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표했던 문 대통령 이 전 대통령에 인사, 대접을 신경쓰지는 않아, 자신에 대한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표현했던 이 전 대통령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수많은 각국 정상급 인사들이 즐비한 리셉션장에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중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다. 대략 3주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꺼내가며 문재인 정부에 대해 자신을 표적으로 하는 ‘정치보복’ 수사를 하지 말라고 항의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로 답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사이가 됐지만 문 대통령은 리셉션장의 테이블 중 그 어느 곳도 직접 찾아가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이 전 대통령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두 전현직 대통령이 조우한 것은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2015년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5년 11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 전 대통령은 9일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사전 VIP 리셉션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달 31일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초청장을 전달했고 이 전 대통령은 바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오래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유치해낸 지구촌 축제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참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장을 받은 뒤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 수석은 평창올림픽 초청장을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을 찾은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초청장을 받은 뒤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 수석은 평창올림픽 초청장을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0일 백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이 인사를 나눴던 그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윤 수석은 “문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이 만나서 악수를 했는데 그걸 몇 사람 밖에 못 봤다”며 “김홍걸 위원장(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이 이 전 대통령과 김현철 교수(국민대 정치대학원 특임)와 함께 같은 테이블에 앉아는데 김 위원장이 헤드테이블로 와서 김영남 위원장(북한 최고인민회의)에게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그때 “문 대통령이 뒤를 돌아보다가 이 전 대통령이 거기 앉아있는 걸 보고 일어나서 그 자리로 가서 테이블에서 이 전 대통령과 악수했고 김 교수와도 악수를 했다. 리셉션장에서 문 대통령이 유일하게 다른 테이블을 방문한 곳이 바로 그 테이블이었다”고 설명했다.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문재인 대통령의 환영사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문재인 대통령의 환영사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직 대통령으로서 헤드테이블에 있는 정상급 인사들을 챙기기에도 바빴을텐데 이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건넨 장면은 과거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식 때 백원우 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호통 직후 직접 찾아가 사과 인사를 한 것과 오버랩된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과하라며 소리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사과하라며 소리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와대가 이 전 대통령을 후하게 대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은 김윤옥 여사와 함께 오지 않았고 혼자 방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외국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인 출입구로 입장했고 헤드테이블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자리 배치를 받았다. 이 때문에 외국 정상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과 바로 마주칠 수도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불만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은 간간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같은 테이블에 앉은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 전 대통령의 처지가 처량해져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달 17일 자정이 넘은 시각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김진모 전 민정2비서관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남 혐의로 구속됐다. 그날 17시 반 이 전 대통령은 고민 끝에 직접 입장문을 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입장문의 내용은 한 마디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작업으로 이명박 정부 인사들에 대해 진행하는 검찰 수사는 이 전 대통령 자신을 향한 정치보복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역사 뒤집기이자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보수를 궤멸하려는 것이고 △짜맞추기식으로 자신의 참모를 수사하지 말고 자신에게 직접 책임을 물어달라는 요구와 주장을 밝힌 것이다. 

다음날 11시 즈음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들은 것을 발표함으로써 문 대통령의 심경을 전했다. 입장문 발표 이후 17시간이 넘는 시점이었다. 박 전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정치보복 주장에 대해)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표현이다.
 
박 전 대변인은 13일 방송된 채널A <외부자들>에서 백브리핑으로 기자들에게 다 설명했는데 그것이 많이 회자가 되지 않았다면서 문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사실을 세세히 풀어냈다.

박 전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분노 발언의 배경에 대해) 우리 사회지도층의 말씀이 너무 과해진다. 이것이 사회갈등과 국민분열로 간다. 뱉은 말에 대해서 책임도 안 진다. 말의 수위가 너무 극악해진다는 것에 지적하자는 차원에서 그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죽음에 감정반응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고 우려된다는 조언을 했지만 (문 대통령이) 그렇게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나도 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진보 진영에서는 대부분 이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인 앙갚음 차원을 넘어서서 이 전 대통령이 받는 혐의가 ‘군 사이버사령부 조직적 댓글 지시·다스 비자금과 청와대 권력 동원·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지시·국정원의 대북공작금으로 전직 대통령 음해공작’ 등 너무나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유일하게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의 처지가 여러모로 처량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