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민주당원 자격이 정지된 BBK 관련 허위사실 유포 관련 유죄 판결이 재심으로 무죄가 되면 당원권 정지도 무효라는 명분이 생길 가능성, 성추행 피해자 A씨도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증거 제시, 현장 부재라는 알리바이 싸움을 자초한 것은 정 전 의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 전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복당을 불허했지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애초에 당원 자격이 박탈된 계기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공표 유죄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그에게 성추행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안젤라(가명)도 굽히지 않고 새로운 증거를 공개했다. 

정 전 의원은 2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MB의 구속으로 자신도 무죄라는 것이 선언돼야 한다”며 BBK 고발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이 된 마당에, 자신이 재심 청구를 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이 된 마당에, 자신이 재심 청구를 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안젤라도 같은 날 오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장 중요한 증거인 이 사건의 피해자 즉 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밝힘으로써 최소한 기자들에게라도 내 미투가 가짜가 아니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젤라는 “너무나 참담하고 속상하지만 더 이상 내 존재를 드러내고 향후 입을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진실을 밝힐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며 20일 만에 얼굴을 공개하고 언론에 나서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정 전 의원은 피해자 안젤라에 대해 정치적으로 저격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전 의원은 피해자 안젤라에 대해 정치적으로 저격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전 의원에게 어떤 기자가 “출마선언하기 직전에 인터뷰가 공개되고 재심 청구를 하는 날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던졌다.

정 전 의원은 “MB는 구속됐고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인 재심을 청구하는 것인데. 또 오늘 피해자가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다. 느낌이 정치적으로 나를 저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고 일단 정치적 의도를 가득 담고 있고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안젤라의 목적은 분명히 있다. 프레시안의 서어리 기자는 3월7일 처음으로 내보낸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안젤라가 가슴 속에만 담아뒀던 7년 전 일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정 전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런 파렴치한 사람에게 그런 큰 일을 맡길 수 없잖아요.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이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까요.>”

안젤라도 9일 프레시안을 통해 직접 밝힌 입장문에서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제가 감히 미투 물결에 동참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정 전 의원 같은 사람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목적이 정당한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그 목적 자체가 있다는 것만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성추행을 가했던 남성이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면 누구라도 분노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폭로는 정당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반대로 뭔가 모를 앙심이 있다는 이유로 성추행을 당하지 않았는데 누명을 씌었다면 그것도 중대한 범죄다. 

양측이 각각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이상 명백한 증거에 따른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부당한 목적이 있는 ‘음해’라거나 미투 고발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날 양측의 기자회견을 공정하게 조명해봐야 한다. 먼저 정 전 의원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BBK 사건에 대한 억울함과 재심 청구의 배경이 있다. 

정 전 의원은 반드시 자신이 무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전 의원은 반드시 자신이 무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전 의원은 2011년 12월26일 대법원의 최종 실형 선고로 인해 구속수감 됐고 당시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 말은 약 6년3개월 후인 2018년 3월22일 이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현실이 됐다. 

2007년 대선 정국에서 정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옵셔널벤쳐스 주가조작 및 자금횡령의 공범 △다스와 BBK의 실소유주 △김경준과 공범이므로 함께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근거를 들어 “대통령이 되면 안 되고 감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과 당내 경선을 치렀던 박근혜 전 대통령, 박영선 의원 등 소위 MB의 비위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인물들이 몇몇 있었지만 정 전 의원만 옥살이를 했다. 

정 전 의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으로 MB의 구속을 지켜봤다”며 “징역 1년을 살았던 나는 11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다시 법과 정의의 심판을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만약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여 정 전 의원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 논리적으로는 민주당원 자격 박탈 역시 무효가 돼야 한다. 정 전 의원은 기자들에게 스스로를 “당적없는 민주당원”이라며 “법적으로 무소속이 맞다. 그러나 나는 영원히 민주당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심 결과가 나오면 다시 민주당에 복당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만약 정 전 의원이 전과자가 아니었다면 현재도 민주당원이었을 것이고 이 상황에서 팽팽히 맞서는 성추행 논란이 있었다고 해서 제명 조치가 내려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 당적을 갖고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는 없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게 정 전 의원의 뜻이다.  

