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정의당 대표 농성장지지 방문, 발달장애 예산 삭감 추세,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촉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얼마나 힘드실지 잘 안다. 우리 언니 아들이 중증장애인인데 30살이 다 돼가는데도 덩치는 산만한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들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삭발하고 농성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17일 오전 농성장을 방문한 이 대표도 “정의당은 100% 해야한다(발달장애 국가책임제)고 생각한다”며 여러 가지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정미 대표와 부모연대 소속 부모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정미 대표와 부모연대 소속 부모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3일부터 서울 청운동 청와대 주변에서 농성에 돌입했고 이날로 15일째를 맞고 있다. 부모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꼭 만나고 싶다고 호소했고 2일 209명의 부모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당시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부모들이 농성에 돌입한 이유는 단순히 2018년 발달장애 예산이 삭감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했던 치매 국가책임제와 같이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2014년 4월 ‘발달장애인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국가적 지원 의무가 공식화됐지만 갈수록 관련 예산액은 줄고 있다. 법률이 마련됐고 이에 따라 다각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관련 예산이 매년 400억원~800억원(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과 정부안 실현을 위한 추계) 정도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20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7회 장애인의날 강원도 기념식에 참석하며 한 장애인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4월20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7회 장애인의날 강원도 기념식에 참석하며 한 장애인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예산액 하향 추세는 그대로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91억원·2017년 89억원에서 2018년 85억원으로 더 줄었다. 올해 전체 예산 429조원 중 146조2000억원이 보건복지노동 부문이고 이는 34%를 차지한다. 146조2000억원 중 발달장애 관련 예산은 0.005%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해 4월20일(장애인의 날) 장애인 공약을 발표했고 일주일 뒤엔 구체적으로 장애인 교육 및 발달장애와 가족 등에 대해서 정책협약을 맺었다. 당시 발달장애 관련 공약에는 △주간활동서비스 제도화 △활동지원서비스 제공시간 확대 △발달재활서비스 이용 대상과 지원 금액 확대 △장애인 부모 동료상담 지원 △양육정보 제공 시스템 구축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운영 지원 등이 있다. 

이 대표가 막 농성장에 도착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가 막 농성장에 도착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결국 정부의 의지 문제다. 부모연대는 이미 많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결국 문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간절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 말 한 마디를 위해서는 일단 만나야 한다. 그래서 농성하고 삭발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오간 대화 내용을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대표는 “(마찬가지로 다운증후군 딸을 둔 나경원 자유한국당이 농성장에 찾아온 일을 대화하던 중에) 아니 왜 자신들이 권력잡고 있을 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가 지금 와서 이러고 있느냐”라고 말했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나 의원이 방문했을 때) 나가라고 당신이 한 게 뭐 있냐고 소리쳤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더 나아졌다고 본다. 본인도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 말했고 듣고 있던 A부모는 “우리 정의당만 다들(정의당의 장애인 당원을 가리키며) 매일 나오고 있다. 정의당이 원내에서 힘을 팍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종술 회장은 직접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만들었고 발달장애 관련 시민운동을 이끌어오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윤종술 회장은 직접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만들었고 발달장애 관련 시민운동을 이끌어오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B부모는 “19일에 77인의 선언단이라고 해서 온라인에서 신청받고 있다. 이 농성의 원래 목표는 4월20일인데 어려워 보여서 5월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일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7월7일 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우리도 대통령과 꼭 좀 만나고 싶다. 그렇게 77인의 선언을 받는 것이다. 19일 때 오체투지로 장애인 동지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서 할 계획”이라고 결연한 투쟁 의지를 보였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도 “7월7일에는 꼭 만나야 한다. 남북과 북미 정상도 만나는데. 현실적인(물리적인) 거리는 굉장히 가까운데 장애인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이 시혜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 우리 이 대표가 강하게 요구해달라. 국회 연설을 하게 되면 언급해달라”고 부탁했고 이 대표는 “국회 연설보다 대통령을 앞에 딱 만나고 있을 때 얘기를 하겠다. 밥먹을 자리에 오라고 그러면 꼭 그 말씀을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 시민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 시민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C부모는 “(문 대통령이) 다른 것을 말씀하실 때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하겠다고 하면 되는데 다른 것들은 다 하겠다고 하더니만 국가책임제 이야기만 싹 뺐다. 경상도 말로 대통령에게 우리가 좀 몰캉한가 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 대표는 “오늘은 고용노동부 장관(김영주) 간담회가 있고 내일은 보건복지부 장관(박능후)을 만나는데 장관들 만나봤자 어차피 기재부(기획재정부)나 이쪽에서 안 해준다고 그러니까”라며 문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하는 이유를 말했고 이 대표는 “그래도 코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상임위에서 (장관들이) 약속한 것에 대해서 이행을 요구할 수 있으니까”라고 호응했다. 

