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화업체 탠디 하청업체 구두장인들 본사에 처우 개선 요구

(사진=우정호 기자)
텐디 본사 앞에서 건물 안의 동료들을 걱정하던 구두 장인들 (사진=우정호 기자)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최저시급도 매년 오르고 있고 정권이 바뀌며 그 상승폭도 높아졌지만 구두 장인들의 공임은 8년째 그대로다. 게다가 본사 측의 요구로 2000년부터 직접고용 관계에서 하청업체와 계약한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4대 보험 적용 및 퇴직금 대상에도 제외됐다.

국내 유명 제화 브랜드 탠디(대표 정기수)의 구두 장인들이 지난 달 26일부터 관악구 인헌동 탠디 본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달 본사 측에 처우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최후의 수단으로 사무실 점거 농성을 선택했다.

대부분 5,60대의 연로한 몸인 이들은 제대로 된 영양공급도 받지 못하며 건물 복도에서 버티고 있다. 그 사이 55명이던 동료들은 건강악화로 앰뷸런스에 실려 나가는 일까지 발생하며 47명으로 줄었다. 탠디 구두 장인들이 시작한 외침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구두 장인들의 처우는 개선될 수 있을까.

입구가 봉쇄된 탠디 본사 건물 (사진=우정호 기자)
입구가 봉쇄된 탠디 본사 건물 (사진=우정호 기자)

본사 3층에 ‘셀프감금’된 탠디 구두 장인들

8일 오후, 구두 장인들이 사무실 점거 농성 중인 인헌동 탠디 본사 출입문은 소형 트럭과 탑차 등으로 막혀있었다. 100킬로는 족히 넘어 보일 듯한 용역업체 직원이 건물 안쪽에서 철제셔터를 내린 채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마스크와 안경 등으로 얼굴을 가린 다수의 성인 남성들이 출입구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편, 경찰의 질서 유지선을 두고 건물 앞 인도에 자리 잡은 구두장인들은 ‘TANDY는 노동자 공임문제 해결하라’ 등의 푯말을 배경으로 건물 3층을 응시하고 있었다. 8년째 동결된 공임비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구두 장인들이 좁은 복도에서 14일 째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지난 달 3일, 5개 하청업체 구두 장인들 97명이 탠디 본사 앞에서 공임 2000원 인상과 퇴직금, 본사직접고용을 등을 요구했다. 회사 측은 이를 묵살했고, 그에 따라 지난 달 26일부터 55명의 구두 장인들이 본사 사무실 3층을 점거하고 시위를 시작해 9일 현재 47명이 남아있는 상태다.

고압적인 태도의 용역 직원들 (사진=우정호 기자)
고압적인 태도의 용역 직원들 (사진=우정호 기자)

건물 앞에서 자리를 지키며 시위 중인 한 구두 장인은 “탠디 쪽 직원이 아닌 외부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한 번 건물을 빠져나간 사람은 다시 농성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두 장인에 따르면 점거농성 5일째부터 용역 10여명이 본사 정문에서 진을 쳤고 농성자들을 만나러 온 가족들에 ‘거지 떼들’이라며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며칠 전에는 건강 체크를 위해 들어가려는 응급요원을 막아섰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디서 나왔냐"던 용역 직원들은 구두 장인들을 인터뷰하는 기자를 계속 주시하며 카메라로 찍었다 (사진=우정호 기자)
"어디서 나왔냐"던 용역 직원들은 구두 장인들을 인터뷰하는 기자를 계속 주시하며 카메라로 찍었다 (사진=우정호 기자)

최저시급도 오르는데 8년째 공임비는 동결

농성 중인 탠디 구두 장인들은 대부분 20년 이상의 경력자들로 현재 본사에서 하청을 받는 개인사업자의 형태로 일하고 있다. 탠디의 작업 지시에 따라 성수기에는 25족의 구두를 만들며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매장에서 고가제품은 평균 35만원 정도, 저가도 최소 14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다. 고가 제품의 구두는 켤레 당 7500원, 저가는 6500원의 공임비를 받는다. 공임비란 신발 한 켤레를 만들고 제화노동자들이 받는 돈을 뜻한다.  

