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의 추가 요구, 북한의 미국 견제,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샅바 싸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 발표가 애간장을 녹이면서 계속 지연되고 있다. 동시에 북미 간의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이 야당으로서 트럼프 정부의 성과를 견제하기 위해 북미 협상 국면을 회의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서 트럼프 정부까지 대대적으로 대북 압박에 나서는 모양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은 2일 취임식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넘어서는 PVID(영구적이며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거론했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에 핵무기 뿐만이 아니라 생화학무기 폐기를 요구했다.

북한도 관제 매체를 통해 반발 입장을 밝히고 있고 북에 억류된 미국인 납치자 송환 문제를 두고 기싸움에 맞서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 위원장이 3월31~4월1일 평양에서 만났다. (사진=백악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 등 한미일 국가안보라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br>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 등 한미일 국가안보라인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볼턴 보좌관이 쇼타로 국장과의 회동에서 언급한 주 내용은 이런 거다.

북한이 갖고 있는 생화학무기·대량살상무기(WMD)·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등에 대해서 CVID를 하기 위해서 미일 공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북한은 6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비핵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미국과 북한은 정보기관인 CIA(중앙정보국)와 통일전선부 간의 물밑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샅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략적으로 볼 때 볼턴 보좌관의 대북 추가 조치 요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비핵화 협상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카드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5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비핵화한 북한”이 목표라고 발언했다. 기존의 한반도(Korean peninsula)에서 북한을 비핵화의 주체로 명시함으로써 좀 더 압박 강도를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

올림픽 때 진행된 미국의 ‘테스트’ 

잊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펜스 미국 부통령이 김여정 제1부부장(북한 노동당)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과 코 앞에 있으면서도 눈길 한 번 안 줬던 것. 폐회식에 맞춰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방한했을 때 펜스 부통령은 또 미국 현지에서 “김여정은 2500만명의 주민들을 잔인하게 탄압하고 굶기며 감금하는 악의 가족 패거리”라고 맹비난했던 것.

지난 2월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 자리에 있었던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펜스 부통령과 김 부부장은 개회식 당시 만남이 예정됐었다. 하지만 만남 성사 직전 김 부부장은 펜스 부통령의 강경 발언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고했고 끝내 취소됐다.

이렇게 도발적으로 해도 참고 견디면 만나주겠다는 것, 즉 미국 정부의 북한 기선제압 차원이고 일종의 ‘테스트’가 진행됐는데 결국 그 벽을 넘어서지 못 한 것이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국면에서도 이런 미국의 테스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는 7일 페이스북에서 “미국이 한국 전쟁과 냉전시기에 보인 협상 태도를 제대로 분석한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나이브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에게는 중재가 거의 안 통한다. 제스처만 보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 뜻대로 한다. 우리 정부는 이를 참작해야 할 것”이라고 고언했다.

어찌보면 전세계를 주무르는 패권 국가인 미국과 최빈국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미국의 도발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고 이 점에 주목해서 우리 정부가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커다란 외교 이벤트가 연달아 진행되는데 우리 정부의 북미 중재 노력이 예상된다.

당장 9일 일본 도쿄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릴 계획이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6자회담 수석대표)은 오는 9~12일 방미해서 수전 손턴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 등과 만날 예정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도 22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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