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대림동에 조선족의 상점이 즐비하다 (사진=신현지 기자)
영등포구 대림동에 조선족의 상점이 즐비하다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언제부턴가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를 차이나타운이라 부르는 것에 낯설지 않다. 즉, 한국 속의 작은 중국마을이라는 것에 동의어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왜일까.

“다들 왜 이 동네를 나쁘게 말하는지..., 조폭 소굴이네 우범지역이네, 특히 기자님들이 더 그래요.”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 대림역에서 내려 500m가량 걸어 만난 조선족의 첫마디다. 영화까지 만들어 더욱 이 동네 이미지를 흐려놓았다며 얼굴을 찌푸린 그는 별로 답해줄 게 없다며 자리를 피하기까지 한다.

그가 쌩하니 들어간 곳은 대부분 조선족들이 이용하는 환전소. 환전소 주위로 붉은 간판이 난무하다. 그러니까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약 1㎞에만 나와 서도 이 지역이 조선족들의 중심 생활권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도림로 38길에서 디지털로 37길로 일대가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점포들로 즐비하다. 식료품점, 환전소, 여행사, 식당 등 약 1000여 곳이 넘는다. 더욱이  그 범위가 확대되어 금천구 가산동, 관악구 신림동, 광진구 자양동까지 조선족들의 중심 생활권에 들어있다.

그뿐인가 주말이면 중국 대명절이라도 맞는 듯 전국에 흩어졌던 조선족들이 모여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곳이 대림동이다. 그러니 조선족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이 지역에서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불법체류자들이 숨어 정착지를 확보했던 만큼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솔직히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에 조선족들 스스로도 자정의 노력으로 이미지를 쇄신하겠다는 뜻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살아온 문화가 확연히 다른 만큼 그들의 행태에 부정적인 시선을 벗어나는 것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라는 해석이다. 

대림동 원주민과 조선족으로 구성된 자율 방범대, '자정의 노력'

본지가 대림동을 찾은 이날에도 술 취한 조선족 두 명이 서로 엉겨 소란을 피운다는 신고 접수에 영등포경찰서 관할 기동순찰대 차량이 급히 출동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조선족의 강력범죄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것이 이곳 경찰관들의 설명이다. 대림동의 원주민과 조선족으로 구성된 자율 방범대가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순찰을 돌며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그런 노력에 강력 범죄가 2년 전에 비해 60%가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림2동 30년 지기라는 이 모씨는 예전에 비해 조선족들이 좀 얌전해 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들 때문에 골치 썩는 일이 한 두 개가 아니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쓰레기 분리 없이 그냥 막 남의 대문 앞에 내놓죠. 끼니마다 사용한 기름을 싱크대에 그냥 막 쏟아버려 하수구 막히는 건 예사고요. 길거리 아무데나 침은 왜 그리 뱉고, 수북한 담배꽁초는 또 어떻고. 그렇지만 예전처럼 연장 들고 쌈질하는 것은 좀 준 것 같기는 합디다.”

조선족이 주 고객인 중국식료품 상점 (사진=신현지기자)
조선족이 주 고객인 중국식료품 상점 (사진=신현지기자)

조선족도 자국민과 똑같은 건강보험 혜택 

한편 이날은 조선족의 점포가 집중된 중앙시장을 벗어나 시장 뒷골목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역시 깊숙이 들어간 골목 안도 온통 붉은 간판이다.

그 중 큰길에서 볼 수 없었던 중국식품상점이라는 잡화상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60~70년대 시골 구멍가게 같은 이미지라 그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 상점 주인도 조선족 여인이다.

1999년 불법체류자로 한국에 들어 온 최진옥(73)씨. 최 씨는 2007년에야 비로서 한국의 정착민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두 딸도 한국의 학교를 나와 한국사위를 맞았는데 착하고 성실하다며 여간 자랑이 아니다.

왜 한국에 올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당연 고국이니 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반문이다. 그러면서도 떠나온 연변이 그립다는 말을 덧붙인다. “ 친척이 있으니... 친구도 보고 싶고...”

여유가 생기면 연변에 다녀올 거라는 그녀에게 한국에 바라는 점을 물으니 배시시 웃기만 할뿐 선뜻 말을 못 한다. 그러다 그냥 좋다고 말한다. 특히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니 아파도 문제없다며 웃는데 정작 뭔가 하고 싶은 말은 못 하는 눈치다.

그런 여인이 문득 고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동포들을 위해 정책을 펴준 것이 참으로 고맙다고 말한다.

“그 양반이 진짜 우리 중국동포들에겐 고마운 양반이죠. 노 대통령 정책으로 2007년에 중국동포들이 엄청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 양반 돌아가셨을 때 여기 중국동포들 절반은 넘게 그 양반 문상을 갔을 겁니다. 나도 갔어요. 우리 두 딸 앞세워서”

가게 안을 둘러보니 식료품 대부분이 중국상품이다. 이 동네의 70%가 중국동포라 장사가 썩 잘되었는데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접을 생각이라고 한다. 가게 수입에 비해 집세가 너무 올라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서.

“여기서 10년 넘게 살았는데 요즘 집세가 너무 올랐어요. 이 동네 70%가 중국동포들인데 내 집 가진 중국동포들은 별로 없어요. 거의가 한국사람들이죠. 그러니 중국동포들이 여길 떠나면 집 주인들도 타격이겠지요.”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웃는 그녀를 뒤로하고 가게를 나오니 어느새 밤이다. 골목의 즐비한 붉은 간판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모습이다. 붉은 간판 아래마다 어눌한 한국어 섞인 중국어가 한낮보다 소란하다.

'한국 속의 중국인 거리', 그러니 한국인이 기피하는 직업에서 조선족의 역할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우리의 다문화 포용정책에 조선족들은 특별한 위치라는 해석이고.

외국인이면서도 결코 외국인이라 할 수 없는 위치. 조선족들과의 무리 없는 상생을 꿈꾸는 대림동의 밤거리가 유난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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