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북미 대화 의지 확인,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노력, 미국의 경계심과 최고 압박 유지. 한층 더 가능성이 높아진 북미 대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영철과 이방카가 돌아갔다. 올림픽 속 두 번의 북미 접촉 기회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사실상 파국이었던 북미 관계에서 한발짝 나아간 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북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은 결국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이방카 선임고문(백악관)이 23일 오후 입국해서 26일 아침에 돌아갔다. 김영철 부위원장(북한 노동당/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25일 오전에 방한했다가 27일 오전 북으로 돌아갔다.

이방카 고문이 26일 아침 방한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방카 고문이 26일 아침 방한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영철 부위원장 등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이 27일 오전 북한으로 돌아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영철 부위원장 등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이 27일 오전 북한으로 돌아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올림픽 폐회식이 열리는 25일 이방카 고문과 김 부위원장이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제1부부장처럼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올림픽 스타디움 VIP 구역 위 아래 좌석에 있었지만 이방카 고문과 김 부위원장은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방카 고문은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개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일어나지도 않았던 펜스 부통령과 달리 이방카 고문은 일어났다.

이방카 고문은 첫 날부터 “올림픽 대표단 자격으로 미국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러 한국에 간다”며 양국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 비정치적인 행보를 예고했다. 이방카 고문이 “우리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맹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올림픽에 참석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방침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이방카 고문은 펜스 부통령처럼 대북 강경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고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발언도 없었다. 북한만을 위한 메시지 자체가 없었다. 이방카 고문은 25일 오전 봅슬레이 남자 미국팀 경기를 관람했는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줬다.

폐회식에 참석한 이방카 고문과 문 대통령 부부, 뒤에 김영철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폐회식에 참석한 이방카 고문과 문 대통령 부부, 뒤에 김영철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방카 고문은 미국팀을 응원하고 방한 일정 자체를 즐겼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방카 고문은 미국팀을 응원하고 방한 일정 자체를 즐겼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신 함께 방한한 제임스 리쉬 상원의원·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그런 정무적인 한미 소통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방카 고문이 던진 메시지는 미국 정부의 일반 입장이었다. 이방카 고문은 23일 저녁 청와대 만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양국 간의 협력과 가치관을 재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압박에 대해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도 이에 호응하면서도 “남북 간에 활발한 대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것이 우리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킨다”며 남북 대화를 통한 비핵화 도달이 필요하다는 측면을 미국 정부가 양해해달라고 밝혔다. 

그 타이밍에 미국 정부는 대북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북한과의 거래가 의심되는 해운회사 56개를 추가적으로 제재대상을 올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제재가 먹히지 않는 경우 “2단계 대북 대책은 매우 거친 것이 될 것”이라며 “이것은 전 세계에 매우 불행한 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의 추가제재가 발표됐음에도 이방카 고문은 출국하는 날에도 “아주 멋진 첫 방한은 흥미롭고 아름다웠다”며 북한 관련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미국 대표단으로 방한한 것이었지만 이방카 고문은 이렇게 방한 기간 내내 올림픽 자체에 집중했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발언은 자제했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일정 내내 보여준 태도가 미국 내에서도 ‘대국답지 못 하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고 이것이 한국의 큰 잔치에 고춧가루를 뿌린다는 목소리까지 나오자 폐회식에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방카 고문이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미국의 대북 관련 제스처는 백악관이 직접 했다. 26일 북미 대화에 충분한 용의가 있다는 김 부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백악관에서 “비핵화로 가는 첫 걸음이 될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5일 김 부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측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공식 표명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밝히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구체적인 비핵화 해법을 북측에 제안한 것인데 김 부위원장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고 즉답을 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1월 올림픽 남북 교류를 위해 첫 만남이 이뤄졌을 당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우리 측의 비핵화 언급에 강한 기색을 보인 것과는 사뭇 달라졌다. 

북측 대표단은 26일 정의용 대통령 국가안보실장 등 우리측 안보 라인(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천해성 통일부 차관·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났고 청와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남북은 포스트 평창에도 지금의 화해 국면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김 부위원장이 분명 “미국과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며 이 점을 강조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2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김 부위원장이 북미 대화에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며 “북미 간에 건설적 대화가 개시되기를 기대한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대신해 방한한 류옌둥 부총리를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북미 간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춰야 하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비핵화를 위한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인데 청와대는 이것을 “비핵화 회담의 1단계”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류옌둥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리해보면 문 대통령이 양측을 중재해서 도달할 비핵화 방법론은 먼저 북한의 의지 차원인데. 그 의지라는 게 북한의 핵 미사일 시험 유예와 핵 동결이다.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면 이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구상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적극 중재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에 대해 매우 엄격하고 강경한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회담하면서 “북한이 처음으로 대화를 원하고 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구사한 “지켜보겠다(we will see what happens)”는 표현이 또 등장한 것이다.

이 말은 북한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시험해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서 “미국 역시 대화를 원하지만 올바른 조건 하에서만 그렇다. 북한과 (미국이) 25년 간 그렇게 대화했지만 아무 것도(성과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즉 북한이 올바른 조건(only under the right condition)을 갖추지 않고 미국과 대화를 원한다고 요구하면서 미국의 제재 완화를 노려왔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클린턴·부시·오바마 행정부 모두 제대로 대북 정책을 펼치지 못 했다는 점을 거론했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해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총기 규제 관련 이해관계자를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캡처사진=블룸버그 방송)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총기 규제 관련 이해관계자를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캡처사진=블룸버그 방송)

미국 대표단으로 한국을 방문한 루비오 상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대화 의지를 보이는 북한을 경계했다. 루비오 의원은 25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말한 건 제재 완화를 위해서”라며 “북한은 미국에 도달할 핵을 갖게 될 때까지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루비오 의원은 이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13일 VOA(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은 미국을 공격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이 미국과의 협상을 방해할 지렛대이고 힘이자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더불어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공식 요청한 건 한미 관계 분열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참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2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사상 최대 규모의 대북 제재를 발표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의 영구적인 비핵화를 위해 100% 전념하고 있다는 점을 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이 알아야 한다”고 공적 입장을 천명했다.

미국의 초강경 압박 입장과 한국의 보조, 이것은 결국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려는 1차 목표와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 관련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샌더스 대변인은 그런 차원에서 북한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서 실제 한미 관계가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며 “양국의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답했다.

이어 “펜스 부통령의 방한과 지난 며칠 동안 양국이 협력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었고 미국과 한국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이견도 없다”고 밝혔다.

24일 오전 용평리조트 USA 하우스에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4일 오전 용평리조트 USA 하우스에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국제 정치학을 연구하는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너무 북미 대화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국익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북미 대화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북미 대화에 집중하기보다 남북 관계 진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오바마든 트럼프든)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따르면 국익 관점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별 관심이 없는 게 당연하다”며 “현실적으로 북미 대화가 어렵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북미 대화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남북 대화가 진전되면 미국 정부 스스로 패싱될 것이 두려워 끌려오듯 대화에 참여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그런 역사적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북미 대화는 크게 △미국이 국익적 차원에서 자진해서 추진하거나(1994년 ‘제네바 합의’) △남북 대화 분위기에 이끌려서 하거나 두 개의 경우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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