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지휘했던 아스널을 떠나게 된 아르센 벵거 감독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22년간 지휘했던 아스널을 떠나게 된 아르센 벵거 감독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아스널 FC를 지난 22년 간 이끌어온 아르센 벵거(69) 감독이 구너(아스널 팬 애칭)들과의 이별을 알렸다.

아스널 FC는 지난 20일 ‘Merci Arsène’(고마워, 벵거)라는 제목의 발표문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리며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번시즌 후 아스널을 떠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22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며 팀을 헌신적으로 이끌어온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먼저 표했다.

벵거 감독은 발표문에서 “구단과 함께 신중하게 고민하고 상의한 결과, 이번 시즌을 마치는 시점이 물러나기 적절한 때라고 생각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작년 시즌 후 체결한 재계약 기간은 2년이었지만 이번 발표로 내년에는 벵거의 아스널을 볼 수 없게 됐다.

벵거 감독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을 이끈 앙리, 베르캄프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벵거 감독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을 이끈 앙리, 베르캄프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외국인 감독, 그리고 무패우승

아스널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 받는 아르센 벵거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출신으로1984년에 AS 낭시 로렌의 감독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AS모나코와 나고야 그램퍼스를 거쳐 1996년 10월 아스널에 부임했다. 

부임 당시, 리그 특유의 강한 개성 탓에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언론의 전망을 받기도 했고, 더 나아가 ‘도대체 저게 누구냐’는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확고한 축구 철학은 가진 그는 부임 첫 해에 팀을 3위까지 끌어올렸고, 이듬해 FA컵과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벵거는 올해까지 약 22년 간 프리미어 우승 3번, FA컵 우승 7번 등 모두 17번의 우승트로피를 올렸다.

특히 2003~04시즌 앙리, 베르캄프, 륭베리, 비에이라 등과 함께 이룩해낸 무패 우승은 벵거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상 유일한 기록이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패우승 팀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 14년째 리그 우승에 실패하고 꾸준히 4위권에 머무르며 ‘4스날’ 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또한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 리그의 전신인 UEFA 컵에 한차례씩 준우승에 머물렀을 뿐 유럽 대회 우승 경험이 없어 ‘리그 안에서만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아르센 벵거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아르센 벵거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경제적인’ 축구를 지향하는 경제학 석사 출신의 감독 

아르센 벵거 감독은 프랑스 1부리그 팀 RC 스트라스부르에서 선수시절을 보냈지만 화려하진 않았고, 학업과 선수 생활을 병행한 끝에 명문인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제학 전공과 관련, 감독 본인이 선수에 대해 경영학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린 선수를 영입하거나 유망주를 육성해 키워내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는 저렴한 이적료로 20대 초반에 영입해 월드 클래스로 성장한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 세스크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 등을 들 수 있다. 이 유망주 정책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닌데,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아스널에 입단해 화제를 모았으나 벤치만 지키다 방출당한 박주영(현 FC 서울)은 벵거 유망주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웨스트 햄 전에서 골을 성공 시킨 라카제트 (좌 라카제트, 우 오바메양)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웨스트 햄 전에서 골을 성공 시킨 라카제트 (좌 라카제트, 우 오바메양)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벵거의 마지막 선물은 유로파 리그 우승컵? 

25일 현재, 아스널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6위까지 밀려난 상태로 리그 종료까지 단 4경기만을 남겨둔 가운데 승점 57점을 기록, 5위 첼시와 6점차, 4위 토트넘과는 11점이 차이난다. 사실상 올해도 4위권 수성 실패가 유력해졌다.

2003~04시즌 이후 14년 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 못한데다 꾸준히 지켜오던 4위권에서도 밀려나 급기야 지난 시즌 5위를 기록한 벵거 감독의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고, 이에 벵거는 “내가 클럽의 앞길을 막는 것이라면 그건 심각한 일”이라며 성적부진으로 아스널 팬들이 분열되고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결국 장고 끝에 아스널과의 결별을 택한 후 처음 맞은 웨스트햄 전에서 라카제트의 두 골 등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기록한 벵거는 남은 리그 4경기와 유로파 리그를 최선을 다해 마무리 짓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유로파 리그 16강에서 AC밀란을 꺾은 아스널 (좌 윌셔, 가운데 보나벤투라, 우 비글리아)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유로파 리그 16강에서 AC밀란을 꺾은 아스널 (좌 윌셔, 가운데 보나벤투라, 우 비글리아)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벵거의 아스널은 우승 시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 유로파리그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16강에서 이탈리아 명문 팀 AC 밀란을 꺾는 등 순조롭게 준결승에 안착한 아스널이지만 대진 상대가 스페인의 강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정해진 만큼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각오다.  

한편, 아스널의 준결승 상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현재 스페인 라 리가에서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지만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다. 팀의 간판스타 앙투안 그리즈만의 이적설로 흉흉한데다 최근 원정 4경기 중 1무 3패를 기록하며 부진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스널은 홈에서 6연승을 이어가고 있는데다 외질, 라카제트 등 주축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아 해볼만 하다는 입장이다.

아르센 벵거 감독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아르센 벵거 감독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갈 아르센 벵거와 아스널

벵거 감독은 웨스트햄 전을 마치고 사임 발표 후 가진 첫 인터뷰에서 “뭐라고 감정을 얘기하기 어렵다. 감독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어떤 지 잘 모른다”며 감독으로서의 행보를 이어갈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프랑스 축구 기자는 영국 BBC에 출연해 “아르센 벵거가 잉글랜드 대표팀에 관심 있어 한다”고 보도했고, 파리 생제르맹이 벵거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등 루머만 무성한 상황이다.

한편 아스널의 차기 감독 후보로는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트레블을 달성한 루이스 엔리케가 유력한 후보로 오른 가운데, 유벤투스의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 아스널 출신으로 맨체스터 시티 코치로 있는 미켈 아르테타 등이 물망에 올랐으며 카를로 안첼로티 역시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한 바 있다.

아르센 벵거 감독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아르센 벵거 감독 (사진=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Adieu Arsène (벵거 감독, 안녕히)

22년간 팀을 이끌어온 노장의 퇴임 소식에 축구계도 함께 아쉬움을 표했다. 그동안 그라운드에서 앙숙으로 지내온 조제 모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팬들은 우리가 서로 존경을 표하는 방식을 잘 모른다. 가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존경해왔다"며 "벵거 감독이 축구계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제자 티에리 앙리 역시 퇴임 소식에 슬퍼했다. 앙리는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만감이 교차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좋은 퇴임을 위해 팬들이 응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르센 벵거는 퇴임 발표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아스널 팬들을 향한 감사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팀이 더욱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팬들이 팀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기를 바랍니다. 아스널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팀의 가치를 지켜주세요. 영원한 사랑과 지지를 담아서(My love and support forever)” -아르센 벵거-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