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현판식 기습시위, 삭발과 농성 등 모든 것을 다 했다, 2017년 초 법안소위를 통과한 뒤 무슨 일이 있었나, 결국 한국당 지도부가 결단할 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청소년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선거연령을 하향해주세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 한국당의 지도부가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들려온 외침이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와 청소년들은 10일 오후 한국당 당사 1층 현관 앞에서 기습 시위를 했다. 

한국당의 ‘사회주의개헌저지투쟁본부’ 현판식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피켓을 든 청소년과 청년이 현판 앞으로 다가왔고 홍 대표는 이를 바라봤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현판식에서 기습시위를 한 제정연대 회원들과 청소년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현판식에서 기습시위를 한 제정연대 회원들과 청소년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경찰과 당직자에 끌려나오는 시위자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경찰과 당직자에 끌려나오는 시위자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한국당 관계자들에 의해 시위자들이 끌려나오는 과정에서 한 청년은 넘어졌고 한 청소년은 허리가 들려졌다. 

시위 참여자들에 따르면 끌려나온 뒤 당대표실의 이건용 팀장이 “자유한국당은 학제개편 조건없는 선거연령 하향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아직 한국당의 당론은 ‘학제개편이 전제된 선거연령 18세 하향’인데 이 팀장의 말처럼 바로 한국당의 입장이 바뀔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길게는 20년 전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 주장은 있어왔고 짧게는 촛불 정국에서 제정연대라는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제정연대와 청소년들은 지난달 22일 국회 근처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그날 3명의 청소년은 삭발까지 했다. 

제정연대는 기자회견,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 농성, 1인 시위, 퍼포먼스 등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고 결국 한국당의 학제개편 조건화 당론으로 인해 선거권 하향이 막혀있다는 판단 아래 한국당 의원들에게 접촉하고 있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

국회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에서 한국당 간사를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제정연대와 면담을 가진 자리에서 “나는 (선거권 하향) 안건상정에 단 한번도 거부한 적이 없다”며 해명했지만 문제는 한국당 지도부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결국 무위로 돌아간다는 현실이다.  

2017년 1월9일, 통과된 선거권 연령 하향은 왜 ‘좌절’됐나

9일 오후 농성장(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 지지 방문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체적인 국회 내의 절차를 설명하면서 한국당의 반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표 의원이 9일 오후 농성장을 찾아 도시락 토크를 진행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표 의원이 9일 오후 농성장을 찾아 도시락 토크를 진행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표 의원은 “본회의·상임위 전체회의 등 다 공개되는데 (상임위 전체회의에 올라갈 안건을 심의하는) 법안 소위만큼은 비공개다. 그 안에서 어떤 말이 오가는지 모른다. 물론 회의록은 나중에 공개된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보통 법안소위에서 통과된 법률은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그대로 의결시키고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로 넘긴다. 즉 법안소위→상임위 전체회의→법사위→본회의→대통령 공포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법안소위 단계의 여야 합의가 이뤄지면 나머지 절차는 수월하게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1월9일 당시 안전행정위원회(현재는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안전 및 선거법심사소위원회)에서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하지만 1월11일 안행위 전체회의에서 이를 관행대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표 의원과 청소년들은 한국당의 입장을 바꾸게 할 전략적 대응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표 의원과 청소년들은 한국당의 입장을 바꾸게 할 전략적 대응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당시 안행위에서 간사를 맡았던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은 “여야 입장 정리가 안 되고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소위 통과가 됐다고 전체회의에서 의결을 하는 것은 조금 여러 가지 면에서 재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도 당시도 행안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재중 한국당 의원도 “(김영진 민주당 의원이 소위를 통과했으니 아무리 더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관행적으로 전체회의에선 우선 통과시키고 이후 법사위에서 논의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 안행위 소관에 대해 책임지고 정리할 것은 하고 안 할 것은 안 해야지 법사위에 넘겨서 또 숙려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법안소위가 열렸을 때 새누리당 전국상임위원회가 있어서 참석 못 했다, 그날 아파서 참석 못 했다, 한국당에서는 강석호 의원만 참석해서 동의해준 거다 등 그래서 선거권 연령 하향 문제는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키지 못 하겠고 관행과 달리 예외의 경우도 있다는 게 당시 한국당의 입장이었다. 

