직접 참석하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선수단 파견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를 파격적으로 보냈다.

명목상 정부수장인 김영남만으로 모자라 백두혈통을 자랑하는 여동생 김여정을 국제무대에 진출시키는 화려한 전략무기를 선보인 것이다.

김정은이 직접 참석했다고 하더라도 천지가 뒤집힐만한 문제해결은 안되겠지만 김여정의 출현은 앞으로의 남북대화에 시사하는 바 크다.

이제 초반전에 불과한 평창올림픽이 끝나면 곧이어 패럴림픽이 열린다. 11일간의 패럴림픽까지 모두 끝나야 올림픽은 큰 막을 내린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정신은 이번에 북한이 보여준 대대적인 참가만으로도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일정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해서 북핵이 해결된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유엔의 강력한 제재 하에 놓인 북한정권의 경제사정은 나날이 쪼들린다.

북핵을 내려놓기만 하면 평화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겠지만 김정은의 적화통일 야심이 과연 한반도 평화통일과 엇갈려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지 궁금하다.

북핵에 관한 한 문재인대통령도 유엔과 공동보조를 취할 수밖에 없다. 평창올림픽이 끝나더라도 평화기운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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