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꿈꾸는 시진핑③] 단계적인 정적 ‘제거’ ·· 개발독재 논리 ‘샤오캉’
[황제를 꿈꾸는 시진핑③] 단계적인 정적 ‘제거’ ·· 개발독재 논리 ‘샤오캉’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03.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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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패 운동을 통한 정적 제거, 상하이방 위주의 군부 숙청, 공청 제거, 샤오캉과 중국몽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중국에서 경찰 기능을 하는 ‘공안’의 권력은 막강하고 ‘인민해방군’도 마찬가지다. 

유사시 두 거대 조직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격인 ‘중앙국가안전위원회’의 핵심 인사가 최근 시진핑 주석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홍콩 매체인 ‘명보’는 15일 안전위가 시 주석을 중심으로 리잔수 상무위원(공산당 정치국)이 부주석·딩쉐샹 주임(공산당 중앙 판공청)이 판공실 주임으로 임명되는 등 재편됐다고 보도했다. 안전위의 실무 권한을 갖고 있는 판공실 부주임에는 류하이싱(외교부 부장조리)이 임명됐다.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기자회견에서 리잔수 신임 상무위원이 취재진에 인사를 하고 있다. 리잔수는 시 주석의 측근으로서 권력의 정점인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 기자회견에서 리잔수 신임 상무위원이 취재진에 인사를 하고 있다. 리잔수는 시 주석의 측근으로서 권력의 정점인 상무위원에 진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전위는 2013년에 신설됐고 중국 버전의 NSC(국가안전보장위원회)와 같다. 즉, 외교안보 또는 국내 치안에서 비상상황이 닥칠 때 소집된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과 인접해 있는 수많은 소수 민족들과의 충돌 위험이 상존한다. 예컨대 신장 위구르·티베트족과의 주권 및 영토 분쟁이 대표적이다. 안전위는 이런 일들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중앙 통제지휘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안전위는 우리로 따지면 국가정보원과 같이 사이버 공격, 반체제 활동 등과 관련해서 정보 수집의 기능도 일정 정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막강한 조직이 시 주석의 측근들로 채워졌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시 주석은 근래 몇 년 동안 이렇게 공산당의 핵심 기구들에서 정적을 제거하고 충신들로 채워나가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명분은 ‘반부패 운동’ 실상은 ‘정적’ 제거

시 주석이 2012년 11월 명실상부 공산당 총서기라는 1인자에 등극한 뒤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것은 반부패 운동이었다. 이는 사실상의 정적 제거 프로젝트로서 중국 현대사에서 그 유명한 문화대혁명(마오쩌뚱 초대 국가주석이 1966년부터 10년간 홍위병을 동원해 반대파와 지식인을 숙청한 사건)에 비견할만하다는 평가가 많다. 

시 주석은 총서기에 취임한 직후 “호랑이부터 파리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깡그리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호랑이를 잡은 대표적인 사례가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이다. 관례적으로 전직 상무위원은 그냥 넘어갔었는데 그 불문율도 깨버린 것이다. 이외에도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궈보슝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의 비서실장 출신 링지화 통일전선부장(장관급) 등도 제거됐다.

시진핑 주석이 12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진핑 주석이 12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푸젠팅에서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렇게 반부패 운동을 통해 정적을 제거했고 1인 체제를 완성시켜 나갈 수 있었다. 고위직일수록 과감하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러면서 당 내부의 충성심을 다져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제거된 최고위직의 규모는 2015년에만 57명에 달했다. 우리 군으로 치면 4성 장군에 해당하는 왕젠핑 상장(전 인민해방군 부참모장)도 제거됐고 팡펑후이 상장(전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우리의 합참의장 격)과 같은 경우에는 올해 1월 뇌물 수수혐의로 숙청된 바 있다.
  
팡펑후이 상장은 시 주석 체제에 대비해 처세에 신경을 썼지만 후진타오 전 주석 재임 때였던 2004년부터 고속 진급한 인물로서 끝내 숙청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군부 장악

권력자의 힘은 군권에서 나온다. 시 주석도 마찬가지다. 시 주석은 당의 총서기직 뿐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안전위를 장악한 것처럼 공산당과 정부에 각각 존재하는 중앙군사위원회를 확실히 장악했다.

시 주석은 2016년 4월 당 중앙군사위 직속으로 있는 연합작전지휘센터를 시찰하며 군부에 공개 훈시를 내렸다. 마오쩌뚱 전 주석 외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국 관영방송 CCTV는 당시 시 주석의 모습을 전파로 내보냈는데 그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국가주석·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군사위 연합작전지휘센터 총지휘’라고 소개했다. 명실상부 모든 권력을 독점한 1인자로서 군복 차림의 시 주석이 중국 전역에 방송된 것이다.

