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나의 맛있는 시 감상(196) // 응, 응, / 권애숙
최한나의 맛있는 시 감상(196) // 응, 응, / 권애숙
  • 최한나 기자
  • 승인 2018.05.23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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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시집 『흔적 극장』 펴낸 권애숙 시인

응, 응,

권애숙

 

살아보는 거다

응달을 먹고 피는 꽃들을 봐라

은방울꽃, 꽃고비, 둥글레

얼마나 씩씩하냐

 

양지만을 지향하는 덩굴들이 시끌시끌

볕 좋은 곳으로 모여들어도

저를 다 푼 향기로 음지를 살려내는 것들

 

온몸으로 은종을 흔든다

사방팔방으로 꽃사다리 놓는다

둥글게 은근하게 바깥을 빛내는 족속들

 

응달에 산다고 꿈까지 응달이겠나

내면 그득 양달을 품고 그늘을 데우는

해맑은 당신의 전부가 빛이다

 

응, 응, 잘 했어 힘내자

달달하게 등 토닥거려주는

당신이나 나나 하층의 힘 센 음지식물들

 

- 권애숙 시집 『흔적 극장』에서. (2018.POEM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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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깊은 골짜기나 혹은 황량한 들판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은 처연하면서도 참 아름답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시절을 따라 열심히 제 사명을 다 하듯 피고지고 피고지는 까닭이다. 이 도시 곳곳, 아슬아슬 매달려 빌딩 청소를 하는 이들, 어두운 새벽길을 말끔히 닦아놓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 거리에 울려 퍼지는 무명의 악사들, 그리고 변방의 시인들... 이루 다 나열할 수 없는 이름 모를 손길들이 우리 사는 세상엔 너무도 많다.

시인의 깊은 눈길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편지 한 장이 먹먹하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양지가 빛나는 것은 음지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고 한탄들을 한다. 하지만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소시민들이 있기에 세상이 빛나는 것이다. 오늘도 어느 외진 오솔길에는 이름 없는 꽃들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는 것이 가슴 뛰게 한다. ‘응, 응, 잘 했어 힘내자 / 달달하게 등 토닥거려주는 / 당신이나 나나 하층의 힘 센 음지식물들’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시인의 따뜻한 편지가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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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애숙 시인 /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5년 <현대시> 등단

시집 『차가운 등뼈 하나로』 『카툰세상』 『맞장 뜨는 오후』 『흔적 극장』

권애숙 시인의 네번째 시집 『흔적 극장』
권애숙 시인의 네번째 시집 『흔적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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