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출간한 임재정 시인

임재정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임재정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우리 집 동백 구경

임재정

 

선운사 그늘엔 섣부른 동백이 곱다고

찬구는 표나 끊어보자 한다

추운 계절이 어른대는 목덜미엔

이른 삼월이 소름으로 돋아 아지랑이인데

망설망설 하다가

 

바람이나 좀 쐬고 올게

막 문을 나서려는 참

아빠, 다녀오세요 해야지

어린것은 품고 두 녀석은 올망졸망 불러 세운 짙푸른 마누랄 배경으로

 

하, 그것들 혈색이 붉어

선운사 풍경 소리 못잖을 잔소리를 꾹 눌러 견디기로

 

나 동백 보고 왔다, 절창이더라

 

              - 임재정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문예중앙.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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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한 가정의 정겨운 장면이 한 장 일기처럼 읽히는 시다. 화자의 가족들이 느꼈을 따스함과 믿음직함이 전이되어 오는데 왠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땅에 가장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가늠해보며 측은함과 숙연함에 잠시 잠겨본다. 모처럼 일 없는 날 친구와 바람 좀 쐬어보려 했던 아빠는 배웅하는 세 아이들의 눈망울과 막둥이를 안고 배웅 인사를 가르치는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냥 꽃구경 나들이를 포기해버린다. 그 날 이 동백꽃 가정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그려보니 눈물 같은 뿌듯한 웃음이 솟는다.

  세상에 수많은 꽃이 많고 많지만 사람꽃처럼 아름다운 꽃이 있으랴? 가정은 이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다. 가정이라는 화원을 가꾸는 정원사인 가장들! 그들의 어깨는 때때로 얼마나 고달프고 무거울까?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이 지구를 밀고 가는 전사들이라고 생각한다. 비혼족, 저출산, 나 홀로 가구 증가, 노인 문제 등이 국가적인 암초로 부상하고 있는 이 시대가 바라봐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이 시를 통해 보게도 되었다.

  오늘은 최근 출간한 임재정 시인의 첫 시집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에서 한 편 차려보았다. 보석 같이 반짝거리는 시들 속에서 내 마음도 반짝거렸다. 이 시인이 가는 길을 신선함으로 기대하며 지켜보고 싶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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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정 시인 /

충남 연기 출생

2009년 <진주신문> '진주가을문예'에 「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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