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일괄타결에서 유연한 입장, 김정은 체제 보장, 북미 정상회담 안 하거나 연기 가능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를 명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국내 언론을 통해 전달된 소식은 북미 정상회담의 연기 가능성과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시간으로 23일 새벽1시 워싱턴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단독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 예정되지 않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핵심 메시지는 3가지였다. 

△일괄타결이 좋지만 물리적인 여건에 따른 단계적 조치도 인정 △약속 이행되면 김정은 체제 보장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 안 하거나 연기 가능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청와대)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물리적인 여건 때문에 완전한 일괄타결(all in one)이 가능하지 않다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이뤄내는 것도 괜찮다”며 “본질적으로 그것도 일괄타결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미국은 한 번에 핵을 없애면 보장해준다는 완전한 일괄타결을 주장했고 북한은 부분적 조치와 보상을 요구하는 단계적 해법을 선호했다.

전 현직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맥 매스터와 존 볼턴은 끝없이 북한을 압박해왔고 CVID(완전하고 검증하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와 PVID(영구적인)를 강조했다. 시간적으로는 빨리 단 번에 해야한다는 것이고 정도로 보면 완벽하게 비핵화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 핵 폐기를 해야 후 보상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확고한 원칙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핵화 조치는 간단한 게 아니고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안에 완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완벽한 의미의 일괄타결은 불가능하지만 미국은 지속적으로 일괄타결을 강조함으로써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조치를 취해야 보상이 가능하다는 협상 전략을 취해왔다.

뉴욕타임즈는 북한이 6개월 안에 핵무기 일부를 넘기고 시설을 폐쇄한 뒤 사찰을 받는 방식을 미국 정부가 선호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일괄타결 방식에서 좀 더 유연해진 입장을 밝혔다. (사진=청와대)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23일 jtbc <뉴스룸>에서 “미국에서 현실적 인식”을 했다며 “그러니까 북한과 교환 없이는 비핵화의 길로 가기는 힘들고 그렇게 단시간에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신고부터 검증 그 다음에 사찰과 폐기 이 과정을 겪어야 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전환이) 상당히 의미있다”고 분석했다.

즉 “물리적인 여건”으로 인한 단계적 비핵화도 일괄타결일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입장을 어느정도 수용할 여지가 있고 그런만큼 과거에 비해 유연해졌다고 볼 수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목표가 있다. 한쪽은 비핵화이고 한쪽은 체제보장”이라며 “이걸 풀어가는 순서가 만나서 합의하고 그 다음에는 실천하고 이행하는 두 단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제일 반대했던 게 조금씩 합의해 나가는 것 잘게 잘라서 합의하고 합의한 만큼 이행하고 새로운 합의하고 또 이행하고 이건 절대로 안 한다고 얘기를 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일괄 합의와 포괄적 타결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행과 실천이 1초 만에 모든 걸(핵을) 다 없애고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말인 즉슨 “없앴는지 검증해야 하고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인지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이행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합의는 한 번에 하는 거고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미국은 이 단계적 이행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단계를 줄이려고 하고 최단기일 내에 단계를 다 밟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이 이행할 것이 있다. 체제보장에 대한 이행이 필요하다. 미국은 (이행을) 단계적으로 하자는 게 아니고 안 하고 있다가 막판에 모든 걸 다 본 뒤에 한꺼번에 하겠다는 게 이제까지의 입장이었다. 이것은 서로 대등하지 않다.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빨리 하라면서 이행은 비핵화하는 거 다 보고 한꺼번에 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노 원내대표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처음으로 미국이 할 수 있는 이행도 단계로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두 단계 정도. 여러 단계는 싫어하니까”라며 “이제까지 미국의 보수 강경론자들이 늘 말해왔던 모든 걸 다 보고 확실히 한 뒤에 보따리 푼다였는데 중간 보따리 하나 풀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암시했다. 최근 북한의 태도를 달래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안전 보장은 처음부터 했던 얘기로 북한이 CVID를 하면 김 위원장은 행복해지고 북한은 부유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18일 공개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1차 확대회의 장면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생각해보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한다”며 “북미 수뇌부 회담에 응할지 다시 고려할 것이고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 가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려 든다면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매달리는 모양새를 취할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6월12일에) 열리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There’s a very substantial chance that it won’t work out)”며 “우리가 원하는 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을 얻어낼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지 못 하면 회담은 없다. 이번에 회담을 못 하면 다음 기회에 하면 된다. 회담이 열리면 좋고 안 열려도 괜찮다”고 말했다.

김지윤 연구위원(아산정책연구원)은 23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북한이 상당히 세게 얘기를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거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꼭 열릴 거야 열리고야 말 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솔직히 체면 떨어지고 사실 그러긴 좀 힘들다”며 “(내가 볼 땐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열리면 정말 좋고 서로에게 굉장히 좋은 건데 안 열릴 수도 있고 나중에 할 수도 있고. 이 정도면 굉장히 북한한테 달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유화책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던 존 볼턴 보좌관을 만난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조금 우려스러운 지점을 환기했다. 

정 전 장관은 “우리한테 부담이 많이 넘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시진핑 만난 이후에 북한 태도가 변했다고 자꾸 말하는데.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다시 한 번 만나든지 해서 북한 태도를 다시 변화시키라는 그런 얘기인 것 같다. 좀 복잡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차 북중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존 볼턴의 발언 때문에 김정은이 놀라서 시진핑한테 쫓아간 거다. 리비아식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되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회담을 불러내놓고 밀어 붙이려는 모양인데. (중국에게) 회담장에는 못 들어오지만 밖에서 응원이라도 해 달라는 요청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은 건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즉 “원인 제공을 자기네가 했다는 생각은 못 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고만 불평하고 결과를 가지고 한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며 “회담을 안 할 수도 있다. 회담하게 만들고 싶으면 북한을 다시 한 번 설득해서 트럼프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김정은이 확실하게 동의하도록 만들어 놔라. 그 조건을 만들라는 얘기다. 지금 한미 정상회담에 혹 떼러 갔는데 부담이 좀 많아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리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고 또 희망하고 있지만 미국의 국익에 맞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북한과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운전수로서 북미 간의 중재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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