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추사체, 광개토대왕비 판본체 널리 알리고파...

추사 김정희연구회 부회장 이숙자(62세)씨 (사진=신현지 기자)
추사 김정희연구회 부회장 이숙자(62세)씨 (사진=신현지 기자)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눈물을 흘렸을지 지금에도 우리는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죽도록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아들을 위해 일찍이 사회로 내몰려야 했던 앞 세대의 많은 여성들. 그런 여성들에게 배움의 열망은 꿈에서조차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라 삶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사)한국미술협회 분과이사와 추사 김정희 연구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숙자 (62세)씨도 그 중 한사람이었단다.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 늘 가슴 한구석이 휑하기만 했다고.

하지만 이제 그녀는 원도 한도 없단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녀가 자력으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현재 대전대학교 서예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니.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추사 김정희 연구회 부회장으로 우리고유 글씨체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일로 인생 이모작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 부족함을 아는 건 절대 부끄러움이 아니죠. 부족함을 알고서도 배우지 않는 게 오히려 부끄러움이죠. 그래서 지금껏 전 ‘부절아무이학’을 제 좌우명으로 삼고 부지런히 배우며 살고 있어요.”

5월 마지막 날. 마주앉은 이숙자 씨는 늦깎이 공부에 좀 창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한마디로 일축한다. 그러니 여느 여성과는 다른 독특한 색채감에 그녀 인생이모작의 튼실한 작황이 예감된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배움의 갈증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아마, 제 세대는 많이 공감할 겁니다. 우리 세대는 남자가 우선이었다는 것을. 그러니까 집안의 남자를 위해서 여자들은 많은 것을 양보하고 포기해야만 했어요.

특히 공부는 더 그랬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에서 3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아들만 공부를 시키셨어요.

그 때문에 저희 딸들은 초등학교만을 졸업하고 일찍 사회로 나와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결혼도 일찍 했고요. 다행히 결혼생활은 평탄했어요. 아들과 딸도 낳았고. 그런데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은 휑하기만 했어요.

생활에 특별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늘 공허했어요. 그러니까 배움의 갈증 때문이었어요. 그것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녔는데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아이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서예도 배웠고요. 그때 처음 서예를 접했어요. 그런데 절더러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그 말에 제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진=신현지 기자)
(사진=신현지 기자)

결혼 13년 차, 양원주부학교, 성지고교를 찾아 배움의 길 열어... 

자상한 남편과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도 늘 가슴 한 구석이 채워지지 않아 헛헛했던 그녀에게 배움의 계기가 찾아온 건 결혼 13년 차의 어느 날, 방송에 양원주부학교 방영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단다.

“아침 TV를 보는데 눈이 확 떠지더라고요. 마포에 있는 주부학교인데 저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성인들이 모여 공부를 하는 모습이더라고요. 그 방송을 본 그 다음날 바로 학교를 찾아갔어요.

솔직히 처음엔 좀 쑥스럽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막상 학교를 찾아가고는 그 생각이 깡그리 없어졌어요. 학교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어요.

다 저처럼 배움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라 동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용기도 생기고. 등교 때면 몇 번의 차를 갈아타고 학교를 가야 하는데도 3년 내내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전혀 힘든 줄도 몰랐고 그냥 매일 즐겁기만 했어요. 오전 공부를 마치고 부랴부랴 돌아와 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는 일도 전혀 벅차지 않았어요. 아니, 공부한다고 혹 아이들에게 소홀할까 각별히 신경을 더 썼어요.

그런데 양원주부 학교는 정식 인가가 나지 않은 학교라 따로 검정고시를 봐야만 했어요. 양원주부학교 1년 과정을 거쳐 일성여상 2년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장을 따냈어요. 그러고는 곧장 화곡동의 성지고등학교를 갔지요.

