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 작가

[중앙뉴스=이재인] 지나가는 사람마다 우리 채소밭을 보면서 감탄한다.

"어허 농사박사네요"
"아닌데……."
"그럼 무엇을 주었나요?"
“주긴 …….준 것이란 퇴비 좀 주었는데요……."
"허허 교수님도 거짓말하시네요……."

마을 사람들은 정년퇴직한 필자에게 아직도 교수로 호칭한다. 아마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나는 교수라는 호칭보다 작가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작가로서 칼럼을 쓰고 있다.

정신이 있는 한 글을 쓰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그런 내가 시골에 그것도 마을버스가 하루에 겨우 두 번 들어오는 오지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다르게 행동하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하여 멀리까지 가서 구해오는 것이다. 

 보통 농협에서 구하여 심는 씨앗은 이년이 지나면 싹을 틔우지 않는다. 이걸 모르는 농민들은 그해 채소 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지금 현재로서는 많이 계몽되고 홍보하여 실패율이 적지만 씨앗에는 종자권이 있다.

다국적 기업으로 종자권이 넘어간 후에 유전자 조작으로 모든 씨앗이 이년 이상 발아되지 못하게 유전자를 변형시켰다. 이는 엄청난 질서파괴이다. 종묘씨앗을 독점하려는 다국적 기업이 손을 뻗친 게 IMF때였다.

이런 씨앗의 종자권을 다국적 기업에 팔아먹은 우리가 과연 잘했느냐 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여기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는 종자를 변형하기 전의 토종 씨앗은 이년이 아니라 보관만 잘하면 몇 년이 지나도 발아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유전자를 변형시킨 식물은 우선 맛도 좋지 않고 씨앗이 이년 지나면 발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자연법칙을 알고 있는 필자한테 토종 씨앗을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도 가까운 이웃에 생겼다. 애국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 것, 내 나라, 내 민족 이런 중요 키워드는 국적 없는 젊은이한테는 매우 교육적이다. 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개인이 지켜 나아가는 박물관 창업자한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내 것을 지킨다는 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므로 이는 격려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한다. 이게 나라 지키는 일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좋은 토종씨앗으로 나의 집 채소밭은 오월에 접어들어 더욱 싱그럽다. 개천이나 계곡의 식용수 오염방지도 거룩하고 내 조상이 지켜오던 씨앗이 다 팔려나간 뒷마당에서 나는 동네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로 오늘도 텃밭을 매만지고 있다.

아직 모내기가 안 된 논 마당에서 개구리가 개골 대는데 이젠 저 미물도 사라질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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