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은 3인 공범관계였다, 급하게 재단이 설립됐고 최순실씨의 의사가 모두 반영돼 운영됨, 대기업은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손목 비틀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바른미래당)는 2016년 10월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자신이 만든 공익재단에는 한 푼도 안 내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가 추진한 사업에 출연한 건 기업에 강제한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고 황 전 총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황 전 총리의 주장과는 완전히 다르게 판단했다.

6일 14시10분에 시작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대기업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의 출연금을 내도록 하게 한 범죄 혐의(직권남용 및 강요)가 유죄로 인정됐다. 

김세윤 부장판사가 박 전 대통령의 기업 재단 출연과 관련해서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캡처사진=YTN)
김세윤 부장판사가 박 전 대통령의 기업 재단 출연과 관련해서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캡처사진=YTN)

대기업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손목 비틀기가 법적으로 인정됐다. 김세윤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박 전 대통령의 두 가지 지시에 주목했다.

△2015년 7월경 이뤄진 대기업 총수들과의 비공개 단독 면담에서 재단 출연 협조 부탁 △2015년 10월 중순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리커창 총리 방한이 곧 예정돼 있고 문화사업 관련 중국 정부와의 양해각서가 있을 것이니 빨리 재단 설립을 마무리하라고 지시

이날 재판은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 최초로 생중계가 이뤄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재판은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 최초로 생중계가 이뤄졌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 전 대통령은 “지시한 사실이 없고 (기업들이) 알아서 했다”고 진술했지만 박 판사는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과 수 차례 이뤄진 증언들을 거짓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판사에 따르면 그렇게 급하게 재단이 설립되는 과정과 여기서 기업인들이 느낀 불안감은 이런 거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이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전국경제인연합)을 급하게 만나 재단 설립 의사를 전달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재단 명칭과 임원진 구성에 대해서도 안 전 수석에게 지시를 내렸고, 이는 최순실씨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됐다. 전경련이 대기업들에게 급하게 연락해 “VIP의 관심사니까” 하루 또는 이틀 내에 재단에 출연을 결정해달라고 요청했고, 기업들은 재단 사업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기회도 없이 수 억원에서 수 십억원을 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안 전 수석·최씨의 공범 관계가 모두 인정된다. 

최순실씨는 박 전 대통령의 권력을 악용해 대기업들에게 재단 출연금을 강요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판사는, 물론 박 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협박한 사실은 없다고 판단했지만 판례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게 한 것”은 인정된다며 이를 법적 용어로 “위구심”라고 설명했다. 즉 권력이 있는 자가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해서 억지로 행위를 하게 한 것은 강요죄라는 취지다. 

김 판사는 “각종 인허가와 세무조사의 권한을 가진 경제수석과 대통령의 의사를 거부할 기업은 거의 없다”며 “그들로부터 불안감을 일으키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강요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미르재단의 재산 비율에 대해서도 처분이 쉬운 보통재산 8, 기본재산 2의 비율이 되도록 무리하게 편성된 것과 출연금을 200억원 더 증액한 것도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됐다. 여러 증거들로 볼 때 최씨가 재단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도 인정된다. 실제로 최씨는 자신이 추천한 임직원들로부터 “회장”으로 불렸고 재단 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기도 했다. 최씨가 대통령의 직권을 위법하게 악용한 것이 인정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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