박 대표는 “모든 사람들(정부부처 관계자)을 만나보면 다 기재부 탓을 하더라. 그들도 다 마음은 굴뚝같다고 하는데 그놈의 굴뚝은 다 어디갔는지 싶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추경 예산 관련 부탁을 하기 위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만난 장관들. (사진=박효영 기자)
같은 날 오후 국회에서 추경 예산 관련 부탁을 하기 위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만난 장관들(김영주 장관과 김동연 장관).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는 “우리나라가 양원제다. 사실상 기재위(예산 관련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획재정위원회)와 법사위(상임위에서 통과된 모든 법률이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본회의로 갈 수 있음)가 그렇다”며 “내가 4월20일까지는 여러 방면에서 최선을 다해 보겠다. (단체분들을 보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질기게 싸웠는데 안 이기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길 때까지 만날 때까지 싸울 거니까. 사실 한병도 정무수석도 장애인 부모다. 그래서 문자도 오고 하는데 그래서 (청와대 비서들도) 알고는 있는데. 그냥 문 대통령이 회의할 때 한 마디만 해주면 바로 된다고 본다. 국가책임제 실시해라 살짝만 흘려주면 좋겠다”라고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 대표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 (사진=박효영 기자)
이 대표와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 (사진=박효영 기자)

윤 회장은 “최고 잘 한 정책이 치매 국가책임제다. 치매 국가책임제의 대상은 69만명이다. 우리(발달장애)는 20만명이다. 이런 말하면 죄송한데 치매는 연세드셔서 생기는 일이지만 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을 때부터 가족이 다 책임져야 하는 유년기에 생기는 치매와 같아서 국가가 더 신경써야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표가 많은 노인은 하고 표가 적은 장애인은 안 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비평했다. 

D부모는 “청와대에서 1박2일만 체험(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일)해보면 바로 (국가책임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4월20일에 기념으로 우리 아이들 15명 정도 청와대에서 맡아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바로 해결될 거다. 아니면 어버이날 우리 아이들의 어버이가 한 번 되어보라고”라며 부모들의 고통이 심각한데 정부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을 묘사했다.

박 대표는 “미래권력(정의당)인 우리 이 대표도 당사에서 하루만 맡아보면 어떨까”라고 자연스럽게 농담을 건넸다.

부모들은 문 대통령의 의지가 곧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현실화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정의로운 국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1921~2002)는 역작 <정의론>을 통해 두 가지 정의로운 국가의 원칙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모든 시민이 누리는 기본권적 자유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불평등이 용인되려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차등의 법칙이다.

롤즈는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자유주의 학자이지만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이 시행되어야만 정의로운 국가라고 주장했다. 이런 롤즈의 사상은 현대 복지국가의 이념적 토대가 되고 있다.

시장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야만이 될 위험이 있으니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소수자와 약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양극화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권적 기본권(복지국가에서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충분한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고 이에 기반한 국민의 권리 요구)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현대 선진국의 복지 시스템이다. 

정의당 소속 장애인 두 사람이 농성장을 자주 방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 소속 장애인 두 사람이 농성장을 자주 방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저상버스, 장애인 화장실과 주차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국가의 정책적 조치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롤즈의 생각이다. 그런 국가라면 일반 시민에게도 충분히 살기 좋은 국가임에 틀림없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하다.

지난 2014년 유명 연예인의 부친이 치매에 걸린 노부모를 극진히 모시다가 끝내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누구도 부친을 욕할 수 없었다.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서적 유대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누군가를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은 24시간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상적으로 살다가 노인이 된 이후에 고통받는 치매와 달리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고통스럽다. 특히 개인시간이 전혀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2015년 대구에서 지적장애 언니를 부양하던 동생의 자살, 광주에서 5살 된 발달장애 아들과 부모의 동반 자살, 서울 관악구에서 17세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한 아버지 등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삭발한 부모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삭발한 부모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어쩌면 국가의 손길이 당장 시급한 곳이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다. 부모들은 사회권적 기본권까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다. 

발달장애는 해당하는 나이에 이루어져야 할 발달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로 검사를 통해 해당 연령의 기대치보다 25%가 뒤쳐져 있는 경우를 뜻한다(서울대병원 의학정보).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부모연대는 먼저 돌보는 부모들을 위해 ‘돌봄서비스·주간활동서비스’가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4시간 짊어진 양육의 부담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직업훈련서비스와 여가문화서비스 등 여러 분야에서의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부모연대는 이를 ‘낮 시간활동·노동권·주거권·소득·중증중복장애 지원·자기권리 옹호활동·가족지원·법적 능력’ 등 8대 정책 과제로 정리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틀이 그렇게 구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모연대가 요구하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8대 정책과제. (사진=박효영 기자)
부모연대가 요구하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8대 정책과제. (사진=박효영 기자)

부모연대는 이런 요구를 담아 지난 3월27일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글을 올렸고 2만8508명의 시민이 동의했다. 여기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요구는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도 국민으로 인정해달라는 기본권적인 요구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과 우리와 체결했던 약속을지켜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한편, 평화와정의(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의 공동교섭단체) 소속 의원이 보건복지위에 3명이나 있는데 올해 발달장애 예산이 삭감된 것에 대해 얼마나 따져 물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윤소하 의원이 최선두에서 하고 계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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