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혁명의 과제” 실현을 위해, 이견 있었지만 현실적인 협상력 고려, 선거법 개혁을 위해서 교섭단체로서 영향력 행사해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박주현 의원은 1월17일 기자와 만나 “신 4당체제가 될 수도 있다”며 “우리는 자신이 있어서 의석수에 연연 안 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이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물론 박 의원은 민평당이 자력으로 교섭단체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의석수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지만 그것은 지켜지지 못 했다.

박 의원은 민평당의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일찌감치 자신감을 보여왔다. 현실화 되지 못 했다가 정의당과의 합의로 가능하게 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주현 의원은 민평당의 교섭단체 구성에 대해 일찌감치 자신감을 보여왔다. 현실화 되지 못 했다가 정의당과의 합의로 가능하게 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 소속 의원 6명은 11일 국회 근처 식당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갖고 민평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기로 뜻을 모았다.

관련해서 노회찬 원내대표는 12일 상무위원회 모두발언을 통해 “촛불혁명이 제기한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에 대한 정의당의 고뇌어린 답변”이라며 “현재 국회는 수구 보수의 틀에 갇혀 한치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공동 교섭단체 구성의 명분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민생입법은 물론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같은 사법개혁, 노동개혁, 선거법 개정 역시 기득권 수호라는 거대한 암초 앞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날 상무위의 추인을 받았지만 17일에 열릴 전국위원회(시도당 위원장과 당 지도부 등 100명의 위원으로 구성)에서 최종 의결절차를 거쳐야 한다.

노 원내대표는 “다시 촛불광장에 서는 심정으로 내린 결단”이라며 “향후 당원들이 정의당 의원단의 고뇌어린 진심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노 원내대표는 지속적으로 선거법 개혁에 대해 강조해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 원내대표는 지속적으로 선거법 개혁에 대해 강조해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공동 교섭단체 구성의 사례가 우리 정치사에서 없었던 게 아니다. 딱 10년 전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1년 정도 ‘선진과 창조의 모임’을 통해 그렇게 한 바 있다.

국회법 33조 1항에 따르면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다른 정당들끼리 연합해 새로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정당이 법률적 교섭단체 지위(20석 이상)를 확보해야 국회 내에서 여러 사안에 대한 실력 행사를 할 수 있고 그야말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당장 국회의장 주재의 원내대표 회동에 참석해서 본회의 일정을 논의하고 여야 주요 쟁점사항에 대한 의사표시를 해야만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박주현 의원은 2월19일에 다시 기자와 만나 “비례대표 출당 문제가 잘 해결되면 박선숙 의원을 포함해서 4명이고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까지 더하면 (민평당 지역구 의원 14석+6석으로 교섭단체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현재 민평당은 무소속 2명의 합류와 비례대표 출당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지만 정의당 의원들과 협력해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박 의원은 “(바른미래당 내부) 회의파들(박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박선숙·채이배 의원이 바른미래당에서 회의적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있고 우리는 우리 길을 갈 뿐이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게 아니다. 정의당 소속 모든 의원들이 동의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졌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11일 저녁 긴급 의총을 마치고 난 뒤 기자들에게 “일부 이견이 있었으나 적극 추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5일 정의당의 추혜선 수석대변인과 최석 대변인이 신임 대변인으로 지명된 문영미 인천시 남구의원을 소개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5일 정의당의 추혜선 수석대변인과 최석 대변인이 신임 대변인으로 지명된 문영미 인천시 남구의원을 소개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무엇보다 정책과 비전의 측면에서 정체성이 강한 진보 정당으로서 정의당은 민평당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 제안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안보 정책과 여러 경제 관련 의제에 대해서 크게 가치관 차이가 없다고 결론내렸고 이것이 결단의 원동력이 됐다. 

조성은 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도 5일 페이스북에서 “정의당과 공동 교섭단체 만들어서 최저임금문제 하나 협의가 안 될 것이 뻔할 뻔”이라며 “국민의당 때도 문재인 정부가 너무 좌측으로 치우쳐지는 것에 우려하고 견제했던 것 아닌가. 자영업자들은?”이라고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조 전 위원은 “정당의 정체성이고 다 필요없이 교섭단체에만 목맸으면 바른정당은 왜 (거부했는지) 그렇게 합쳤으면 50석이 넘었구만”이라고 꼬집었다.

조 전 위원은 민평당에서 처음으로 정의당과의 연대 목소리가 나올 때부터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정의당이 민평당의 공식 제안을 거절할 위험도 있고 그랬을 경우 정치적으로 매우 곤란해질 것을 우려했던 조 전 위원이었다.

그럼에도 두 정당 모두 원내에서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는 현실론이 앞섰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자존심이 센 당원들 또는 지지자들이 탈당을 감행하거나 지방선거에서의 지지 철회를 할 가능성도 있으나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정의당은 이미 자체 개헌안을 내놓으면서 따로 정부형태를 제시하지 않았고 대신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노 원내대표는 지난달 6일 본회의 비교섭단체 연설에서 1등만 당선되고 나머지 득표는 전부 죽은 표가 돼버리는 단순다수대표제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정의당의 현실을 언급했다.

노 원내대표는 “2016년 총선에서 정의당은 7.2%의 국민 지지를 받았으나 국회 의석수는 전체의 2%밖에 차지하지 못 했다”며 “소선거구제의 수혜를 온 몸으로 받는 거대정당들은 자신이 받은 지지보다 훨씬 많은 국회의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정의당에게 선거제도 개혁은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본회의 표결 셈법 관련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 위해서는 교섭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정의당 의원들의 결론이었다. 

이 대표는 1월22일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한반도가 그려진 떡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정의당과 민평당은 안보 정책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정이 정의당 대표는 1월22일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한반도가 그려진 떡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정의당과 민평당은 안보 정책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두 당이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과 개혁 드라이브에 협력하는 노선을 주로 취했던만큼 보수 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반대 노선에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장정숙 의원은 12일 오전에 열린 민평당 연석회의에서 “말도 안 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소속 정당 선택의 문제를 빨리 개선해야 한다”며 “이미 박주선·유승민 두 공동대표는 합당 논의 당시 비례대표 소속 정당을 선택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 공동발의에 참여한 바 있다. 두 대표가 정치적 해법을 제시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11일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이 발표한 논평에 따르면 제명 조치를 해주지 않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김 대변인은 “정치적 소신에 따라 정치를 하려거든 당연히 탈당을 해서 민주평화당 소속으로 하는 것이 정도이다. 의원직이 탐나거든 적어도 국민들 보기엔 민망한 언행은 삼가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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