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바쁘지만 ‘차이나 패싱’이 우려돼 한국 만나, 천안문 진압하며 등장한 ‘핵심’ 용어, 중국 최고 지도자의 상징 용어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매우 바쁘고 신경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날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이 12일 저녁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특사로 중국을 방문 중인 정 실장을 만났다. 

흔히 중국 원수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에 타국과의 외교 행위를 하지 않는다. 더불어 영구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과 맞물린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 주석은 말 그대로 ‘차이나 패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정 실장을 만났다.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와중에 중국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12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2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기에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과 사이가 좋지 않고 사드보복 해제와 관련해 한국과도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여기에 북미가 직접 만나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방침까지 내세웠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 국면에서 중국의 존재감을 드러내야하는 과제와 동시에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리면서 오는 중국 내 반발 여론을 매끄럽게 잠재워야 하는 처지다. 

2017년부터 장기집권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 ··· 시작

11일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한 임기 연장 개헌안이 전인대에서 압도적으로(찬성2958표·반대2표·기권3표) 통과됐다. 이날 통과된 개헌안에는 국가주석의 임기를 5년 연임에 한정한 규정이 삭제됐다. 

시 주석은 권력욕이 있다. 시 주석은 임기제한 폐지를 위한 개헌 작업을 완성했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절대 권력화에 대해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왕천(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은 5일 열린 전인대 개막식에서 개헌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작년 시 주석이 직접 ‘시진핑 사상’을 헌법 조문에 수록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작년 9월29일 공산당 정치국 25명의 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임기제한 폐지를 최초 거론했다고 알려졌다.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둥다팅에서 열린 제13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5번째 개헌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둥다팅에서 열린 제13기 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5번째 개헌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후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이끄는 태스크포스가 구성됐고 시 주석의 최측근인 리잔수(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와 왕후닝(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이 참여했다. 두 인사는 작년에 이미 중국 최고지도기구인 상무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그 다음 순서는 차례대로 이뤄졌다. 지방 당 간부를 비롯 2600여명에게 시 주석의 계획을 설명했고 공산당 원로들(장쩌민 전 주석·후진타오 전 주석·원자바오 전 총리·주룽지 전 총리)에게도 지침이 전달됐다. 5개월에 걸친 의견 수렴 아니 시 주석의 계획 설명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압도적으로 전인대에서 개헌안이 통과됐다고 하지만 당연히 반대 목소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혁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과 기업인들 사이에서 반발 여론이 커지고 있고 당국은 이에 공식 대응하고 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장쩌민 전 주석은 임기제한 철폐에 대한 의견을 처음 듣고 결사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핵심’이란 용어의 등장

1989년 6월4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서 대학생과 시민 등 수 십만명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군을 동원해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했다. 당시 공산당 지도부는 1979년 부마항쟁을 어떻게 진압해야 할지를 놓고 갈등하는 박정희 정권과 같았다. 강경 진압하자는 차지철과 그러면 안 된다는 김재규가 맞서고 있던 것인데 공산당 중앙고문위원회의 천윈 주임은 “덩샤오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을 굳건하게 지키자”며 여기서 물러서면 공산당은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덩샤오핑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당”이라는 표현은 다른 요구와 움직임 보다는 공산당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의 의사를 잘 반영하는게 가장 공산당답다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장쩌민 전 중국국가 주석이 2017년 10월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캡처사진=CCTV)
장쩌민 전 중국국가 주석이 2017년 10월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캡처사진=CCTV)

천안문 사태를 진압한 뒤 덩샤오핑은 장쩌민·리펑·차오스와 같은 미래 실권자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덩샤오핑은 “어떤 집단도 핵심을 필요하다. 1세대 핵심은 마오쩌둥 주석이었고, 2세대 핵심은 나다. 3세대 집단도 핵심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장쩌민 동지”라고 말했다. 이후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온건 성향의 자오쯔양 총서기는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고 강경파인 장쩌민이 총서기로 선출됐다. 장쩌민 총서기는 바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차지했다. 이때부터 “장쩌민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이란 말이 공식 사용되기 시작했다.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체대표대회가 2017년 10월18일 개막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후진타오 전 주석(왼쪽), 장쩌민 전 주석이 당대회장에 입장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체대표대회가 2017년 10월18일 개막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후진타오 전 주석(왼쪽), 장쩌민 전 주석이 당대회장에 입장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위기에 몰린 ‘황싱궈’의 생존하기 위한 발언이 시진핑의 권력을 강화

그렇게 핵심이란 칭호를 얻는 자가 중국 최고의 권력자로 인정받게 됐다. 절대 권력자를 꿈꾸는 시 주석에게 처음으로 핵심이라고 불러준 인물이 있다. 황싱궈 톈진시 당서기는 톈진항 폭발사고 때문에 실각될 위기에 몰렸지만 2016년 1월8일 공산당 회의에서 “시진핑 총서기라는 핵심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고 발언했고 자리를 보전했다. 

이후 시 주석을 향한 핵심 발언이 밑에서부터 빗발치기 시작했다.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은 이런 흐름을 받아 2016년 초 “핵심 의식을 증강하자”며 중앙 차원의 시 주석에 대한 충성을 표명했다.
     
직후 개최된 정치국회의에서 “영도 핵심인 시 주석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는 말이 나왔고 이 자리에서 리잔수 주임은 또 다른 시 주석의 측근인 정딩현 서기(시 주석의 경호실장)와 친밀해졌다. 정치국원이 된 리 주임이 핵심을 중앙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정딩현 서기와 가까워지자 이제부터 정치국 상무위원들 사이에서도 시 주석에 대한 핵심 발언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