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마사지 숍'으로 인생이모작에 굵직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최영아 씨 (사진=신현지 기자)
'건강 마사지 숍'으로 인생이모작에 굵직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최영아 씨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 신현지 기자] 특별이 고행 수행자가 아니고는 사람은 누구나 고난 없는 평탄한 길을 걷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란 말에 강한 무게가 실리는 것이니...그렇다고 고난에 마냥 승복할 수만은 없는 게 인간이다. 아니 오히려 예고 없이 닥치는 고난이 인간을 강인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베체트와 사이좋게 살고 있어요.”

지난 10일, 여의도에서 마주 앉은 최영아(51세)씨의 첫마디가 의외다. 인생이모작에 희귀병으로 알려진 베체트병과 사이좋게 살고 있다니.

병을 앓는다는 사람 표정 역시도 해맑다. 그러니까 인생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아 방문한 곳은 kbs별관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의 한 건물. 최영아 씨는 현재 이곳에서 ‘건강 마사지 숍’ 운영으로 인생이모작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혈관염의 하나인 ‘베체트병’을 이기면서. 이에 본지는 인생이모작에 굵직한 선을 내긋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장녀, 출발부터 녹록지 않아...

"저는 충남 예산의 가난한 농부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어요. 저도 여느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평판한 삶을 꿈꾸었지요.

하지만 어디 그게 쉽나요. 아니, 제 삶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어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배우지 못한 설음이 그랬고 맨몸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의 어려움이 그랬고 또 무엇보다 제가 아이를 갖지 못한 몸이고 보니..."

 맨몸으로 시작한 서울살이...맵고 쓰더라

 “고향인 예산에서 올라온 건 1992년도였어요. 소작농으로 남의 농사를 죽어라고 지어봐야 살림이 늘기는커녕 비료값에 농약값에 매년 빚만 늘어나고 또 무엇보다 제가 아이가 없으니 친척들 보는 눈도 따갑고. 그래서 무작정 남편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지요.

생각해보면 정말  맵고 쓰린 세월이었어요. 시골에서 빈 몸으로 올라왔으니. 빤하잖아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식당 시간제 알바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서울 올라 온 3년 만에 가산동에 조그만 식당을 하나 차릴 수 있더라고요. 종업원 없이 남편과 밤을 낮으로 알고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일만 했어요.

마치 돈에 원수진 것 마냥. 그렇잖아요. 우리 사회 돈 없으면 사람대접은커녕... 이 설음 저 설음 온갖 서러움 다 받는 게 이 사회인데...”

예고 없이 찾아온 희귀성 혈관염
 
돈이 전부인 자본국가에서 남들처럼 제대로 대접받으며 살아보자는 생각에 죽어라 일만 해던 최 씨 부부,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서울 올라온 10년 만에 그럴듯한 한식집을 차릴 수가 있었다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2003년에 광명시청 앞에 깔끔한 한식집을 낼 수 있었어요. 손님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음식 솜씨는 좀 있는 편이라 또 내 식구 밥상 차려주는 마음으로 손님들을 대하니 단골들이 멀리서도 찾아와주시고...그 재미에 제 몸에 병이 생겨나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에요.

항상 몸이 무겁다고는 느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면서 약 2년을 그렇게 식당을 운영을 하던 어느 날 제가 갑자기 하혈을 하다 쓰러져 119로 고대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어요. 병원에서 한 달을 입원하면서 진단받은 결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베체트병이라고 하더라고요.

스트레스와 피곤으로 급성으로 왔다면서. 아실지 모르지만 베체트는 희귀병으로 염증이 혈관을 타고 다니면서 약한 부분에 치명타를 주는 병인데, 그 병에 걸리면 무릎 관절부위에 물이 차고, 몸이 퉁퉁 붓고, 시력은 물론 잇몸에 염증이 생겨 치아까지 흔들리는 무서운 병이지요.

그때 전 소장 연결부분에 베체트가 와서 피를 쏟게 된 거지요. 완쾌가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난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남편도 절 붙들고 퍽퍽 울더라고요.”

'건강 마사지 숍'에서 고객을 맞는 최영아 씨 (사진=신현지 기자)
'건강 마사지 숍'에서의 최영아 씨 (사진=신현지 기자)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베체트와 함께 시작한 제 2의 인생

남편을 입에 올리다 설핏 눈시울이 붉어진 최 씨는 금세 표정을 바꾸어 싱긋 웃는다. 그녀에게 있어 남편은 삶의 에너지원이라면서. 
 
