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이재인 전 경기대교수 / 작가

[중앙뉴스=이재인] 자치와 자율을 기초로 하는 지방분권은 그동안 중앙집권체제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통제와 억압에 강요된 사회에서 민주화라는 말은 너도나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또한 적폐청산이란 말에 새로운 기대가 큰 이유는 부조리한 일들을 해소하고 새롭게 우리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게 바로 아이러니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부여돼 있다. 사물의 이치에는 책임과 의무라는 굴레가 씌어져 있다.

지방자치 분권이라면 모든 혜택과 권한이 지방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우선 지방의 자립도가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홀로서기를 할 수가 있는지를 냉철하게 반성해야 한다. 중앙정부 재정지원 없이 지자체가 국민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리고 지방에 권력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권이 좋은 사례만이 아닐 것이다.

민주화? 이를 싫어할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범이 존재한다. 덮어놓고 단순히 말로만 떠벌리는 민주화는 세상에 없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 어떤 이가 커다란 개를 키우고 있다. 개짓는 소리에 온 단지가 시끄럽다. 필자가 사는 곳은 조그만 군청소재라서 이웃 간에 신분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참다못해 아파트 관리소에 의뢰하여 개소리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관리소장의 말이 가관이다. 관리소장의 말에 의하면 개를 키우는 주인이 ‘민주주의, 자유’ 운운하면서 적반하장으로 자유를 주장하더라고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에게는 기본부터 민주시민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한다.

적폐청산은 남의 동네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 자신부터 쌓아온 남모르는 폐습을 청산하자는 말이다. 내 자신부터 청산이 안 된 적폐를 어디서 누구한테 강요하자는 것인가?

인간이란 지혜가 뛰어난 개체이다. 그러나 그 지혜를 다 함께 공유한 것 아니다. 우열이란 우와 열이 동시에 게재되어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다 같은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미국을 이끄는 지도층은 전 국민의 0.3%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모든 미국인이 다 뛰어난 게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미국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학력이 높고 지혜롭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 사회 전체가 리더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보편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위한다.

미국, 미국사회라고 하여 모두가 우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월한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새 정부 들어와서 새 정책에 흥분하여 박수만 보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에 따르는 자신의 의무를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적폐는 저쪽동네, 저쪽사람의 허물만을 말하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고 나부터 타성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분권화라는 언어는 권력이 무한대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분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화속의 민주는 스스로가 책임을 지는 또 하나의 굴레임을 직시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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