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할머니의 오징어

유하

 

오징어는 낙지와 다르게

뼈가 있는 연체동물인 것을

죽도에 가서 알았다

온갖 비린 것들이 살아 펄떡이는

어스름의 해변가

한결한결 오징어 회를 치는 할머니

저토록 빠르게, 자로 잰 듯 썰 수 있을까

옛날 떡장수 어머니와

천하 명필의 부끄러움

그렇듯 어둠 속 저 할머니의 손놀림이

어찌 한갓 기술일 수 있겠는가

안락한 의자 환한 조명 아래

나의 시는 어떤가?

오징어 회를 먹으며

오랜만에 내가, 내게 던지는

뼈 있는 물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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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시각이 시적이라면 우리 주변엔 시적인 것들이 가득할 것이다. 시인의 눈은 오징어 회를 치는 해변가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바라보며 시를 건져냈다. 문득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떠오르기도 하는 시다. 시의 탄생은 그다지 위대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한결한결 정교하게 회를 쳐내는 할머니의 손에서 발견하는 시적인 순간. 그 가르침이 오징어의 뼈인 것이다. 할머니의 숙련된 손놀림이야말로 기교가 아닌 열심히 살아온 그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하루아침에 거저 이루어내는 일이란 없다.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손들의 부단한 고단함이 있어서 세상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시인은 시로 말하고 사업가는 그의 경영력으로 말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한다. 지금 이 자리의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돌아본다.  당신과 나는 오늘 어느 계절을 가고 있는가? 후회 없는 가을을 맞을 수 있는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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