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펴낸 최휘 시인

방문교사

최휘

 

학원에서 돌아오는 가방들이 수시로 옆구리를 툭툭 치고

저녁의 장바구니들이 바삐 지나가지

나는 가방에 부딪치며 장바구니에 부딪히며 걷는 커다란 가방

제 속에 제 그림자를 넣고 다니는 가방

가방의 중심은 가방, 창문의 중심은 창문이지

나는 창문들이 어둠을 빠르게 말아 올릴 때까지

더 이상 끌어 덮을 허공이 없을 때까지

빠르게 걷고 걸을 뿐,

나는 가방 속에 남아 있는 교재를 머리로 세며 길을 찾는 가방이지

벨을 누를 때마다 가벼워지는 건 오늘의 무게가 아니야

오늘이란 아침마다 쌓이는 교재 같은 것

그 속에 샛노랗게 붙인 포스트잇 같은 것

 

- 최휘 시집 (시로여는세상, 2018)

최휘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최휘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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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이 가방을 들고 걷는 길, 오른쪽 어깨가 운다. 자꾸만 왼쪽으로 굽어지는 몸을 느낄 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슬픔이 출구를 찾는다.

사람은 태어날 때 저마다 크고 작은 가방 하나씩 짊어지고 태어난다. 그 가방을 가볍게 들고 다니기만 해도 되는 사람 몇 명이나 될까? 가방을 빵빵하게 채워서 보란 듯이 활보하는 사람, 아니 원래 명품 가방으로 태어나서 그 자체가 명품인줄 알고 사는 사람, 가방을 대신 들어줄 사람마저 고용해서 편하게 걷는 사람, 어떤 이는 자신보다 큰 가방의 무게에 짖눌리기도 하고 끌려다니기도 한다. 삶이라는 가방! 멍에!

여기 화자의 독백이 가슴을 찌른다.

‘나는 가방 속에 남아 있는 교재를 머리로 세며 길을 찾는 가방이지’

시인의 고백이자 당신과 나의 고백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아침마다 배달되어 오는 숙제 같은 것, 오늘도 이 숙제 앞에서 심호흡으로 자세를 가다듬는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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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 시인 /

경기 이천 출생

2012 《시로여는세상》 등단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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