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의 문화살롱] 언어의 심지(心志)
[이재인의 문화살롱] 언어의 심지(心志)
  • 이재인
  • 승인 2018.04.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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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충남문학관장 / 소설가
이재인 충남문학관장 / 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시골 농협에 통장정리차 들렀다. 창구에 앉아 있던 아줌마 직원이 나를 가리켜 말했다.

“아저씨, 이리 오셔요”
“아니, 아저씨라뇨?”
별 뜻 없이 한말이겠지만 아저씨라는 말이 그리 탐탁지 않아 나는 의외의 불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무엇이라 하나요?”
“글쎄 칠십이 넘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어르신’, 혹은 ‘선생님’, 아니면 ‘고객’이라 하면 안 되겠습니까?”

필자는 큰 금액의 돈을 농협에 예탁하지는 않았으나 고객으로서의 당당한 농협 회원이다. 그런데 아저씨라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을 듣고 보니 뭔가 홀대를 받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시에서의 은행들에서 사분사분한 서비스를 받아온 터라 시골 농협직원의 대인자세가 어딘가 교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사람이란 친절해서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누구든지 겸손하고 온유하면 신뢰를 받는다.

미국의 한 40대 사내가 소탈한 청바지 차림으로 은행에 찾아와 은행주무자를 찾았다. 마침 주무자는 외출 중이었다. 반드시 만나 상의할 일이 있어 고객센터에서 한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렸다.

‘설마 곧 오겠지’ 라는 생각에 또 30분을 기다렸지만 만나야할 주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이 사내는 은행 문을 나서며 주차권에 확인 스탬프를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스탬프에 적힌 확인서가 없으면 장시간의 주차료를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주차확인 스탬프를…….”
“당신은 우리 은행에 일을 본 일이 없잖아요? (주차확인 스탬프를) 찍어드릴 수 없습니다.”
여자 직원은 칼같이 단호하게 청바지 사내의 요청을 거절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청바지 사내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총알처럼 은행 문을 나섰다. 그 청바지 사내는 이튿날 아침에 양복차림으로 나타났다.
“내가 예금한 이 돈을 몽땅 인출해 주시오”
“이렇게 많은 액수를요?”
“몽땅 다 주세요.”

이 사내는 수백만 달러를 예금한 문자 그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고객이었다.
은행직원은 놀랐다. 그는 예탁한 달러를 몽땅 찾아다가 다른 은행에 넣었다.
이 청바지 사장이 그 유명한 존 에이커 IBM 회장이었다.

지금 시대는 모든 게 기계화 전자화되어 세상을 재고, 그것을 계량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상대를 깔보고 고객을 홀대하면 그것이 크나큰 바위가 되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작은 친절, 세심한 배려가 태산을 만든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쓰는 속담이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이 말은 되새겨 볼만하다. 아무리 시골에 살고 입성이 초라하더라도 마주선 사람이 고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슬픈 일이다. 일본을 예로 들어 뭣하지만 작은 라이터 하나를 팔아도 허리를 숙이면서 감사소리를 연발한다.

친절한 언어, 겸손한 미덕은 잃은 황소도 다시 찾을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컴컴한 조도 아래 농협 고객센터의 높은 데스크와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를 아저씨라고 낮추어 부르는 그 아줌마 직원한테 누가 교육을 시켜주었으면 한다.

‘아줌마? 은행은 금고라는 것은 쇠뭉치로 되어 있지만 사람의 입질에 오르면 땡볕에 아이스크림인 게여…….’라고 외치고 싶었다. 성경에도 깨알 같은 글씨로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하라”고 쓰여 있다.

어허, 오늘 쓸데없는 이야길 했네……. 하긴 나폴레옹 황제가 그의 부관과 함께 빈손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가 주인한테 망신을 당했는데 심부름꾼 사환의 말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돈을 내고 가셔야합니다…….”
“깜박했네요.…….”
변장한 나폴레옹을 모르고 주인이 냉대하면서 잠을 잔 숙박비 요구를 강하게 했다.
“안됩니다. 저 사람을 인질로 삼고 돈을 가져 오시오…….”

난감하게 서 있는 나폴레옹 곁에 엉거주춤 서 있던 사환이 말했다.
“옷은 초라하지만 사람 생김새가 여관비 떼어먹을 사람이 아니지 외상으로 보내주시지요. 이놈이 책임을 질 테니…….”

이를 지켜본 나폴레옹이 부관에게 명했다.
“이 게스트하우스를 이 사환에게 주게나…….”
이런 극적 반전에 의해서 프로방스에 가면 <나폴레옹 땡스모텔>이 지금까지 성업 중이라 한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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