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 연령 하향 주장하며 삭발 감행, 신지예 녹색당 위원장은 기성 정당과 성인들의 책임 지적, 선거권 연령 하향은 주체적인 인격체로서 인정받는 의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청소년이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 삭발을 감행했다.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를 행사해서 숭고한 뜻을 피력했다. 성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국회에 강력한 목소리를 내서 선거권 하향을 쟁취하기 위해서 삭발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와 청소년들이 22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년이 투표하면 세상이 바뀐다”며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을 촉구했다. 

청소년들이 모여 삭발까지 할 정도로 이날 기자회견은 절박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청소년들이 모여 삭발까지 할 정도로 이날 기자회견은 절박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권리모씨는 “나는 언제나 주체적이지 못 한 존재로 대우받아 왔다”며 “부모님이 시켜서도 아닌 선생님이 시켜서도 아닌 스스로 원해서 청소년 참정권을 외치기 위해 삭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청소년 참정권은 <당신들에게도 있으니 우리도 달라>는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며 “비주체적인 삶을 강요받는 대다수 청소년들이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씨는 주체적으로 판단했고 그 결과 삭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권씨는 주체적으로 판단했고 그 결과 삭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당사자도, 보는 시민들도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사진=박효영 기자)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당사자도, 보는 시민들도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사진=박효영 기자)
삭발을 감행한 3명의 청소년들. (사진=박효영 기자)
삭발을 감행한 3명의 청소년들. (사진=박효영 기자)

원내외 각 정당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인물들은 모두 발언을 했다. 가장 울림이 있었고 호응을 많이 받은 발언자는 더불어민주당도 바른미래당도 정의당도 아닌 녹색당의 신지예 위원장(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회)이었다. 

“스무살 넘으면 우리 뒤에 있는 청소년들이 우리가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 시민권을 갖고 있는 시민들이 움직여야 한다. 시민은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민주 시민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정당 활동과 학교에서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지금 국회 너무 늙고 낡았다. 50대 이상이 83%다. 한국 사회에서 50대 이상의 남성이 국회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앞에서 이분들이 오셔서 발언했지만 그 약속 언제 지켜질지 알 수 없다. 자꾸 자유한국당 탓을 하는데 한국당 탓만이 아니다. 본인들 탓이다. 50대 남성으로서 갖고 있는 그 권력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 있는 청소년들 단순히 참정권만 보장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길러내야 한다.”

신 위원장은 원내 정당들과 어른들의 책임을 환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위원장은 원내 정당들과 어른들의 책임을 환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위원장은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권 18세 하향을 반대하기 때문에 국회 통과가 어렵다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 핑계이고,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말이 핑계라는 것이다. 

신 위원장은 모두가 청소년이었다가 어른이 되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청소년이 겪었던 고통에 눈 감게 되는 뼈아픈 진실을 환기했다. 그렇게 군대가기 싫어했던 남성이 제대 후에는 “요즘 군대 편해졌다”고 말하는 군필자의 심리상태와 비슷하다. 

예컨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더니 대통령이 물러났다. 마찬가지로 청소년 선거권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요구했다면 이미 해결됐을 것이라는 취지다.  

실제 신 위원장의 발언에 공감한 많은 청소년들이 사인을 받고 사진촬영을 요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실제 신 위원장의 발언에 공감한 많은 청소년들이 사인을 받고 사진촬영을 요구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위원장은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소년 참정권 문제는 역사가 오래됐다”며 “이걸 가장 두려워하는 주체는 거대 양당”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신 위원장은 “자신들이 잡고 있는 유권자 블록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이슈도 그렇고 사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 양당은 안정적으로 자신들이 쥐고 있는 의제와 유권자 블록을 변경하지 않고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선거권 하향을 추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 원내대표가 한 말은 말 뿐이라고 본다. 실제 민주당이 맘만 먹으면 못 할게 뭐가 있을까. 대통령 지지율도 70%에 육박하는데 한국당 탓만 하고 있다”며 거듭 민주당의 책임을 추궁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발언을 통해 격하게 자유한국당의 책임을 따져물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우 원내대표는 이날 발언을 통해 격하게 자유한국당의 책임을 따져물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 위원장은, 전날(22일) 발표된 정부 개헌안에 18세 선거권이 명시된 것에 대해 “선거권 연령은 18세를 시작으로 녹색당 입장으로는 16세까지 더 낮아져야 하는데 헌법에 나이를 못박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국 민정수석이 발표한 정부 개헌안 전문을 보면 25조에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고 못박아 두고 있다. 

흔히 반대 이유로 자주 제기됐던 미성숙한 청소년에게 어떻게 선거권을 줄 수 있느냐라는 차원에서 신 위원장은 “자기가 시민을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며 “한국 청년들은 학교에서 하나도 정치에 대해 배우지 않다가 20살에 선거권이 주어지고 자기는 나갈 수 없고 그래서 사실 25살 때부터 관심이 시작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기반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시민을 25살 때부터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청소년 정당 활동도 금지돼 있다. 독일이나 선진국을 보면 청소년의 정당 활동을 보장해준다. 초등학교 때부터 청소년의 정당 가입이 허용된다. 20살에 국회의원이 되고 30살에 장관이 될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자유한국당의 제2기 혁신위원장을 맡은 김용태 의원은 22일 오전 혁신안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 선거권 연령 하향이 포함됐다. 하지만 학제개편도 포함돼 있어서 당장 선거권 연령 하향 추진에 대해서 학제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던 기존의 입장이 지속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용태 의원은 개혁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만큼, 이후 한국당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용태 의원은 개혁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만큼, 이후 한국당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의원은 “선거연령 하향 및 대통령·국회의원 피서건권의 연령 하향도 제안한다”며 “이 모든 것은 정치개혁을 위해서 오히려 야당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특권을 폐지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게 우리 신보수주의가 처음으로 제기하는 정치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보수주의는 사회구조 변화 국민 가치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전향적인 정책들을 선제적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초중고 학제를 개편해서 한 살 먼저 들어가고 2년 먼저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만들어서 더 젊은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짜야 한다”고도 말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전달된 2기 혁신안.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전달된 2기 혁신안.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의 2기 혁신안이 발표되고 1시간 뒤에 청소년들이 국회 앞에서 선거권 연령 하향을 외치며 삭발을 감행했다. 이번 혁신안을 계기로 한국당이 전향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응답할지 지켜볼 일이다.

관련해서 신보라 한국당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까지 당의 입장이 변한 건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이 학제개편 요구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다만 혁신위에서 선거권 하향 문제에 전향적인 입장을 강조한만큼 당내에서도 의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선거권 연령 하향) 적극 찬성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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