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를 추진하기 위한 두 정상의 의지, 경제협력과 제재 완화, DMZ와 NLL 관련 추진이 중요, 종전과 비핵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전세계가 감동한 3차 남북 정상회담의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결국 핵심은 ‘판문점 선언’이다. 

무엇보다 합의했던 것이 언제든지 좌초될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두 정상의 의지가 드러났는데 그게 의미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공식 연설문에 그 의지를 녹여냈다.

두 정상이 판문전 선언문에 서명한 뒤 공동 소감문을 발표했다.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27일 저녁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발표한 소감문에서 “김 위원장과 나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는 것이 공동 목표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우리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만찬회 답사에서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암흑 같았고 악몽과도 같았던 북남 사이의 얼어붙은 긴긴 겨울과 영영 이별한다는 것을 선고했다”며 “불신과 대결의 북남 관계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고 말했다.

이런 합의들이 공염불이 되어 왔던 게 지난 남북 관계의 역사였는데 김 위원장은 소감문을 통해 “역대 북남 합의서처럼 시작만 뗀 불미스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두 사람이 무릎을 마주하고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반드시 좋은 결실이 맺어지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내에서가 아닌 국제사회의 언론에 처음으로 연설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한 모습과 함께 숨가빠했다. (사진=청와대)

이미 설치된 정상 간 핫라인도 있지만 관련해서 자주 논의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나는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해 수시로 논의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김 위원장도 “오늘 합의한 대로 수시로 때와 장소에 가림이 없이 그리고 격식과 틀이 없이 문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함께 갈 길을 모색하고 의논해 나갈 것이고 필요할 때에는 아무 때든 우리 두 사람이 전화로 의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재 완화’와 경제협력

선언문은 3조 13개항으로 구성됐다.

먼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일반론을 천명한 것과 6개항이 있는데 그것은 헌법 전문과 같이 선언적인 의미와 경제·사회·문화 협력 등 비정치적인 교류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심은 △민족 자주의 원칙 △각 분야 고위급 회담 개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성에 설치 △민족공동행사 추진 △2018년 아시안게임 공동 출전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 개최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 추진 △동해선과 경의선 등 철도와 도로 연결이 있다.

문 대통령은 거듭 김 위원장의 용단에 경의를 표했다. (사진=청와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동 연락사무소인데 이제 남북 실무자가 일상적으로 함께 근무하게 된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당국자가 멀리 이동해와서 논의를 했다면 이제는 그런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 과거 개성공단에 조성된 남북교류협력 사무소가 경제에 국한됐었다면 이번에는 분야의 제한이 없다. 당장 6.15 선언 기념일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때 열릴 민족공동행사를 기획하는 것과 광복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추진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공동 출전하는 문제도, 동계 올림픽에서의 너무 급한 단일팀 결성에서 오는 부작용을 교훈삼아 잘 준비할 필요가 있다.

10.4 선언이 발표된 2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된 경제협력 사업은 ‘문산 봉동간 철도화물수송 착수, 통행·통신·통관 인프라 완비, 개성과 신의주 철도 건설, 개성과 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안변군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농업·보건의료·환경보호 등에서 협력,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설치’ 등이다. 

맞물려서 한반도 철도를 연결해 러시아와 유럽을 횡단하는 사업은 입이 아프도록 나온 시나리오인데 이번에 착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협은 결국 UN 대북제재와 미국의 경제제재가 풀리는 것이 필수적이라 비핵화 진행 상황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데, 제재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 사업을 찾고 적극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 문제는 DMZ와 NLL이 핵심

두 번째는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위한 3개항으로 △육해공의 군사적 적대행위 전면 중지 △5월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 중지 △DMZ(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조성 △NLL(서해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조성 △국방부장관 및 군사당국자 회담을 자주 열고 5월 내에 바로 개최 등이 있다. 

990㎢ 면적과 248km 길이의 DMZ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2km의 공간을 남겨둔 곳이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당시 설정된 남북 완충지대의 의미가 있다. 이곳을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이 중무장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감시초소 60여곳, 북한은 160여곳을 DMZ 주변에 설치해놨고 북한은 장사정포 등 중무장한 군사력을 배치해놓은 상태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DMZ와 그 안에 GP(경계초소)가 있다. GP 지역에 북한은 더 남쪽으로 내려와 대규모 병력을 배치해놨다. (그래픽=SBS)

우리는 DMZ 라인에 줄줄이 설치된 철책과 감시초소만 철수하면 되지만 북한은 대규모 병력과 군부대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바로 5월에 있을 군사당국 회담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목된다.  

