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8척 태평양 바다 위에 띄워놓고 모기지 사태
아파트 2채 팔아 빚잔치...설상가상 아내의 유방암 말기 판정

염창역 부근 칼국수집에서 인생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김성호 씨 (사진=신현지 기자)
염창역 부근 칼국수집에서 인생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김성호 씨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저마다의 크고 작은 시련은 있다. 그 시련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강한 붓 터치의 역동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긋는 힘의 결핍으로. 

“그냥 의무감만이 나를 지탱하게 했다."

지난 4일 염창역 부근에서 만난 남성의 첫 마디다. 인생 이모작에 새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성호(54) 씨. 정확하게 말하면 17년 6개월의 섬유회사를 퇴사하고 무역회사 대표로 월 매출 25만 달러 수입을 올린 김성호 씨. 하지만 그것은 지난 과거형. 현재 그는 염창역 부근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다. 

테이블 14개의 칼국수집을 시작한 건 지난 2013년, 올해로 만 5년째인 그가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배 8척 태평양 바다 위에 띄워놓고 모기지 사태 닥쳐

“제 욕심이 화근이었지요. 그러니까 OO섬유회사의 무역부에서 17년 6개월을 부장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섬유회사를 차렸는데 첫 시작부터 승승장구였습니다.

우리나라 섬유를 미국, 중국, 호주에 수출하는 작업이었는데 직원 4명으로 월 매출 25만 달러를 올렸을 만큼 중소기업체로써는 성공이었어요. 늘 통장에 달러가 넘쳐났어요.

그러니 일에 의욕도 넘쳤고 신임이 좋으니 은행이나 공장에서도 일처리가 다른 회사보다 늘 우선이었습니다. 그렇게 8년을 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제가 자만해지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거만했다고 해야 맞지요.

그러니 제 역량도 알아보지 못한 거고요. 물건을 가득 실은 배 8척을 태평양 바다 위에 띄워놓고 모지지 사태를 맞았습니다. 그때 욕심만 내지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자만과 거만으로 제 인생의 전성기에 종을 친 겁니다.

김성호 씨가 운영하는 OO칼국수집,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길게 줄이 이어진다 (사진=신현지 기자)
김성호 씨가 운영하는 OO칼국수집,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로 길게 줄이 이어진다
(사진=신현지 기자)

33평 아파트 2채를 팔아 빚잔치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가족이 들어갈 집이 없더라고요. 아이 셋을 부모님 댁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발 닿는 곳 아무데나 퍼질러 매일 같이 술이었어요.

생각해보세요. 하루아침에 제가 그렇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 달이면 2,3억을 너끈히 주물렀던 제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으니.그런데 그때 설상가상 제 집사람이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요.

진짜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습니다. 그때 집사람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떡합니까, 집사람을 살리고 봐야지. 그래서 제가 집사람이 하던 식당을 하게 된 겁니다.”

아내를 살려야한다는 의무감만으로 시작한 식당...성난 무표정에 매출은 오르지 않아

하지만 그는 그냥 아내를 살리겠다는 남편의 의무감만으로 일을 시작했단다, 그러니 그의 모든 행동은 기계적일 수밖에 없었고.

“암투병인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내놓은 110kg의 거구의 남자가 그저 의무감에 굳은 무표정으로 손님을 맞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과연 장사가 잘 될 수 있는지. 물론 나중에 몸무게가 70까지 빠져 친구들이 저를 몰라볼 정도가 됐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제 상태에 매출은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음을 잡지 못해 혼란스러워했고요. 제가 그 아이들을 돌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녁 10시 식당 문을 닫고 나면 그 나머지 시간은 술로 채웠어요. 제 자신을 향한 분노였지요. 내가 너무 자만해 그리됐다는 자책 말입니다. 그러니 아이들도 저를 멀리했어요. 그렇게 3년을 보냈어요.  

“사장부터 변해라, 혼자만 잘 살 생각마라, 주위를 둘러봐라.”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식당에 손님으로 오셔서 절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라고요. 그러더니 하시는 말씀이.

