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추가 시험 발사 중단, 믿을 수 없는 남북 관계의 진전, 남북미 환경의 조성, 더 이상 핵 실험장이 필요없다는 것이지 비핵화의 시그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신중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이야기가 흘러나오더니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소식이 들려왔다. 남북 정산 간 핫라인도 설치됐다.

북한이 20일 오전 풍계리 핵 실험장(2006년부터 2018년까지 여섯 번의 핵실험 진행)을 폐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는 ‘전략적 노선’을 천명했다. 이 사실은 21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에 의해 알려졌다.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의 선군정치(군사적 노선을 우선)적 전통을 전면 수정해 경제 발전에 집중한다는 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20일 설치된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 이날 15시41분경 청와대와 국무위원회 간에 시험 통화가 있었다.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먼저 평양으로 전화를 걸었고 국무위원회 담당자가 받았다. (사진=청와대)
20일 설치된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 이날 15시41분경 청와대와 국무위원회 간에 시험 통화가 있었다.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먼저 평양으로 전화를 걸었고 국무위원회 담당자가 받았다. (사진=청와대)

김정은 위원장(북한 노동당)은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이와 같은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에 “4월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실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풍계리)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고 2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정은 위원장이 2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고 2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위원장은 2013년 3월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선언했고 이게 핵 미사일 개발의 배경이 됐다. 폐쇄적인 국가로서 핵은 돈줄의 원천이었고 체제보장의 요건이었다. 하지만 국제 사회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핵이 실질적 위협이 될만큼 완성적이어야 했다.

유시민 작가는 3월15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옛날에는 미국 쪽에서 볼 때 별로 살 게 없었던 것 같다는 물음에) 그걸 팔려고 북한이 핵 개발을 미친 듯이 한 것이다. 왜냐면 그때는 핵무기나 ICBM이 짓고있는 집이었다. 가림막을 쳐놓고 안에서 짓고 있으면서 <우리 이거 할 거야> 얘기하니까. 미국은 까불지마 했던 거다. 그러나 여섯 번이나 핵실험을 하고 특히 작년에 ICBM을 미친 듯이 쏜 이유가 <우리 집 다 지었어>라고 말하기 위한 것이고 팔 물건을 다 만든 거다. 겉으로는 우리가 핵 보유국이라고 큰 소리를 치지만 종국적으로 자기들이 핵 무기가 자위 수단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이제는 그 진정성을 입증해 볼 순간이 왔다. 뭘 팔지 불확실하면 여기까지 거래가 안 됐을 것”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의 북핵 협상은 (미국의) 핵사찰 하게 해주면 에너지 줄게 증유 지원해줄게 이런 거는 부동산 거래로 치면 월세놓는 것과 같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지금은 매매 계약으로 봐야 한다”며 부분적 비핵화와 부분적 경제 지원의 상호 거래를 했던 과거와는 현재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유시민 작가는 지금의 북핵 해결 방식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캡처사진=jtbc)
유시민 작가는 지금의 북핵 해결 방식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캡처사진=jtbc)

즉 북한 입장에서 미국이 관심가질만한 핵 완성 단계에 다다랐고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약속한 상황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 내정자가 방북해서 의제로 논의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거래할 환경이 조성됐고 북한이 하나씩 거래의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의중은 남북·북미 정상회담까지 보장받았다면 거래 이행의 증표를 하나씩 공개해도 된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폼페이오 내정자가 3월31~4월1일 방북해서 김 위원장을 극비리에 만난 것도 CIA(미국 중앙정보국)와 북한 정찰총국 간의 물밑 조율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이 과정에서 거래의 신뢰를 확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김 위원장과 폼페이오 내정자가 비핵화와 종전 선언을 의제로 논의했고 이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도 깜짝 종전 발언을 했다. 