 “그때 남편을 두고 그대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불쌍한 남자를 두고 내가 어떻게 죽나.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저 남자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보자.

병원의 지시대로 식당을 접고 쉬기로 했어요.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제가 살려고 그랬던 건지. 한 친구가 저희 집에 찾아왔는데 그런 제 모습에 깜짝 놀라더니 동네 마사지 숍을 데리고 가더라고요.

제 몸이 점점 굳어지는 것에 근육을 풀어보라면서. 그런데 정말 마사지를 하고 온 날은 몸이 굳어지는 현상이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아픔을 덜 느끼게 되더라고요. 병원에서도 근육마사지가 병을 호전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권유하고. 그래서 날만 새면 마사지를 받으러 다녔어요.

그런데 저희 집 형편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라, 병원 치료비도 벅찬 형편인데다 식당을 쉬면서 그동안 모았던 돈도 바닥이 보이고. 취업한 남편의 회사도 사양길이라 언제 그만두게 될지 위태위태했고. 그러니 문득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깟 돈 때문에 내가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직접 마사지 기술을 배우기로 했지요. 남편은 힘들지 않겠냐고 했지만 제 생각이 확고하니 나중엔 적극 도와주더라고요.”

 베체트를 딛고 피부마사지 숍 운영, 일의 보람도 크다 

병을 이기기 위해 시작한 제2의 인생에 그녀는 1년 만에 피부마사지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단다. 그리고  집 가까운 동네에 피부마사지 숍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병을 관리하기 시작했단다. 

 “2년을 하니 단골들이 늘기 시작하더라고요. 정말 전 제 가게에 오는 손님에게는 최선을 다했거든요. 더욱이 피부를 접촉하는 것이라 손님들에게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날은 금방 알잖아요.그러니 어떻게 소홀해요.

일손이 부족해서 숍에 사람을 두었는데도 손님들은 다 저만 찾더라고요. 물론 제 몸 관리도 역심히 했지요. 그렇게 꾸준하게 마사지를 하니 몸이 좋아지고 살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일에 대한 욕심이 났고요. ”  

 예고 없이 찾아온 베체트를 딛고 일어서자 최 씨는 일에 대한 강한 의욕에 현재는 여의도의 ‘건강마사지 숍’을 확장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그녀는 많은 고객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고 찾아와 주니 고맙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몸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하단다.

또 이곳에서는 고객층도 다양해서 사람과 어울리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고. 정치인부터 연예인 증권가 고객층까지. 그러니 요즘 그녀는 인생이모작에서 전에 없던 삶의 활력에 매일 환하게 웃는단다. 

“지금은 제 일을 하면서 몸의 컨디션을 잘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특별히 많이 아프거나 힘들지 않아요. 약을 복용하면서 꾸준히 제 몸의 근육을 풀어주고 베체트와 잘 조절하면서 같이 간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일의 보람도 크고요. 제 손길에 손님들이 편안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저처럼 아파서 오시는 분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실 때 일의 보람을 느껴요.

억지로 일을 하면 힘들고 지치는데  전 이 일이 즐거워요. 현재 숍에 4명이 저를 도와 같이 일을 하는데 다들 가족적인 분위기라 좋아요.” 

시어머님 모시고 살고파... 두 부부 실버타운에 들어갈 계획

이제 그녀에게 바람이 있다면 편한 아파트를 구입해서 시골의 시어머님을 모시는 것이라고 한다.
 “제가 사랑하는 남편의 어머니잖아요. 시골에서 혼자 계시는 어머님을 뵈면 안쓰러워요. 올라오시라고 해도 시골이 편하시다고...돈이 모아지면 이사를 해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리고 더한 소망이 있다면 저흰 자식이 없으니 시설 괜찮은 실버타운 들어갈 자금을 모으는 거고요. 또 여력이 생기면 봉사활동도 하고 싶고요.”

인생 어렵게 생각 하지 마, 바닥을 쳐보는 것도 괜찮아

마지막으로 인생이모작에 승부를 거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말한다.

“인생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처럼 병을 안고 새롭게 출발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시고. 그냥 바닥을 한번 쳐보는 것도 괜찮아요. 그럼 오기가 생기니까. 그 오기로 일설 수 있는 힘이 생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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