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중앙뉴스=이재인] 한 대학생이 면장님의 심부름으로 나의 집에 방문차 왔다. 손에 비망록을 들고 힘찬 발걸음이 패기와 의욕으로 넘쳐보였다. 용건이 무엇이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을 하여 놀랐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데 면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책동냥을 왔습니다. 가서 말씀드리면 책을 그냥 주실 것이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그는 흔한 핸드폰을 무기처럼 손에 든 청년도 아니고 이어폰을 귀에 걸지도 않은 소박 청신한 젊은이였다. 요즘 청년들 같지가 않았다. 내가 기대하던 순수 자체의 청년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요즘 기차나 버스, 전철 어디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자세이다. 이런 세태가 이제 한국 청년들의 창의정신을 하향평준화로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못 걱정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선현들의 덕담이 무색할 지경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인간이 책의 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때문에 소위 공영방송이나 전자매체에서 장래 청소년이 갈 길을 공익적인 차원에서 다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나만의 염원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의식 있는 어른들은 신문 방송매체가 차츰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금 지자체에서 헌책 모으기를 통하여 피서지나 공원 등지에 작은 도서관 시설을 만들고 있다는 게 매우 고무적이다. 사실 오늘의 노년시대의 애국지사나 나라의  간성이 된 공직자들은 책의 지식과 지혜로 오늘의 번영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독서가 인간의 심성을 순화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의 젊은 세대는 모두가 중심축 없는 스마트폰에 인생을 건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겠다.

이는 젊은이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어른들의 근실한 조언과 계몽도 필요하다. 계몽이라면 우린 십구 세기 옛날 방식으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다.

계몽이란 말은 지식과 지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어휘개념이다. 세종시대, 정조시대가 잘 정리된 지식인들의 지혜가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창조하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독서 없는 삶은 사막이고 인생의 꿈과 비전도 생성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소설가 오영수는 “독서 없이 문화시대를 연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독서의 불모지에서 나는 오늘도 서울 시내 대형서점을 찾아 문화기행을 나서고 있다. 거기에는 내가 희구하는 이상향이 숨어 있다. 스마트폰에도 그런 유익이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이 내 친구들이여! 책방에 나들이나 가세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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