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별

최세라

 

 

흠 있는 사과라고 합시다

씨앗까지 곰팡이 핀 열매라 합시다

쩌그렁 울리는 양은 밥그릇 시절

절로 읊어지는 그날 저녁의 외침들

사랑이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굳이 사랑하려는 네 가 구질구질하다고

사랑이 사랑으로 시들지 않으려면

바람 불어도 겹쳐지지 않는 도미노처럼

멀찍이 따로 서자는 그 말 방점들

개나 줘버리고 돌아선 사랑

개나 줘버린 두근거림

개나 줘버린 긴 포옹

개나 줘버린 눈맞춤

과도로 떼어 먹기에도 울컥한

사과라고 합시다 썩은 내가

향기를 압도하는 검은

환부라고 합시다

늪이라고 합시다 냉큼

개나 줘버리려고 손을 뻗으면

집기도 전에 허물어지는

내 몸이라고 합시다

죽는 날까지 개에게 갖다 줘야 할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당신이라 합시다

 

- 최세라 시집 『복화술사의 거리』 (시인동네.2015)

----------------------

  관계의 영속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어떤 악연이든 필연이든 마음에 남아있는 한 관계는 통증으로 지속될 수도 있음을 본다. 그 어떤 비수로도 잘라낼 수 없는 인연의 상처가 피를 흘릴 때마다 스스로를 책하며 차라리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화자, 그 사랑의 선택을 비굴한 기억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모순된 몸부림을 읽는 것 같다. 뭉클거리는 눈물맛이 쓰고 아리다.

세상에 흠 없는 인간이 있는가? 사랑 앞에 완벽한 자 있는가? 사랑이기에 그 모든 것을 덮고 뜨거울 수 있었는데... ‘기하급수로 불어나는 당신’은 그리움의 멍에, 아니 애증으로 남은 상처의 표현이리라. ‘끝없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만 했던 시인의 이별은 그 사랑의 끝없는 깊이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철없던 시절의 사랑 앞에 미안하다. 내 청춘의 어느 모퉁이 그 이별의 정거장에 참회의 꽃은 피고 지는지... 어느 날 문득 기하급수로 불어나 있는 그리움을 발견한다.

[최한나]

------------------------

최세라 시인 /

서울 출생

2011년 <시와반시> 등단

시집 『복화술사의 거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