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 박근혜와 이명박 대응방식 닮아
‘양승태’ ·· 박근혜와 이명박 대응방식 닮아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06.0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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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의 존재,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화법, 양승태의 전면 부정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 도의적 책임만 사과한 뒤 나는 모르는 일, 사법의 일반론만 강조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역시 법률가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응방식과 판박이였다. 법적 책임을 피해가기 위해 궁리를 한 것으로 보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종의 ‘사법 농단’으로 번진 이번 사태에 대해서 ‘가정법에 따른 도의적인 사과’를 했고 ‘그럴 리가 없다’ 식의 논법을 구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일 14시 경기도 성남시 자택 주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있을 때 법원행정처에서 뭔가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었고 만약 사실이라면 막지 못 한 책임이 있다고 통감하고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사과 말씀을 드리고 또 그런 일로 마음 고통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사과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의 해명은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바 없고 재판 거래를 통해 박근혜 정부와 흥정한 적 없음 △재임 때 상고법원을 추진했는데 이에 반대한 법관에게 불이익을 준 적 없음 이 두 가지다.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인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로서만 이렇게 표현하는 건 부족할 정도로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재판 독립의 원칙을 정말 금과옥조로 삼는 법관으로서 42년을 살아온 사람이 어떻게 남의 재판에 관여하고 간섭을 하고 꿈을 꿀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서 “대법원 재판의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법원 전체를 그렇게 재판을 의심받게 한 적이 없었다. 혹시 국민 여러분께서 이번 일로 대법원 재판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다면 정말 그런 의구심을 거두어주실 것을 내가 앙망한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4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은 4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의혹을 부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2017년 4월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일었고 1·2차 조사는 별 내용이 없었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도해서 꾸린 특별조사단이 5월25일 발표한 3차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410건의 문건이 나왔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법관을 조직적으로 관리했다고 볼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개별 법관 뒷조사(사찰)·청와대 관심 재판 결과 보고’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예컨대 문건 82번(말씀자료)을 보면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 “사법부가 VIP(박근혜 전 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 이런 대목이 있다.

그 사례는 구체적으로 △(과거사 정립) 국가배상 제한 △(자유민주주의 수호) 이석기와 원세훈 사건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통상임금 사건 △(노동개혁 기여) KTX 승무원 사건 △(교육개혁 초석)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5가지다.

법원행정처의 문건대로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거래를 했는지 사실 여부는 추가 조사와 수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법원행정처가 그런 불법적인 의도를 가졌었다는 것만큼은 명백한 사실이다. 

유시민 작가는 5월31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두 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하나는 우연히 일어난 판결들 중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좋아할만한 것만 골라서 모았을 수도 있고 또 하나 더 큰 의혹은 실제 그렇게 가도록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와 함께 그렇게 되도록 영향을 미쳤는가. 아직 확실한 근거는 부족하지만 의심은 가는 그런 게 있다”고 정리했다.

기자의 매서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 한 양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사법부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중 나한테 보고 안 되고 넘어가는 것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보고되는 양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걸 내가 다 기억하고 소화할 수 없다. 일회성 보고는 금방 잊고 결과 조치된 후 사후 보고되는 것도 있다. 모든 것을 사법부 수장이 다 보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특히 불미스러운 일을 막지 못한 점을 죄송하다고 했는데 아랫 사람이 다 했다는 건가라는 질문에 “무슨 내용인지 나중에 파악해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410건의 문건에 대해서는 “그 문건이 어떤 내용인지 작성한 사람과 읽는 사람이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 문건을 단정해서 사실을 만들어 나가선 안 된다”고 답했다.

지시없이 문건이 작성됐냐고 재차 묻자 “무슨 문건인지 알아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며 아직 특별조사단의 구체적인 조사 결과에 대해서 언론 보도를 본 것 수준으로만 알고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수많은 KTX 승무원들을 비롯 여러 재판 피해자들이 이미 검찰에 고소했고 배당까지 됐기 때문에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가 있는지는 추후 가려지겠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이런 입장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원조직법 19조에 근거를 두고 있는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이 총괄해 사법 행정에 관해 공무원을 지휘 감독하는 기구로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출신)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관할 법원의 행정 사무와 직원을 감독한다. 

5월29일 방송된 jtbc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성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에서 일하기 위해 안 수석부장판사에게 아부를 떨고 있다. (캡처사진=jtbc) 

성공충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제49부)는 “안 부장님이 얼른 가실 때를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평생을 법원행정처에 계셨던 분이니까 행정처 차장 거쳐서 대법관 이후 대법원장까지 가실길이 다 정해져 있는 분 아닙니까. 어차피 가실길 어서 가셔야죠”라고 아부했다. 

안내상 수석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민사)는 “판사답지 않게 사교성 좋고 활달한 것도 장점이죠. 관리자급으로 올라갈수록 외부를 상대해야 하니까. 우리 성 부장님이 왜 그동안 행정처 근무를 안 했지”라며 아부하는 성 부장에게 좋은 자리에 갈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실제 원작 소설을 쓰고 드라마의 극본을 맡았던 문유석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는 21년 법관 경험을 녹여내 스토리를 만들었고 그 좋은 자리는 ‘법원행정처’다. 

오랫동안 꽃보직과 승진 코스를 밟지 못 한 성 부장은 “제가 원래 좀 잡초 스타일입니다. 육군본부 보다도 최전선에서 깡치 사건을 해치우는 게 체질에 맞습니다.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라고도 말했다. 

육군의 핵심인 육군본부처럼 사법부의 핵심은 법원행정처이고 그동안 행정처 근무를 못 해본 자신의 처지를 자조한 것이다. 

전국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이 5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흥정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면담을 마치고 나와 면담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보수사기관장이 그러듯이, 양 전 대법원장은 분명 재임시에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말씀자료와 동향 문건을 받아보는 관행을 그대로 다 누렸다.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최고의 컨트롤타워이고 전체 법원 조직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 총괄 수장이었다. 

그렇다면 법원행정처의 불법 문건 작성에 연루됐거나 그것을 방관 또는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고 아니면 유 작가의 두 번째 가설처럼 문건 내용대로 박근혜 정부와 딜을 시도했고 그 방향으로 재판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면 그야말로 중대한 사법 농단이 되는 셈이다. 현재 피해자들의 고소로 재판 거래 의혹은 수사에 착수할 수 있지만, 개별 법관에 대한 사찰 의혹은 대법원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 김 대법원장의 고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판결권을 쥔 대법원이 수사 의뢰를 하는 것 자체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무척 부담스럽다.

한편, 김 대법원장은 이날 전국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의 대상이 됐던 법관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국민들의 무거운 질책을 견디고 계신 전국의 모든 법관들께도 마찬가지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혀 양 전 대법원장의 의혹 부인과는 반대로 현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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