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낙타는 뛰지 않는다』 펴낸 권순진 시인

권순진 시집 『낙타는 뛰지 않는다』
권순진 시집 『낙타는 뛰지 않는다』

 

뒤통수

권순진

 

너댓 살이나 되었을라나

귀여운 사내아이의 초롱초롱한 눈길이었다

“너 막걸리 한잔 할래?”

“전 됐고요, 어르신들이나 많이 드세요!”

“너무 과음하지는 마시고요”

 

친구와 함께 들른 동네 빈대떡집에서

제 부모 손잡고 따라온 아이가

하도 똘망똘망 명랑해 보여

장난질 한번 쳤던 것인데,

이거이거 이것 봐라

어른 뺨 양쪽으로 후려갈기는 솜씨라니

요런 맹랑한 것 보았나

 

김지하 시인의 외아들이고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인

원보 씨 서너 살 무렵

외할머니 등에 어부바했을 때,

마침 찾아온 기자가

“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이라기보다는 개념 없는 희롱에

원보는 기가 차고 콧물이 다 막혀

그 기자 한참 째려보다 “둘 다 싫어!”

침 뱉어내듯 한마디 찍 하고서

얼굴 돌렸다지 않은가

 

칠성동 굴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따위

예전엔 질질 짜기도 했던 어설픈 놀림이

요즘 아이들의 진보된 좌뇌엔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권순진 시집 『낙타는 뛰지 않는다』 (학이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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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곡은 언제나 우리가 무심한 보이지 않는 허방에 있다. 뒤통수는 자신이 스스로 볼 수 없는 곳이다. 몸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곳에 있는 뒤통수! 사건 사고도 많은 세상 어지러운 정국에 요즘 뒤통수 간지러운 일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것(성폭력 성추행)이 관행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으니 살다살다 ‘기가 차고 콧물이 막힐 일’이다. 어린아이들이 알까봐 정말 두려웠는데 이미 아이들도 '미투, 미투 '하면서 아는 듯 비웃는 걸 본 적 있다.

인간의 범죄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더 지능화 하며 진화해왔다. 그 많은 범죄들 중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굳이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으로서 어른으로서 동심을 오염시키기도 하며 어린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언행은 또 얼마나 많은가? 위 시를 읽으며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데 뜨끔한 웃음, 겸연쩍은 웃음이다. 아니 웃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가 자라날수록 어른을 닮아가며 탁해지는 것은 어른들의 민망한 뒤통수 탓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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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진 시인 /

1954년 경북 성주 출생, 대구에서 성장

2001년 《문학시대》 등단

시집 『낙법』 『낙타는 뛰지 않는다』

시 해설서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1』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운동지 계간 《시와시와》 편집주간

대구일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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