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예고대로 표결 불성립, 향후 국회 의사일정 논의에 부정적, 총리추천제를 중심으로 권력구조 논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야당의 사전 예고대로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에서 폐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6일 발의한 개헌안은 2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가 모자라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못 했다. 기명 투표를 진행했지만 명패수를 확인해보니 의결정족수(재적 288명의 3분의 2인 192명)가 부족했고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이날 본회의에서 투표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114명으로 78명이나 모자랐다.

대통령 개헌안이 끝내 표결 불성립으로 폐기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세균 국회의장은 “명패 수를 확인한 결과 참여의원 숫자가 의결정족수인 재적 3분의 2에 미치지 못 해 법적으로 투표 불성립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새로운 개헌안을 발의할 수는 있지만 이번 개헌안을 다시 표결하는 것은 헌법 규정상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개헌은 대부분 권력자의 의지로 이뤄졌기 때문에 국회에서 대통령 개헌안이 폐기된 것은 처음이다.

원내 모든 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대통령 개헌안의 자발적 철회를 요구했던 만큼 투표에 불참했다. 평화당과 정의당 소속 의원들은 본회의에 모습을 보였지만 투표가 시작되자 퇴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외에 민중당의 김종훈·무소속 손금주 의원은 투표에 임했다.

야당은 권력구조 등 개헌안의 내용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지고 그것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갈등이 심해지고 이로인해 개헌 논의는 더욱 더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무위원석에 자리잡은 총리와 장관들. (사진=박효영 기자)
국무위원석에 자리잡은 총리와 장관들. (사진=박효영 기자)

당연히 민주당은 야당을 비판했다.

박경미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개개인이 헌법기관 자체인 국회의원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자기모순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역사는 대선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린 개헌 무산의 책임은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에 있음을 온전히 기록할 것이고 오늘 국회의 모습은 누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세력인지 당리당략에 따라 내팽개치는 세력인지를 똑똑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야당은 오로지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에만 매달려 온갖 이유를 들어 개헌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하더니 결국 당리당략에 따라 개헌안 표결 자체에 불참함으로써 국민의 뜻을 배반했다”며 “다수 야당의 오만함을 보여줬다”고도 밝혔다.
 
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야4당이 모두 대통령 개헌안 철회를 요청하고 부결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본회의 표결을 강행했다”며 “개헌 무산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려는 지방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술수이자 야 4당과의 협치 포기”라고 반론했고 최경환 평화당 대변인은 “투표 강행으로 개헌 동력이 약화되고 개헌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모든 야당은 대통령 개헌안을 철회하고 국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세균 국회의장도 간접적으로 청와대에 개헌안 철회를 전달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청와대는 귀를 닫고 야당과 국회의장의 요구를 묵살했다”고 비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권성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청와대 거수기, 청와대 국회 출장소와 같은 오명이 붙은 민주당은 끝내 청와대의 시나리오대로 영혼 없이 대통령의 명을 받들었다”며 “보수 진보 구분 없이 모든 야당이 반대하는 청와대 주연 개헌 쇼의 충실한 조연 역을 담당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가 있는 여당을 보고 대한민국 삼권분립의 유명무실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진보 정당인 정의당으로서 개헌 표결에 불참한 것이 많이 부담스럽다. 실제 정의당원 및 민주당원으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이에 김종대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표결 전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집권 세력은 개헌안 발의가 아니라 성사로 국민에게 심판받아야 한다. 그런 책임과 의무가 오늘 이 표결로 무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악수하는 이낙연 국무총리. (사진=연합뉴스 제공)

애초에 야당이 우려한대로 여야 개헌 논의는 물론 추후 국회 의사일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민생입법협의체가 운영되고 있고 28일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다시 정쟁거리가 생겼으므로 장담할 수 없다.

야당의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회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개헌 논의를 서두르지 않았고 일정 로드맵을 합의하는데도 소극적이었고 대여 공세만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가 가시화되자 이것이 동력이 돼 국회가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낸 것이 사실이고 그런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야당 의원들이 위헌 상태의 국민투표법(재외국민의 국민투표 불가능)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데 이어 개헌안 표결이라는 헌법적 절차마저 참여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부과한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개헌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앞으로 새로운 개헌의 동력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본회의에 불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본회의에 불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박효영 기자)

향후 개헌 논의의 핵심 쟁점은 결국 권력구조다. 민주당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명확한 권한 분리에 기반한 대통령제를 고수하고 있고, 한국당은 대통령과 총리 간의 내외치 담당을 구분한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야3당(바른미래당·평화당·정의당)은 그 절충안으로 ‘총리추천제’를 제시했다. 

이것이 대통령제에 기반하면서도 국회의 입김이 반영된 총리가 대통령을 적절히 견제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여야 모두 만족할 수 있다는 취지다. 

당장 야3당이 단일 개헌안을 마련했고 곧 공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구체적인 총리추천제의 모습을 기준으로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의 총리 추천 방식·총리의 권한·대통령과의 조화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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