마오쩌뚱·덩샤오핑·장쩌민 등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역대 중국 권력서열 1인자들도 달성하지 못 했던 것이 당과 정부의 두 개 군사위 주석직을 겸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들이 가진 실권의 크기가 시 주석보다 작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 주석은 이 두 개를 다 차지한 최초의 중국 지도자다. 

덩샤오핑도 최고 권력자의 상징인 세 가지 지위(공산당 총서기·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정부 국가주석) 중 당 중앙군사위의 주석직 하나만 차지했었다. 그럼에도 중국 최고의 지도자로 개혁개방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군권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에 군 통수권이 있다면 중국의 군 통수권은 당 중앙군사위 주석에 있다. 한 마디로 권력서열 1위인 국가주석이나 총서기에 버금가는 권력을 군사위 주석이 쥐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실권은 군사위 주석이 더 막강할지도 모른다. 

비유컨대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군사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 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군사위 주석직은 매우 상징적이고 중요하다. 공산주의 국가는 당 중심으로 통치되기 때문에 인민해방군도 공산당의 군대다. 시 주석은 총서기와 군사위 주석 지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시 주석의 군권 장악 토대는 과거부터 형성됐다. 1979년 당시 겅뱌오 공산당 군사위 비서장의 비서로 3년 간 일했던 시 주석은 여러 군부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시 주석은 군사위의 부주석 자리까지 고속 승진하기도 했다.

'상하이방', '공청', '태자당'이 번갈아 권력을 차지하며 상호 견제 시스템을 유지했던 중국 정치의 전통. (캡처사진=JTBC 썰전)
'상하이방', '공청', '태자당'이 번갈아 권력을 차지하며 상호 견제 시스템을 유지했던 중국 정치의 전통. (캡처사진=JTBC 썰전)

군부의 ‘상하이방’ 정리한 뒤 ‘공청’ 제거 ·· 빈자리에 ‘시자쥔’ 대거 등용

군부 장악 다음에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에는 크게 3개의 파벌이 있다. 시 주석을 정점으로 하는 ‘태자당’과 장쩌민 전 주석의 출신지인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방’, 그리고 ‘공산주의청년단’이 그것이다. 이렇게 3대 세력이 번갈아가면서 국가주석을 맡아왔고 나름 상호 견제 시스템으로 굴러갔다.

장쩌민계 상하이방이 군부에 영향력을 뻗치고 있었기 때문에 시 주석은 이들을 제거하고 다음 타겟으로는 후진타오 전 주석의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이 지난해 10월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캡처사진=CCTV)
후진타오 전 주석이 지난해 10월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캡처사진=CCTV)

공청은 공산당의 인재양성소로서 14~28세 청년이 가입할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8700만 명의 단원을 자랑하는 비대한 조직인 셈인데 당과 국가 고위급 중에 공청 출신이 상당하다. 이들은 ‘단파’라고 불리는데 후 전 주석이 집권할 때는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시 주석과 큰 갈등없이 공존하고 있는 권력 서열 2위 리커창 총리도 단파이다. 2016년까지 당 정치국원 25명 중 절반 가까이가 단파이기도 했다. 시 주석이 위기감을 느끼고 숙청에 들어갔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2017년 10월에 열린 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 주석은 후계자를 따로 지명하지 않고 집권 2기 내각을 발표했다. 시진핑 사단으로 불리는 ‘시자쥔’은 권력의 정점이라 불리는 7명의 상무위원 중 2명(리잔수·자오러지)에 불과했지만 바로 아래 단계인 정치국원에는 25명 중 14명이 포진했다. 정치국원에 권력자의 최측근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 경우는 덩샤오핑 이후 집단 지도체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미 2016년 하반기에 당 중앙판공청은 공청단 개혁방안을 발표해 대대적인 숙청을 예고한 바 있다. 당을 엄격히 관리한다는 의미로서 ‘종엄치당’을 내세워 이를 추진하고 당대회에서 성과를 보고하는 것이다.
   
‘샤오캉’과 ‘중국몽’

개발독재 국가에서 독재자들은 경제 발전을 독재의 명분으로 강조해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시 주석도 마찬가지다. 시자쥔 인사들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국민소득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경제적 풍요로움을 뜻하는 ‘샤오캉’ 사회 건설을 천명한 것이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2017년 GDP(국내 총생산) 기준 대략 12조달러에 달한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지만 그것을 인구수로 나눈 1인당 국민소득은 2010년 기준 4300달러 수준이다. 시 주석은 영구집권의 명분으로 샤오캉 사회를 내걸었고 그 구체적인 목표치는 2021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으로 대략 1만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며 샤오캉 사회를 이뤄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되겠다는 ‘중국몽’을 내세웠다.

시 주석 개인의 권력이 얼마나 지탱될 수 있느냐 그 여부는 국가적으로 샤오캉과 중국몽을 추진해서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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