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기연 기자]한시대를 풍미하며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배우 최은희가 파란만장한 삶을 뒤로 하고 영면'에 들었다. 그녀는 92년 인생의 장편영화 같은 삶이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생전에 이미 한국영화사 전설이었던 그는 일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인 남편 신상옥 감독을 다시 만나 안식을 찾게 됐다.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원로 배우 최은희 씨가 영면에 들었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캡쳐]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원로 배우 최은희 씨가 영면에 들었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캡쳐]

19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최은희 발인식은 고인의 생전 뜻대로 소박하고 간소했다. 유족과 원로 영화인 등 100여 명이 장례미사를 봉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미사를 집전한 조욱현 토마스 신부는 "일생이라는 하나의 작품이 이제 죽음을 통해 출품된 것과 다름 없다"며 "하느님이 선생님의 아름다운 작품을 크게 칭찬하고 큰 상으로 보답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신부가 성라자로마을을 후원하며 한센인들을 도운 고인의 선행과 겸손함을 언급하자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최은희는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있던 1970년대 초반 성라자로마을과 연이 닿았다. 영화계 인사들에게 성라자로마을을 알리며 후원을 넓혔다. 학생들과 함께 시설을 찾아가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다.

"너무나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오랫동안 라자로마을을 후원했지만 내세우지 않고 당연한 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조촐하고 가난한 장례식도 그 분의 겸손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꼭 화장하고 저를 맞으셨습니다. 항상 고우시기 때문에 화장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장호 감독과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원로배우 신영균·신성일·문희한지일 등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신성일은 유족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위로했다. 각막 기증으로 세상에 마지막 빛을 남긴 최은희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에 있는 고 신상옥 감독 곁에 묻혔다.

이날 치러진 발인식은 고인의 뜻대로 소박하고 간소했으며 한 시대를 함께 풍미한 원로 영화인들이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8년 전 천주교 장기기증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사후 안구 기증 서약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변사람들도 놀랐다. 각막 기증으로 세상에 마지막 빛을 남긴 최은희 씨는 남편 신상옥 감독 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그녀는 1978년 북한의 김정일 지시로 납북 되어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과 같이 영화 17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1986년 탈북해 미국으로 망명하고 1999년 대한민구으로 귀국하게된다.

드라마 같은 영화같은 살다간 그녀는 17세때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해 6.25 전쟁이 터지면서 납북됐다가 탈출해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격지도했다. 최은희 그녀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이던 1943년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극단 아랑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대표작으로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은막에 데뷰하게된다.

그녀는 또 두번째 남편 신상옥 감독(1926~2006)를 만나 1963년 다큐드라마 영화 코리아를 같이하면서 열애를 나누게되었고, 간통혐의 1호라는 세간의 받으면서  1954년 3월 결혼을 하게된다. 두 사람은 이후 23년동안 13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여러 작품중에 로맨스빠빠(1960)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 등 수많은 작품를 남겼다. 이제 스타의 별은 졌어도 영화에서 그녀를 볼 수 있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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