문제는 8년째 이들이 같은 공임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최저임금도 2011년부터 4320원에서 올해 7530원으로 올랐다. 탠디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인 한 구두 장인은 “세상에 숙련 될수록 더 받는 게 아니라 덜 받는 일이 어딨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탠디 본사 3층에서 농성 중인 구두 장인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제공)
탠디 본사 3층에서 농성 중인 구두 장인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제공)

8년 간 물가는 상승했고 공임비는 그대로니 틀린 말이 아니다. 

또, 애초부터 이 구두 장인들이 개인 사업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2000년 이전까지는 이들도 탠디 소속 노동자였기에 퇴직금도 있었고 매년 임금도 올랐다. 하지만 2000년께 회사가 이들을 재화노동자 ‘소사장제’ 즉, 개인사업장화시키며 하청을 주는 형태로 바꿨다.

탠디 노동자에서 하청업체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전락한 이들은 어떤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하청업체로 계약한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어 4대 보험도 적용이 불가능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4대보험 등 사회보험 부담금도 피할 수 있고 퇴직금도 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에 탠디 하청업체의 한 구두 장인은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이런 얘기를 사장에게 호소하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하다. 사장 가족이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는데 대든다는 건 곧 짤린다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본사 건물 안에서 농성 중인 구두 장인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제공)
본사 건물 안에서 농성 중인 구두 장인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제공)

공임비 ‘2000원 인상’ 요구에 ‘500원 인상’을 제안했던 탠디 본사

탠디 하청업체 구두 장인들은 본사에 공임비 2000원 인상, 특수공임비 제공, 정당한 사유 없는 일감차별 금지, 직접 고용 등을 요구했고, 지난 4일 실질적인 첫 협상 테이블이 열렸다. 

사측은 공임비 500원 인상안을 제시했고, 당초 제안한 2000원과 너무 멀다고 느낀 노조측이 거부해 협상은 종결됐다. 반나절만에 재개된 2차 협상에서 사측은 기존 공임비에서 10%(650원~700원)를 인상하겠다는 안을 제시했고 노조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2차 협상도 종료됐다.

4일만인 지난 8일 오후에 3차 협상이 이뤄졌고 사측은 800원 가량의 인상안을 제시했다. 노조 측은 이를 거부하고 ‘타협안’으로 1600원을 제시했다. 최종적으로 사측은 공임비 1250원 인상을 제안했으나 노조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노조 관계자는 “첫 협상이나 두번 째 협상에 비해서는 나은 분위기에서 협상이 이뤄졌으나 최종적으로 타결되지는 못했다”며 “다음 협상언제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나 계속 농성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본사 측은 협상 타결을 위한 공임비 추가 인상 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정해진 게 없어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 했다.  

본사 앞 집회 중인 구두 장인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제공)
본사 앞 집회 중인 구두 장인들 (사진=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제공)

공임비 인상과 더불어 또 다른 쟁점인 사업자 등록 폐지(소사장제 폐지) 및 본사 직접고용에 대해서는 아직 타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조 관계자는 “본사 측은 사업자 등록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라 협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탠디 본사 관계자는 소사장제 폐지에 관해 “소사장제와 같은 하청 형태는 탠디 뿐 아니라 제화업계, 넓게는 패션업계까지도 아우르는 관행이다”라며 “업계의 구조나 특성상 완전 폐지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탠디는 1979년 설립된 국내 구두 브랜드로 여성 수제화 브랜드 시장에서 ‘소다’와 함께 선두 주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해 매출액은 898억 2,550만원  (2017.12. GAAP 개별), 영업이익은 69억4천여만원이었다. 정기수 대표이사(53%)와 배우자 박숙자씨 (10%), 장남 정인석 씨(37%) 오너 일가가 100% 지분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8년여 동안 120억 원의 배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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