“매출을 올리려면 당장 사장부터 바꿔라, 그리고 니 혼자 잘 살 생각 말고 주위를 둘러봐라. 지금 당장 가까운 동사무소를 가봐라"

그런데 처음엔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내 처지가 그러니. 몇 달 후에야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눔가게’를 알게 되었고요.

그날 이후부터 저도 동네 독거노인들께 무료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20분씩 독거노인들께 무료식사를 대접하면서 제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힘든 사람은 저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 또 그분들이 제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 표정들에서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분위기 바꾸려 파머 머리에 빨강 노랑 파랑 원색의 옷 입어
 

그러니까 그는 한 노인이 주는 가르침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깨달음으로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했단다. 일부러 머리를 파머하고 빨강 노랑 파랑 원색의 옷을 입고, 또 그렇게 입다 보니 스스로의 모습이 어색해서 자꾸 실실 웃음이 나오고.

“그런 제 모습에 사람들이 김사장 무슨 좋은 일 있냐고... 그런 소리를 들으니 나쁘지 않더라고요. 일부러 밝아지려고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그려지고 그래서 차츰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되고. 그 전에는 친구들과도 연락을 딱 끊고 살았어요. 너무 비참했으니까요. 그런 제가 차츰 동네의 일에도 참여하면서 조금씩 일에 의욕이 생겼습니다.

식당의 본사 물품을 받는 대신 제가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체인점 본사에 들어가 3개월간 요리도 배웠습니다.

원래는 그게 어려운 일인데 본사와 서로 형편에 맞게 조율을 했던 거지요. 식당의 종업원도 파트타임으로 전환해서 인건비를 절약했고요. 그렇게 3년을 하고나니 어느 순간 매출이 3천이 넘더라고요.”

사장의 변화에 손님들 북적...집 마련에 음악방도 함께 운영

그가 그렇게 스스로 밝아지려 노력하니 어느 순간부터 그의 식당은 손님들로 꽉 차 있더란다. 그 덕분에 점심시간이면 14개 테이블이 두 번의 손님들로 차 월 매출 3천을 넘었고 그제야 그는 아내의 병원비에서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단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 대출금을 끼고 식당 가까운 곳에 아파트 한 채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들에 힘을 얻어 현재는 음악방인 ‘방음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색소폰을 시작했는데 소리가 크다보니 어디 연습할 데가 없더라고요. 음악하는 사람은 아마도 다 그런 불편을 아실 것인데, 그것에 창안하여 음악방인 '방음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음악하는 학생들과 음악전문가들이 이용하는데 사업성은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김성호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막내 아들과 두 딸 (사진= 신현지 기자)
김성호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가족들 (사진= 김성호씨 제공)

앞으로 계획은 집사람과의 오붓한 여행...미안한 두 딸에게 집 선물 하고파

이렇게 인생 이모작에서 새로운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계획은 아내와의 단 둘이 오붓한 여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두 딸들에게 집 한 채씩을 선물하는 것이라며 눈빛을 빛낸다.

 “예전에는 집사람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아내가 아픈 뒤로는 여행을 못 해봤습니다. 집사람과 오붓한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막내아들과 두 딸에게 아버지로서 무관심했던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딸들에게 집을 하나씩 사주고 싶습니다.

특히 큰애는 제가 좌절해있는 동안 학교도 미룬 채 동생들을 돌봐줬는데 그게 참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그 녀석이 맏이로서 역할을 너무 잘해줬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소망이 있다면 제 집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특별히 바라는 건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봐라...전성기라는 생각이 들 때 자신의 역량에 대해 정확히 체크해라 

아내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소망이라며 설핏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보일 듯 말듯 미소를 그려 말한다.

“사람이 굴곡 없이 평탄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사는 방법이 전과는 달라진 것이지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봐라보라 하고 싶습니다. 그럼 해답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지금이 인생의 전성기라고 느껴진다면 자신의 역량에 대해서 체크해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뒤늦게 후회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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