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사진=신현지 기자)
강릉의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3월의 낮 기온이 예년의 4월 중순에 해당하는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맞이 상춘객들이 늘고 있다.

특히 지난 24일은 부옇게 도심을 덮는 미세먼지에 많은 이들이 도심탈출과 함께 봄맞이 시도를 했다. 본지 역시 이들을 따라 동해의 강릉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출발 영동고속도로의 강릉방면을 타고 강릉JC를 지나 옥계IC에 이어 도착한 곳은 강릉의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2018 동계올림픽 이색성화봉송 구간으로 그 아름다운 경관을 전 세계인들에게 선보였던 만큼 기암괴석의 해안단구가 절경이다.

그동안 이 지역이 숨은 비경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 되었던 이유는 군사구역이란 특성 때문이다. 분단 이후 군인들의 해안 경비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이곳은 여전히 곳곳에 군인들의 초소가 보인다. 

임금이 거처하는 한양에서 정방향으로 동쪽에 있다는 뜻에서 ‘정동’이라 했고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심곡’의 유래를 찾는 ‘정동심곡의 바다 부채길’이 조성된 것은 지난 2017년 6월 1일.

'심곡 바다 부채길'에서 만나는 지역 어민들의 생선 시장(사진=신현지 기자)
'심곡 바다 부채길' 주위에 한 어민이 생선을 말리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2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고스란히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가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된 만큼 그 지세가 범상치 않다. 때문에 부채길 완성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한다.

육로와 접근이 어려워 모든 장비와 물자들을 해상 바지선을 통해 실어 나르는 난공사로 약 1년 9개월이 걸려 완성이 되었단다. 하지만 그 절경만큼은 여전해 도착한 여행객들은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의 기기묘묘한 비경 앞에서 겨울의 무거움을 가뿐하게 털고  탄성이다. 

이곳에 조성된 부채길은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심곡항 사이를 빙 둘러 약 2.86㎞로  바다를 두른 해안단구의 형상이 마치 부채를 펼쳐 놓은 듯하다 해서 부채길이란 지명이다.

이 길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을 만났다. 풋풋한 여고생들처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파도만큼이나 싱그러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여인들이다.

여행객들이 전설이 갓든부채바위를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여행객들이 전설이 갓든부채바위를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현지 기자)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 강릉에 도착한 7명의 여인들은 중고교 동창들로 약 40여 년만의 회우(會遇)라고 한다. 40여 년만의 만남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녀들의 표정은 갓 교복을 벗어던진 소녀들처럼 해맑다. 아마도 묵혀둔 어린 감성들이 바닷바람에 끌려 나온 탓이리라.

그녀들을 따라 부채길 탐방로에 서니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턱에 닿는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니 부채길을 따라 걷는 여인들은 깜짝 비명으로 뒷걸음질이다. 철재의 좁은 다리 밑으로 정강이를 적실 듯 넘실거리는 검푸른 물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어디 그뿐인가. 파도의 침식작용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진 북쪽의 몽돌로 해변은 벌써부터 맨발의 촉감을 즐길 수 있는 여름을 기다리게 한다.

2.86㎞로 탐방로에서 만나는 기기묘묘한 투구바위와 부채바위의 전설 역시도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빼놓을 수없는 재미다.  그 중 부채바위의 전설을 소개하면 이렇다. 

한 농가에 마당에 피어난 매화가 봄 소식을 알리고 있다.(사진=신현지 기자)
한 농가에 마당에 피어난 매화가 봄 소식을 알리고 있다.(사진=신현지 기자)

지금부터 한 200여 년 전에 이 동네 이씨 노인의 꿈에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방에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했단다. 이에 이씨 노인이 이튿날 새벽 일찍 배를 타고 가 보니 부채 바위 끝에 나무 궤짝이 떠내려 와 있는데 열어 보니 여자의 화상이 그려져 있더란다.

그래서 노인은 이를 부채바위에 안치해 두었는데 그 뒤부터 노인은 만사가 형통했단다. 얼마 후 노인의 꿈에 그 여인이 외롭다고 해서 서낭당을 짓고 화상을 모신 그것이 바로 부채바위의 전설이다.

특히 이곳은 삼국유사의 <헌화가>의 배경이 되는 곳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바로 ‘심곡항의 부채길’ 끝에서 만나는 ‘헌화로’다.

신라시대 강릉 태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000장 높이의 절벽. 심곡항과 금진항 사이에 있는 이곳의 ‘헌화로’가 삼국유사의 헌화가의 배경이 되는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우뚝 솟은 바위 옆으로 붉은 기운을 드러내는 진달래가 지나는 여인을 유혹이라도 하듯 여인들은 마음이 심쿵하다.

그러니까 2018년 봄은 강릉의 ‘심곡 바다부채길’을 지나 정동진역 키작은 소나무 주위에 아지랑이로 일렁이다 속초항의 이른 새벽 물안개로 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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