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을 말하는 민주당의 이율배반, 민주평화당·정의당·민중당의 적극적인 반대, 한국당과의 야합, 최저임금 삭감법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 본회의에서 긴급 필리버스터가 열렸다. 주제는 최저임금에 상여금·복리후생비·교통비·식비 등이 포함되는 법률안에 대해서다. 

2017년 6월부터 11개월 간 치열하게 논쟁에 부쳐졌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민중당의 김종훈 의원은 주어진 5분의 시간보다 3배를 넘게 써서 반대 토론을 했다. 동료 의원들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원성을 쏟아냈지만 꿋꿋했다.

김종훈 의원은 무려 17분이나 반대 연설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개정안은 최저임금액을 월 단위로 환산한 금액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임금 이외에 특별히 지급되는 현금 급여로 일종의 보너스),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시키고 매년 그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24년부터는 모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시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각종 수당을 산입하게 되면 많은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올라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일부 노동자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이미 오른 임금조차 삭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원들이)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면 2018년 기준(7530원 x 주 52시간 x 4주)으로 매월 기본급 157만원을 받고 여기에서 상여금 50만원과 복리후생비 20만원을 받는 노동자 A씨가 있다고 했을 때 A씨는 월급이 합계 227만원이다. 하지만 상여금은 최저임금의 25%(39만2500원), 복리후생비는 최저임금의 7%(10만9900원) 이상은 못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여금 10만7500원(50만-39만2500)과 복리후생비 9만100원(20만-10만9900원) 즉 20만7600원이 깍이게 되어 206만2400원의 월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되려 월 실수령액이 깎인 A씨는 내년에 최저임금이 올라도 받는 돈은 같다. 그래서 조삼모사다. 최저임금도 올리고 일반 수당(상여금과 복리후생비)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임금 구조에서의 기본급 비중을 높여가는 근본 개혁이 중요한데 그런 고민없이 조삼모사를 조사모삼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신보라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이번 개정안을 주도했고 본회의에서도 찬성 토론을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물가는 계속 오를테니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보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중산층이 물가 인상분에 비해 소득을 더 많이 얻게 되고 그게 소비로 연결돼 경제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핵심이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물관리일원화법 외에 다른 법률들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하지만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시킬 시간이 되자 1시간 가까이 찬반 토론이 이어졌다. 상대적으로 가진 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보수 정당(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동자에 임금을 덜 주게 되는 이번 법률안에 대해 찬성했다는 것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재석 의원 198명 중 찬성 160표·반대 24표·기권 14표로 의결됐는데 우원식·정재호 의원만 반대표를 던졌고 김해영·이학영·어기구·손혜원·민병두·기동민·우상호·이인영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이외에 모든 민주당 의원은 불출석했거나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 160명 반대 24명 기권 14명의 결과로 통과된 개정안. (사진=박효영 기자)
대부분의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은 찬성표를 던지거나 불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사진=박효영 기자)

세월호 변호사로 불릴만큼 약자를 위해 힘써왔고 현장에서 노숙하고 다닌다는 명예로운 별칭 ‘거지갑’으로 불린 박주민 의원, 국정원 댓글조작을 파헤치던 진선미 의원, 군인의 기본권을 위해 노력했던 이철희 의원, 정의를 외치며 범죄 피해자를 위해 힘써온 표창원 의원 등 모두 젊은층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정치인이다. 하지만 이날 이들은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 배경은 뭘까.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16% 이상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사용자위원(9인)·공익위원(9인)·근로자위원(9인)·특별위원(3인)으로 구성된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이런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한정애 의원이 본회의 자기 자리에서 찬성 토론을 하기 위해 메모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환노위원장으로서 이번 개정안을 중재하고 주도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제는 한국의 임금 구조가 기본급 외에 각종 일반 수당의 비중이 꽤 된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법정근로시간 외에 추가 노동과 휴일 노동에 대해서 사용자측이 임금을 덜 주기 위해 꼼수로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도입했다고 성토했다. 기업들이 최대한 일을 시켜먹고 그것에 대해서만 돈을 지급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갈수록 최저임금이 오르게 되면 아무리 월급 400만원 이상을 받는 중상계층의 노동자도 기본급 비중은 낮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해당자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당연히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아왔지만 최저임금은 계속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철회하지 못 하겠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일자리 안정기금 지원과 민주당 차원의 산입 범위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근본적인 처방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중산층이 튼튼해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임금 구조 개혁(기본급 비중 확대)’이 필요하고, 저임금 노동자와 중소기업 간의 약자 갈등을 부추길 게 아니라 ‘건물주의 과한 임대료·높은 카드 수수료·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대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경제 민주화 정책과 법률을 추진해야 한다. 

이 대표는 경제민주화 법률을 통과시켜서 중소기업의 지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은 적극적으로 이번 최저임금법에 대해서 반대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부터 외롭게 분투했던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입구에서 열린 정의당 차원의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이 대표는 △환노위에서 교섭단체인 ‘평화와정의의 모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날치기 됨 △노동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은 경제민주화 법률로 다뤄야 함 등 3가지를 주장했고 “환노위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곳”이라며 “수년 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경제 민주화 법률에 대해서는 처리해야 한다고 안달복달하는 의원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을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재벌 대기업의 편들기로 일관했던 기존 기득권 세력과 집권여당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실제 ‘상임위 법안소위 →상임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대통령 공포’로 이어지는 입법 과정에서 가장 첫 번째 절차인 법안소위는 끝장토론을 통한 만장일치가 기존의 관행이다. 하지만 교섭단체 간사 자격으로 이의를 제기했던 이 대표의 의사는 무시됐다. 교섭단체 소속 간사는 상임위에서 의사일정 합의를 하는 국회의 기존 관행대로 봤을 때 강행 처리의 소지가 다분하다.

한편, 정의당과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평화당도 이번 법률안에 대해 당론으로 반대를 결정했다. 

김광수 평화당 의원은 본희의 반대 토론에서 “문재인 정부가 슬그머니 줬다 뺏는 최저임금 삭감법을 강행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그렇게 비판했던 박근혜 식 줬다 뺏는 기초연금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입만 열면 적폐세력이라는 한국당과 기득권을 지키는데 있어서 똑같다. 민주당은 4인 선거구 쪼개기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한국당과 야합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명환 위원자은 대정부 강경 투쟁을 예고했다. (사진=민주노총)
민주노총은 이번 개정안을 최저임금 삭감법이라고 정의했다. (사진=민주노총)

이와 관련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8일 성명을 내고 “개악 법안 통과의 주역은 한국당이 아니라 민주당임을 분명히 한다. 평균 재산 23억, 연봉 1억4000만원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이 자본과 재벌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확인해줬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저임금 노동자에 임금 삭감이 없다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직접 삭감하는 법이다. 나아가 최저임금보다 더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까지도 삭감해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게 만드는 법”이라며 “이제 사용자 맘대로 상여금 쪼개기를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전국 각지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자행될 것이다. 특히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모두가 산입 범위에 포함되는 2024년이 되면 노동자 전체의 임금수준이 급속히 하향평준화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불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정부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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