피해자 안젤라 기자회견에 참석했으나 2차 가해 등의 우려로 당사자의 사진과 영상 촬영을 불허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피해자 안젤라 기자회견에 참석했으나 2차 가해 등의 우려로 당사자의 사진과 영상 촬영을 불허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반면 안젤라의 이야기는 이런 거다. “기억은 흐려질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지만 2011년 12월23일의 기억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날 정 전 의원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진실을 일관되게 말해왔다는 게 안젤라의 요지다. 

특히 “이제까지 그날의 시간을 입증할 사진이나 메모 등의 기록을 찾지 못 했다”며 구체적인 사건 시간과 알리바이 싸움으로 몰아가는 정 전 의원 측에 대응하지 못 한 이유도 설명했다. 

안젤라는 “그동안 시간대 논란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시간대에 관한 명확하지 않은 기억을 내세우는 순간 오히려 혼선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12월23일 오후 5시경 렉싱턴 호텔 안 카페에 있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그 증거를 공개하는 게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 증거는 두 건의 어플리케이션(포스퀘어) 위치 체크인 기록이다. 안젤라는 “당시 방문한 렉싱턴 호텔 1층 카페 겸 레스토랑인 <뉴욕뉴욕>에서 오후 5시5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최초 체크인을 했던 기록”이 있다며 캡처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32분이 지난 5시37분에도 체크인 기록이 있고 앞서 말한 성추행 장소에 대한 진술(9일 입장문)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안젤라는 “창문이 없고 하얀 테이블이 있으며 옷걸이가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 룸이라고 묘사했는데 증거로 제출한 사진 뒤편에 옷걸이가 있고 창문이 없고 하단에는 하얀 테이블이 보인다”고 말했다. 

안젤라가 제시한 포스퀘어 2차 기록. (자료=안젤라)
안젤라가 제시한 포스퀘어 1차 기록. (자료=안젤라)
안젤라가 제시한 포스퀘어 2차 기록. (자료=안젤라)
안젤라가 제시한 포스퀘어 2차 기록. (자료=안젤라)

이를 토대로 안젤라는 정 전 의원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자신의 자료와 정 전 의원이 가지고 있는 사진들을 비교해 보면 저녁 6시를 전후한 시점에 어디에 있었는지 드러날 것이니 사진을 공개해줄 것 △공개적인 성추행 인정과 진실한 사과를 하기 싫고 여전히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자신을 고소해줄 것.

안젤라는 “모순이 가득한 거짓으로 진실을 호도한 사람은 정 전 의원”이라며 “어떻게든 진실을 훼손하고 막아보려 해도 진실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용민 변호사(법무법인 양재)는 25일 정 전 의원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에 공개하면서 “정 전 의원이 성추행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본인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안젤라의 입장에서 정 전 의원을 비판해왔던 박훈 변호사(박훈법률사무소)는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변호인은 피의자가 현장부재를 주장할 때는 어디에 있었는지를 반드시 밝힌다”며 “난 지금은 정봉주의 성추행 여부에 전혀 관심이 없다. 정봉주가 현장부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때 변호인은 그 시간대 어디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 사건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고 아는 바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 전 의원이 렉싱턴 호텔을 가서 안젤라를 만났으나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즉 렉싱턴 호텔에 간 적 자체가 없다고 알리바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정 전 의원이 그곳에 갔다는 게 입증되면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열린 정봉주 미투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담당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열린 정봉주 미투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담당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안젤라가 렉싱턴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정 전 의원도 있었다는 사실까지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두 사람이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성추행의 유무를 바로 증명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애초에 정 전 의원이 대응 방향을 그렇게 설정해버린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또 다른 성추행 의혹을 받은 민병두 전 의원은 노래방에 단 둘이 간 사실을 인정했지만 성추행은 부인했다. 물론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명예욕이 남아있는 정 전 의원은 현직이 아니지만 민 전 의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정 전 의원은 “(보통 사건은 수사기관인 검찰이 하겠지만) 문제제기자와 주장하는 사람이 허위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즉 프레시안 기자가 허위사실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3시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C모씨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됐다. C씨는 경찰에서 그때 나는 슈퍼마켓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CCTV를 확인해보니 C씨는 백화점에 있었다. 그때 경찰이 C씨에게 당신 백화점에 있었는데 왜 슈퍼마켓에 있었다고 진술하느냐 범인이 맞다. 이런 논리다”라고 비유를 들면서 기억이 불완전하더라도 폭로자가 사실 입증을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은 결백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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