연일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하기 위해 남북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고 있고 상황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오찬 간담회.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 관련 여러 전망을 설명했다. (사진=청와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오찬 간담회.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 관련 여러 전망을 설명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사장단 오찬 간담회 발언을 통해 “65년동안 끌어온 정전 체제를 끝내고 종전 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의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며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유 작가는 “과거엔 북한도 전체를 매도하기가 어려웠다. 전체를 매도하려면 그에 맞는 대가를 (미국이) 줘야 하는데. 정상국가로 인정해주고 수교도 하고 서로 대사관도 설치하고 종전 선언을 하고 서로 침략을 하지 않겠다고 협정을 맺어주면 안심을 하겠는데 그 의사가 없어 보이니까. 북한도 전체를 매도하지 않고 뒤에 꼬불쳐놓고 조금씩 조금씩 팔고 그래서 내가 월세 계약이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제는 완전한 비핵화(전체 매도)와 미국의 체제보장 및 경제 지원의 거래 조건이 이뤄졌다고 충분히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병진노선의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됐다. 이제는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은 핵을 충분히 완성했고 이것을 거래해서 체제보장과 경제 지원을 보장받을 상황이 됐다는 인식을 의미한다. 

아베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같은 무늬 넥타이를 착용한 채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베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같은 무늬 넥타이를 착용한 채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동안 비핵화의 해법을 두고 남북미 간의 이견 차이가 존재했고 이는 훈풍이 부는 한반도 정국에서도 골칫거리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강경파가 선호하는 일괄 타결의 ‘리비아식 해법’과 ‘고르디우스의 매듭’, 북한이 선호하고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때마다 받겠다는 ‘살라미 전술’과 ‘우크라이나 방식’ 등 비핵화 해법을 두고 수싸움이 지속됐었다.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 간의 커다란 방향 합의 속에서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선호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분위기는 일괄 타결과 단계론의 중간으로 비핵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고 어찌됐든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가 핵동결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소식이 알려지자 바로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환영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북한과 전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다. 우리의 정상회담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북한이 핵 완성에 도달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핵 실험장을 폐기한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미국 국무부)는 21일 VOA(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소 조심스럽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고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조심해야 한다”며 “김정은의 발언을 보면 핵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이유로 핵무기 완성을 들었다. 이는 기술적 측면에서 더 이상의 실험이 필요없다는 주장이지 정치적 결정으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폐기하겠다는 풍계리 핵 실험장은 여섯 차례의 핵 실험을 통해 이미 노후화된 곳이고 실험장 일부 갱도가 이미 붕괴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며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이번 발표로 마치 북한의 핵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2017년 11월 화성-15형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우리 내부의 적들을 조심해야 한다”며 “김정은의 평화 제스처에 충격받은 보수 인사와 언론들은 어떻게 꼬투리를 잡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자기들의 주장과 전망이 틀렸더라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받아들이고 한반도 평화에 협조하기 바란다. 이제 더 이상 야당들과 보수언론들은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가로 막고 발목 잡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진정한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핵실험 중단이 아니라 핵폐기 발표였어야 한다”며 “핵이나 미사일 즉 무력의 완성을 달성했다는 측면에서 더 이상 실험도 개발도 필요없다는 북한 지도부의 인식은 여전히 한반도에서의 완벽한 비핵화가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사실상의 핵무기 완성을 선언해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 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경계한다”고 밝혔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첫째 북은 이미 6차례 핵개발 시험으로 사실상 핵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핵시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이전까지는 진전된 상황이 아니다. 둘째 북은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수많은 살라미 전술로 핵 폐기쇼를 하고도 후일에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사례가 무수히 많다. 김정은의 이번 핵 폐기 선언도 살라미 전술에 의한 위장 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신 대변인은 “이번 발표가 핵 폐기로 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결정을 환영하고 이번 발표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향한 진전이길 바란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상태에서 나온 북한의 발표는 기대감을 높이고 남북간 화해 분위기를 확산하는 선 조치적 의미가 있다는 점을 평가한다”고 밝혔고 정 대변인도 “셋째 북한이 핵 실험 중단이 아니라 핵을 폐기하고 경제 발전에 총력할 진정성이 있다면 자유한국당도 기꺼이 북을 도울 용의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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