그러면서도 서예는 놓지 않고 따로 공부를 했어요. 89년에 아이들 어릴적 서예지능협회에 입선을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제가 서예에 푹 빠지게 된 거지요. 매일 국전지 열장을 넘게 글씨를 썼어요. 그 덕분에 2002년에 서울시장상을 수상하게 되었어요. 2003년에는 초대작가에 입문을 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제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되었던 거지요. 대학에 가자는 생각요. 2004년에 대전대학교 서예학과를 수시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

2004년 대전대학교 수시 입학... 추사 김정희 연구회 회원전에 21년간 작품출품

그러니까 그녀는 늦깎이 학생으로 중고교 과정을 거쳐 대학교 서예학과를 들어가고서야  타는 목마름에서 해방이 되었단다. 아니,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달라졌다. 그동안은 뚜렷한 목표점이 없었던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 의식은 인생이모작의 시초가 되었단다.

“제가 대학을 가려고 했던 것은 끝까지 공부를 마치려는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우리의 전통글씨체인 서예를 계승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고등학교 과정을 하고 서예를 하면서 그런 목표점이 뚜렷하게 생기게 된 거지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고부터는 모든 걸 그 방향으로 향해 나갔어요. 그룹전과 개인작품전은 물론 휘호대회부터 온갖 서예대회에 나가 실력을 다지는 것에 주력했어요.

다행히 결실은 좋았어요. 현재 서예계의 활동에 제 영역을 크게 넓혀놓았으니. 또 무엇보다 추사 김정희 연구회 회원전에 21년간 작품을 출품했던 게 보람이었어요. 현재 추사 김정희 연구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갈 길은 멀죠. 그 길을 향해 부지런히 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중학교 검정고시 시험장에 도시락 싸들고 응원 온 고마운 남편  

그녀가 그렇게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가는 동안 가족들은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로 자청했단다. 특히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중학교 검정과정을 치루는 시험장에 도시락을 싸들고 응원을 온 만큼 그녀의 배움의 길에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야속할 때도 많았단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직장 때문에 해외로만 다녀야 했어요. 그 때문에 둘째 아이도 남편 없이 혼자 낳아야 했어요. 그러니 야속할 때가 많았지요. 하지만 본인은 얼마나 더 힘들고 외로웠겠어요. 또 그런 남편 덕분에 제가 공부를 마칠 수 있었으니 감사하지요. 아이들도 아무런 탈 없이 잘 자라주어 고맙고요.”

지역동사무소의 서예교실, 인원 더 늘려 달라...인생이모작 보람 느껴

10년 넘게 공부하는 내내 곁을 든든히 지켜준 가족들이 한없이 고맙다는 그녀는 현재 대전대학교 박사과정에 이어 구로지역에서 한자급수 학원인 심운서당을 운영하고 있다. 또 구로구협회 사무차장으로 지역주민들을 위한 동사무소의 서예교실을 열고 있다. 

“구로동사무소의 서예교실은 특별히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인원은 25명으로 한정이 되어 있는데 인원을 더 늘려달라고... 그런데서 보람을 느끼지요.”

2017년 서예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숙자 씨 (사진= 이숙자 제공)
2017년 서예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숙자 씨 (사진= 이숙자 제공)

김정희 추사체, 광개토대왕비 판본체 널리 알리고파...

이처럼 자신의 일에 뿌듯함을 보이는 그녀에게 앞으로 계획을 묻자 서양의 글씨체에 밀려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글씨체를 보존 계승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각종 서예대회에서 심사를 맡고 있는데 우리의 전통체가 많이 사장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후학들에게 김정희 선생의 추사체를 널리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어요.

특히 광개토대왕비의 판본체를 후학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광개토대왕비의 예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글을 그대로 사장시킨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커다란 손실이지요. 우리만의 독특한 글씨체를 널리 알리고 지켜내는 일이 앞으로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부절아무이학(不切我無以學)'부족함을 알고 자신을 꺾는 것은 결코 부끄럽지 않아...

마지막으로 이숙자씨는 배우지 못한 것은 절대 부끄러움이 아니라며 지금이라도 그 부족함에 자신을 꺾고 배움의 길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꿈, 포기하지 마세요. 그 길로 꾸준히 나가세요. 그럼. 어느 순간 내가 그 목표지점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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