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 연령 하향의 조건화로 학제개편을 주장해온 자유한국당, 청소년과 시민단체는 그런 전제조건을 다는 것은 12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용태 자유한국당 2기 혁신위원장은 “우리는 제안을 하는 거고 당 지도부에서 그걸 수용할지는 거기서 판단하는 거니까”라며 당의 공식 입장과 혁신위원회의 요구사항에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내 모든 정당이 조건없는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해 찬성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만 ‘학제개편’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사진=자유한국당)
지난달 22일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2기 혁신위원장을 밭은 김용태 의원이 홍준표 대표에게 혁신안을 전달했다. (사진=자유한국당)

최근 한국당의 2기 혁신위원회는 홍준표 대표에게 혁신안을 제출했는데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은 물론 피선거권 연령 하향까지 포함하고 있다. 당장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만 18세 청소년들과 관련 단체(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그럼에도 답답하다. 혁신안에는 학제개편(7살 즉 1년 더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하고 중학교 과정을 2년으로 줄여 2년 더 일찍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학제개편을 조건화한 선거권 연령 하향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시행조건이 혁신안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관련해서 김 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제개편을 조건화한 선거권 연령 하향에서 선제적으로 혁신위가 당 지도부에 요구할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저희는 당연히 선거구제 개편과는 별개로 선거연령 하향은 저희 입장이었고 명문화해서 혁신안에 담은 것이니까 지도부에서 잘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 그런 취지로 요구한 것이라 볼 수 있나 즉 조건화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분명히 말했다.

즉 김 위원장은, 혁신위가 당 지도부에 선거권 연령 하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확인해줬다. 혁신위가 두 달 간 토론한 끝에 선거권 연령 하향이 담긴 혁신안을 확정했고 이를 전달했으니 당에 요구하는 것과 같다는 걸로 풀이된다.

지난달 22일 삭발을 감행한 3명의 청소년들. (사진=박효영 기자)
지난달 22일 선거권 연령 하향을 촉구하며 삭발을 감행한 3명의 청소년들. (사진=박효영 기자)

다만 애매한 게 있다. 기자는 분명 학제개편을 조건화 한 선거권 연령 하향이라는 당의 입장을 전제한 뒤 여기에서 선제적으로 혁신위가 요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김 위원장은 흔쾌히 동의하는 어조로 답변했지만 학제개편과는 별개로가 아니라 “선거구제 개편과는 별개로”라고 표현했다.

김 원내대표의 발언이 일찌감치 있었고 이것이 당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한국당은 3일 발표한 개헌 설명자료에서 “학령제와 연계하여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명문화함으로써 참정권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 “선거 연령을 헌법에 명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헌법에 명기하자는 그런 뜻은 전혀 아니다. (명문화에 대해서는) 협상을 할 때 분명히 하자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한국당은 개헌할 때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할 것이기 때문에 선거연령 이 부분도 같이 논의를 하자 이런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 다음에 그냥 선거연령만 낮추면 고등학교의 정치화 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 논의할 때 학제개편도 같이 논의하는 게 좋다”며 기존의 한국당 입장도 거론했다. 

김 위원장이 말해준 것의 행간을 살펴보면 한국당의 개헌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국회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같이 논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선거 3대 이슈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기초의회 선거구제·선거권 연령 하향’이다. 한국당의 최대 관심사는 의회에 대통령의 권한을 많이 가져오는 일이다. 소위 말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분권형 개헌을 해서 책임총리제(총리추천제)를 실시하자고 요구하는 건데. 이것만 정부여당으로부터 양보받는다면 개헌 시점, 연동형 비례대표제, 기초의회 선거구제까지 합의해줄 수 있다는 게 한국당의 속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선거권 연령 하향도 일괄 타결이 가능하다. 단, 여야 개헌 협상 과정에서 정부형태 관련 분권형 개헌안을 양보받는 것을 전제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전달된 2기 혁신안. (사진=연합뉴스 제공)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전달된 2기 혁신안. (사진=연합뉴스 제공)

거대 정당으로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기초의회 3~4인 선거구제가 전국에서 2인 선거구로 쪼개지고 있는 현실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거대 정당인 한국당이 기초의회 선거구제까지 꺼내는 것은 분권형 정부형태를 얼마나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김 원내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개헌 로드맵을 발표하며) 비례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구 편차가 심한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의 선거구제를 달리하고 비례대표제를 보완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총리추천제라는 분권형 개헌안에 합의해주면 한국당이 곧바로 선거권 연령 하향까지 타협해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한국당의 선 학제개편 후 선거권 연령 하향 방침에 대해 청소년들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공식적으로 비판했다.

제정연대는 4일 논평을 내고 “학제개편은 교육행정의 문제이고 선거권을 비롯한 참정권은 기본권의 문제다. 학제개편을 방패막이 삼아 선거연령 하향을 막거나 유예시키려고 하는 것은 국민의 참정권을 개헌 국면에서의 정치적 거래에 이용하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학제개편은 교육제도의 개편과 교사 수급 및 행정시스템의 변화 등이 동반되어야 하는 만큼 단기간의 준비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현재보다 1년 앞당겨 만18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야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돼도 12년 후에 선거권 연령 하향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즉 “(2019년이 되면 2013년생이 7살이 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8세가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가정하면) 12년 후에나 선거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제정연대는, 한국당이 교실에서의 정치화를 우려한다면서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 마치 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범죄인 양 호도하고 있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는 혁신안을 중심으로 당을 쇄신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진=자유한국당)
홍 대표는 혁신안을 중심으로 당을 쇄신하겠다고 공언했다. (사진=자유한국당)

한편, 홍 대표는 혁신안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홍 대표는 지난달 22일 중앙당사에서 혁신안을 전달받으며 “신보수주의 가치헌장은 우리당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정해주는 정책혁신의 마무리가 되는 그런 헌장”이라며 “김용태 위원장과 2기 혁신위원 여러분들이 만든 신보수주의 가치헌장을 중심으로 적극 수용해서 우리 자유한국당이 새롭게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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