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한 북한의 속내, 중국보다 미국에 기울게 된 북한?, 문제적 인물이 된 '존 볼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훈풍이 불던 한반도 정세에 잠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브레이크를 건 북한의 속내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6일에 남북 고위급 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북측은 만남 당일 자정에 갑자기 취소 통보를 해왔다. 먼저 제안하고 15시간만에 취소한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그 배경으로 △한미 연합공중훈련 맥스선더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의 발언 △존 볼턴 백악관국가안보좌관을 비롯 미국의 일방적 비핵화 강요 등 불만사항 3가지를 내세웠다.

북한은 16일과 17일 이틀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런 입장을 발표했는데 보도문·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질의응답 등 여러 방식으로 수위를 조절했다. 

리 위원장은 남북 협상에 가장 많이 참석한 북측 고위급 대표 인사인데. 이번에 우리 정부에 맹공을 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리 위원장은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차후 북남관계의 방향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행동 여하에 달려있게 될 것”이라며 “적대와 분열을 본업으로 삼던 보수정권의 속성과 너무나도 일맥상통”이라고 맹공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부터 우리측 대표와 여러차례 만나 회담을 진행했던 리 위원장의 모습을 무색하게 할만큼 강경한 어조인데 “남조선 당국은 완전한 북핵 폐기가 실현될 때까지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미국 상전과 한짝이 되어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전투 훈련을 벌여 놓고 이것이 북에 대한 변함없는 압박 공세의 일환이라고 거리낌 없이 공언해댔다”고 주장했다. 
 
전날(16일) 김 제1부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한다”며 “북미 수뇌부 회담에 응할지 다시 고려할 것이고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려 든다면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돈이 아니라 체제 보장”을 강조하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공갈”을 경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제1부상은 존 볼턴을 직접 지목해 비난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 제1부상과 리 위원장은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라며 태 전 공사를 거론했다. 

태 전 공사는 2016년 우리나라로 망명했고 14일 국회(자유한국당 소속 심재철 의원 주최의 토론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난했고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시간끌기 기만극에 또 다시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계동 건국대 초빙교수는 16일 페이스북에서 ”태영호라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체제하고는 반대로 나가는 습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북한을 배신하고 오더니 자기를 받아 준 한국의 평화를 향한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언행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정권과 김 위원장에 대해 탈북자 신분으로 공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은 일단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트위터에 빠르게 입장을 밝혔었는데 이번에는 말을 아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리비아 방식이 논의의 일부분이 아니고 미국이 사용하는 모델이라고 인지하지 않고 있다”며 “(리비아 모델) 관련 발언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북핵 해법을 위해) 정해진 하나의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고 트럼프 모델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원치 않는 리비아 모델에 대해서 미국 정부 차원의 공식 부인이 유의미하다.

채드 캐롤 유엔군 사령부 공보실장은 16일 VOA(미국의소리)에 “(북한이 직접 거론한) B-52 폭격기들은 맥스선더에 참여한 적이 없고 전체 임무의 구성과 일정, 시나리오 등은 사전에 결정됐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매우 민감해하는 미국의 공군 폭격기가 한반도 군사훈련에 투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월24일 평창 올림픽이 한창이던 당시 용평리조트 USA 하우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제공)
2월24일 평창 올림픽이 한창이던 당시 용평리조트 USA 하우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사진=연합뉴스 제공)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1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태도에 대해) 어떤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입장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맥스선더 훈련은)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훈련이고 도발적이지 않다. 미국이 전세계에서 많은 동맹국들과 하는 것이고 수십 년 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맥스선더 훈련은 백 대변인의 말처럼 매번 해왔던 연례행사이고 이미 11일부터 시작된 터라 북한이 먼저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15일에도 한창이었다. 앞뒤가 안 맞는 측면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태 전 공사의 김 위원장 비난과 미국과의 협상력 차원이 북한의 진짜 속내로 풀이된다. 

유시민 작가는 17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최근 자신들이 밟고 있는 행보는 ‘도박’과도 같다고 주장했다. 

유 작가는 “지금까지 미국과 힘 겨뤄보겠다고 핵과 미사일을 몇 십년에 걸쳐서 비용과 국제 제재를 이겨내고 해왔는데 이걸 하루 아침에 다 버리는 거다. 이걸 버림으로써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해보면 무지무지하게 불안할 거다. 이게 만약 중간에 핵 폐기했는데 협상이 깨지고 트럼프 대통령이 나 몰라 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발언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부정적인 제스처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유 작가는 한국과 미국은 얻는 게 명확하지만 북한은 엄청 큰 손해가 예상되는 도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캡처사진=jtbc)

김 위원장이 대외적으로 관련 입장을 공표하면서도 북한 인민을 대상으로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 호전적인 강경파를 달래려는 의도로도 읽혀진다.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과 협상 국면의 커다란 방향이 후퇴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많다.