1·2차 연평해전 등 그동안 NLL을 놓고 남북 간의 충돌이 잦았다. 한반도 지형상 북한의 황해남도와 우리의 백령도가 인접해 있고 바닷길에 명확한 국경선을 긋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의 NLL을 인정하지 않고 쉽게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판문점 선언에 NLL을 평화수역으로 조성한다는 것이 명시됐기 때문에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일단 남북의 선박이 자유롭게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고의적인 월경 선박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10.4 선언의 5항을 보면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을 명시했는데 이때 논의했던 것이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보다리 끝 벤치에 앉아 30분간 아무도 없이 단둘이 대화한 두 정상. (사진=청와대)

DMZ와 NLL 관련 군사적 실무 협의가 잘 풀려야 판문점 선언의 굵직한 대의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이슈는 매우 중요하다.

종전과 비핵화

세 번째는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3개항인데 △불가침 합의 재확인 △단계적 군축 △2018년 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이를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적극 추진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 확인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추구 △정기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 논의 △문 대통령이 올해 가을 평양을 방문해 4차 정상회담 개최 등이다.

10.4 선언에서 최초로 종전이 적시됐는데 그때보다는 많이 발전했다. 

이날 21시가 넘어 열린 환송행사에서 두 정상과 부부가 실내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청와대) 

10.4 선언 4항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는데 판문점 선언은 종전과 평화체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시한을 못박은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비핵화 관련 국제사회의 인정과 외교적 정상화 등 현실적 조건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논의 수준을 10.4 때와는 달리 장소와 급을 명시하지 않아 더욱 활발하게 협의할 수 있게 됐다. 외무장관들이 한반도 안팎에서 만나 평화체제의 조건을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비핵화 부분을 살펴보면 1992년 2월19일에 발표된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교했을 때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회담장에 들어와 큰 벽그림 앞에서 손을 잡고 높게 든 두 정상. (사진=청와대)

기본합의서에는 6개 조문으로 이뤄진 비핵화 관련 합의가 있다. 

①핵무기의 시험·제조·갱신·접수·보유·저장·배치·준비하고 사용하지 않음 ②핵 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 ③핵 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음 ④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해 남북핵통제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 ⑤선언의 이행을 위해 1개월 내에 남북핵통제위원회를 구성 ⑥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문서를 교환한 날부터 바로 효력 발생

이에 비하면 분명 판문점 선언은 구체적이지 않다. 

핵 무력을 완성한 2018년 북한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미국과 국제사회의 경제적 보상을 보증받기 위해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적시하는데까지 김 위원장이 합의해주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큰 틀에서 비핵화에 합의하고 구체적으로 그 완성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평론들이 많았다. 그게 현실적이기도 하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6일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참모진의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하고 이것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의미한다는 점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회담은 성공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26일 서울에서 진행된 CNN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문서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확고한 성과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판문각에서 김 위원장과 참모들 및 경호원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청와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29·30대)은 26일 jtbc <뉴스룸>에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가 해야 할 대목은 남겨놔야 한다”며 “솔직히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역을 트럼프로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한테는 좋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트럼프한테 남겨줄 부분이 분명히 있어야 되고 표현은 우리가 강하게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일정이라든지 시한 이런 것을 못 박는 것은 그쪽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31대)도 26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는 4월27일 가려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의해 가려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남북 정상회담 비핵화 논의가 이것 밖에 합의가 안 됐어 이것도(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 곤란하다”고 말했다.

즉 화룡점정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기더라도 남북 정상이 일정 부분 비핵화 밑그림을 그려놔야 한다는 설명이다.

리설주 여사와 두 정상이 만찬 행사에서 건배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신용현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도 29일 논평을 내고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미 채택된 남북선언들을 철저히 이행하기로 합의한 만큼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북핵 폐기 일정이 도출되어야 한다”며 “핵무기·핵시설·핵물질 처리방법·시한 등 국제기구 요구에 부합하는 사찰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바른미래당은 돌이킬 수 없는 북핵 폐기를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전화통화를 했고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그 내용을 발표했는데 “(두 정상이) 북한의 평화롭고 번영하는 미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되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에 달려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한편, 29일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를 진행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공개하겠다는 것과 표준시를 서울에 맞추겠다고 밝혔다는 점을 공개했다. 마찬가지로 비핵화 관련 추가 합의사항 또는 김 위원장의 핵심 발언이 뒤늦게 공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