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 / 수필가
박종민 시인 / 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갈수록 인심도 인정도 메말라가고 각박해져가기만 하는 사회이다. 심각한 일자리에 힘겨운 경제사정, 풀리질 않는 취업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라도 하듯 좁디좁은 취업의 문(門)에 몰려드는 인파 등등 사회경제난의 영향이리라 싶다.

가까운 이웃끼리던 친한 친구끼리던 그저 탁 터놓고 기탄없이 이야기하기가 버겁다한다. 이리저리 삶이 힘들다고 아우성들 친다. 좌고우면을 하면서도 정작 가야할 길일지 건너야할 물길일지를 구분하며 분간하느라 여념이 없는 형국이다.

마땅히 옳은 답이 나와 있는 사안이라 하더라도 그에 따른 의견을 얘기하면 누구는 긍정을 하고 누구는 부정을 하고 있다.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이 함께 얼 키고 설 켜있는 것이다. 사회구성원상호간에 이해득실을 떠나 공존하면서 공감한다는 게 그리 쉽질 않다.

같이 살아 존재하는 것이 공생(共生)이며 공존(共存)이 아닌가. 공존하는 공간엔 당연히 공감이 따라야한다. 공존하기에 공감해야 하는 것이다. 공존에 공감이 더해져야 다툼이 없다.

함께하는 삶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공감의 틀을 탄탄히 잡아야하고 공감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한다. 공감 없는 공생공존은 부실하다. 마치 모래성과 같다. 누구든 이질감을 버리고 동질감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며 봉사하고 희생할 때라야 공감의 빛이 난다. 

  우리 사회 일상 속엔 어느 계층을 불문하고 사안, 안건마다 그 어느 국면이던지 항상 공존하는 것과 공감하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일이기에. 공존은하데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론 공감은 하지만 일부러 반대를 위한 비공감일 수도 있다.

이런 게 우리의 실상이며 세상사다. 피할 수 없는 모둠 살이 사회 질서구조이며 철칙이고 철학이라 하겠다. 사안을 두고 공존은 하고 있을지언정 공감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있다.

이를 어찌 해야 할까? 구성원 상호간에 의견의사통일을 이뤄내야 한다. 대인관계에 있어 생각과 생각사이 느낌과 느낌 사이 시각과 시각차이 청각과 청각차이 미각과 미각 차이 후각과 후각의 벌어진 사이사이를 좁혀나가는 노력을 먼저 해나가야 한다.

양보하고 이해하여 각각 상반된 의식과 인식관계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벌어진 견해 차이를 좁혀나가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공감한다는 것은 하나의 에너지를 크게 확대해 나가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에너지이면서도 시너지이다.

의사를 주고받고 절충하고 나누어 상호간의 수평적인인간관계가 균형적으로 유지 발전됨으로서 일이 만들어지고 성공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정 직장 사회가 원만하게 이뤄져 나가는 것 아니겠나.     

  공존은 공통된 목표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사회구성원의 역할은 참여와 이해와 양보가 우선하는 상호간의 원만한 소통이다. 고르지 못한 편견과 집착은 버려야한다.

다만 교류(交流)하고 교감(交感) 소통함에 있어서는 교류하는 사이가 너무 가깝고 밀접하게 치우치면 부작용도 생기게 된다. 마치 울창한 숲속의 나무가 너무 빽빽하면 삭정이가 슬듯 하는 이치와 같다. 독자 독립적이어야 하는 개인이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적당하고 적절한 관계의 공간을 두고 거리를 두며 공감을 찾아야만 한다. 삶에 있어서 공존은 하데 공감은 사안별로 시시때때로 그에 맞게 적절하게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렇게 해소돼야 발전하고 번영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다.

필수로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존중, 이해해내는 노력은 있어야 하리라. 다함께 공존하는 속에서 그에 알맞게 공감이 따라야 만이 인심도 인정도 돈독해지며  우리네의 삶이 번영하면서 윤택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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