jtbc <뉴스룸>은 17일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볼턴 보좌관의 오크리지 핵무기 폐기 발언 등으로 북미 간 채널이 잠시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대화 채널은 재가동됐을 것”이라며 “겉으로는 북미가 날카로운 발언을 주고 받고 있지만 이미 다양하게 구축돼 있는 대화 채널을 통해서는 진솔한 대화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16일 <뉴스룸>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미 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 정치적으로 몰락할 수 있으니까 (러시아와 성추문) 스캔들도 다 들고 일어날 거고 재선은 난망이고 그렇게 되지 않겠나”라며 “그런 점에서 지금 볼턴과 같은 그런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하고 폼페이오도 적절한 선에서 북한한테 잘못된 사인을 보내지 말라고 교통정리를 하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이어 22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참모들에 휘둘리지 않아야 된다고 확실하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입력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캡처사진=jtbc)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을 자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캡처사진=jtbc)

2003년 6자회담 당시 볼턴 보좌관과 악연이 있던 스토리를 염두에 두고 북한이 김 제1부상을 내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그만큼 현재 북한 입장에서 볼턴 보좌관의 강경 발언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유화적인 말과 대비되는 볼턴 보좌관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등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경제적 지원을 통해서 한국만큼 잘 살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바로 그 선 비핵화 후 경제지원 모델인데. 그러니까 폼페이오와 볼턴이 역할 분담을 하는 게 아니라 볼턴이 하는 리비아 방식을 폼페이오가 풀어서 얘기한다고 즉 북한은 둘이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백악관은 한 차원 더 강도높게 압박하는 PVID(영구적인)를 언급했다가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기존의 CVID로 협상 의제를 최종 확정했다. 

폼페이오가 처음 주장한 PVID에 대해서 협상용 던지기라고 규정한 정 전 의원. (캡처사진=MBN)

이와 관련 정청래 전 의원은 14일 방송된 MBN <판도라>에서 “PVID는 영구히 핵을 없애라는 것인데 이건 북한의 핵 과학자 200명과 핵 기술자 2000명의 머릿 속을 지우라는 것이다. 핵물질과 탄도미사일은 다 폐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갖고 있는 과학 지식은 없앨 수가 없다”며 “(PVID는) 이걸 없애라는 요구였다. 국내에서는 그걸 눈치 챈 언론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남아공이나 우크라이나 같은 경우는 과학자들을 전업시키고 미국으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감시했다. PVID는 인간 문화재를 없애라는 뜻과 똑같다. 북한이 받을 수 없는 것을 폼페이오가 한 번 던져본 것이다. 그리고 평양에 가서는 이건 내가 협상용으로 한 번 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CVID로 돌아왔다. 한 번 쳤다가 다시 내려왔다. 이런 (치열한 물밑 협상) 가운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러 신호들을 봤을 때 북한이 전통의 혈맹인 중국보다 미국에 기울고 있다고 분석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현재 북미 간의 묘한 신경전이 크게 번질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미국 경제권에 들어간 베트남과 중국 경제권에 있었던 북한. 현재 남북미 대화 구조에서 북한이 미국 경제권에 편입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캡처사진=jtbc)

유 작가는 10일 방송된 <썰전>에서 “중국 쪽이 흥미롭다. 왕이 외교부장이 3일 평양을 방문해 외무상과 회담하고 김 위원장을 만나고 갔는데. 중국에서는 실시간 중계하듯이 보도했는데 북한쪽에서는 별 보도를 안 했다. 그리고 이번 판문점 선언에 종전 관련 3자 또는 4자로 표시했다. 굳이 하면 4자로 할 수도 있다는 건데. 1순위 3자에는 중국이 빠지는 것”이라고 운을 뗐고.

이어 “일부 언론 보도에 김 위원장이 베트남식 모델을 선호했다고 나온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사이가 나쁘다. 그래서 미국과 전쟁을 치렀지만 미국의 경제권 속으로 확 들어갔다. 지금 북한은 전적으로 중국에 경제를 의존해왔다. 만약 김 위원장이 정치적으로는 1당 독재를 하지만 경제적으로 제대로 시장경제를 도입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에 걸치는 쪽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크다. 만약 이런 판단을 김 위원장이 했다면 중국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까지 폼페이오에게 전달됐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탁씨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꼬집었다. (캡처사진=MBN)

철학자 탁석산씨도 <판도라>에서 “(극비에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다들 여전히 냉전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다. 패러다임 전환이 안 돼 있다.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났는데 이를 미국에 보란 듯이 만났다라고 하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며 “남북한이 긴밀히 만나니까 중국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 시진핑까지 직접 나서서 자기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북한을 만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예전에는 그 반대였다. 북한이 가서 부탁하는 거였다. 미국한테 그 얘기를 해달라고. 이제는 북한이 곧 트럼프를 만나니까 (중국이) 그럼 가서 원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을 견제하는 것은 남과 북을 대결구도로 보는 냉전적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17일 7시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미국·북한과의 다채널을 최대한 활용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참관·6.15 공동행사 준비 등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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