그때 표 의원은 “한 분의 새누리당 위원(강석호)께서 (법안소위에) 참석했는데 거듭 소위위원장(민주당 박남춘 의원)께서 <이거 괜찮은가 당의 어떤 입장과 또 원내대표단의 의견 그 다음에 지금 불참 중인 윤재옥 간사의 의견을 확실히 묻지 않아도 되는가>라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며 “어쨌건 새누리당을 대표해서 소위에 참석한 위원(강석호)께서 <하시지요> 이렇게 답변했기 때문에 소위 통과가 됐다”고 밝혔다.

소위를 통과한 법률이 전체회의에서 통과되지 않은 예외도 물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청소년 투표권 자체가 보수정당에 불리하다는 기본적인 판단이 작용했다. 

그때 자리했던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다른 데서 논의하자. 다음에 논의하자. 4당이 얘기하자. 그거 날것 그대로 얘기하면 안 하겠다는 얘기”라며 그 당시 새누리당 안행위 위원들을 호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여기 있는 여당 위원님들 지금 표 계산 하고 있는 것 아닌가. 18세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말하고 있는 청년정책은 무용하다. 그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냥 고해를 하라. 오히려 이런 얘기에 정치적인 수려한 미사여구로 꾸미지 말고 냉정하게 얘기하라. 동의하기 싫은가. 그 부끄러운 민낯을 그냥 국민에게 보이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표 의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선거권 하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원들 중에 하나다. (사진=박효영 기자)
표 의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선거권 하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원들 중에 하나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때는 아직 학제개편을 조건화하는 한국당의 당론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절호의 기회를 놓친 이후 올해 2월1일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본회의 연설을 통해 “선거연령 하향에 따른 <학교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는 취학연령 하향으로 불식해 가도록 할 것이다. 조기취학은 18세 유권자가 <교복입고 투표>하는 상황도 초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유아 학부모들의 보육 부담을 완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이후에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 하고 있다.

당초 소극적이었던 바른정당도 현재 바른미래당으로 재편된 이후에는 김동철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테이블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등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9일 오후 농성장을 방문한 하태경 의원. 하 의원이 방문하자마자 지나가던 할아버지들로부터 항의를 받았고 하 의원은 "청소년을 믿어주자"고 말했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9일 오후 농성장을 방문한 하태경 의원. 하 의원이 방문하자마자 지나가던 할아버지들로부터 항의를 받았고 하 의원은 "청소년을 믿어주자"고 말했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5일 선거운동 가능 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14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후 하 의원은 9일 오후 농성장을 직접 방문해 “선거운동 연령 제한 폐지를 발의하려고 했는데 단계적으로 하려고 14세로 발의했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선거권을 아이들에게 주는 일을 왜 하냐고 항의하던 할아버지들을 향해) “아이들을 믿고 선거권 보장해도 된다”고 말했다.

선거권 연령 하향을 위해서는 한국당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선거권 연령 하향을 위해서는 한국당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결국 한국당의 지도부가 입장을 선회하지 않는 이상 이번 지방선거에서 만 18세가 투표할 수 있는 일은 요원하다. 학제개편은 당장 가능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정치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조건화를 풀어야 바로 선거권 하향이 가능하다.  

특히 한국당의 전략상 개헌 정국과 맞물려서 정부여당에 권력구조 개헌안을 양보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선거권 연령 하향 문제가 취급되는 측면이 커졌다.  

제정연대의 언론 담당을 하고 있는 강민진 활동가가 표 의원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제정연대의 언론 담당을 하고 있는 강민진 활동가가 표 의원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제정연대는 5일 한국당 당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비가 오는 중에도 드러누운 적이 있었다. 끝장토론 요청서도 당직자에게 전달했다. 이날(10일) 현판식에서 기습 시위를 한 것도 그렇고 다음날(11일) 국회에서 한국당 13인 의원의 정치적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인 것도 모두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있다.

한국당의 지도부가 당론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다. 이게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제정연대는 4월 발의를 목표로 뭐든 다 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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