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배 편집국장
김경배 편집국장

[중앙뉴스=김경배]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기대하던 우리로서는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시간으로 24일 22시, 미국 워싱턴 시간으로 24일 9시에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식이 타전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서한의 형태로 “전 세계적으로는 해로운 일이지만 북미 양측 모두를 위해서 싱가포르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란 뜻을 받아 달라”며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의 배경에 대해서 “애석하게도 최근 당신들이 발표한 성명에 담긴 엄청난 분노와 적개심에 근거해 나는 이 시점에 오랫동안 계획했던 당신과의 만남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북미 정상회담의 취소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은 충격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은 당혹스럽고 난감하기만 했을 듯하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을 99.9%로 확신하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의식, 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를 갖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라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당혹스럽지만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조율하며 북미 두 정상을 다시 회담 테이블에 앉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욱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24일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한 ‘완전한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북부핵시험장)을 폭파해 폐기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 폐기를 언급한 지 34일 만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해 폐기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선언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 9일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나름의 성의를 보였다고 판단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이 받은 충격은 상당할 듯하다. 하지만 북한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대처하는 외교술을 펼쳤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5일 북미정상회담과 관련,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면서 "한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미대화가 무산되더라도 이미 핵실험장 폐기와 미 인질 3명 석방이라는 실리를 얻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잃은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계 외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에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여운을 남겨놓은 것은 이러한 부담에 대한 나름대로의 복안일 수 도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에 앞서 펼치는 기선잡기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만일 정상회담의 일방적인 파기의 주인공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고 김정은 위원장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점이다. 아마도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은 여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적인 여론이 비등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도 북미 정상회담 무산의 이유로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강경하고 적대적인 대응을 들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단초를 제공한 것도 미국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모든 잘못이 마치 북한에 있는 듯한 이분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정치와 외교는 상대적이다. 그 상대성 속에 어느 한쪽의 이야기만 귀담아 듣는 것은 곤란하다. 현실의 문제를 냉정히 분석하고 차분히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수읽기에는 이 같은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해빙 분위기를 잘 추슬러 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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