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짙어지는 ‘사법농단’ 의혹 ·· 재판권을 넘긴 ‘뇌물’
더 짙어지는 ‘사법농단’ 의혹 ·· 재판권을 넘긴 ‘뇌물’
  • 박효영 기자
  • 승인 2018.06.07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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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사건과 전교조 법외노조 등 청와대가 좋아할 재판으로 거래하려 한 정황, 권력 실세 인사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대응 방향 모색, 영장주의까지 넘기려고 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뇌물죄는 공적 권한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행위를 처벌한다. 공무원에게 돈을 줘서 자기 이익에 부합하게끔 권한이 행사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법적 제도가 공적 가치에 반하도록 만든 것은 무거운 범죄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극구 부인하는 입장을 냈지만 사법 농단의 증거는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임 기간 동안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했지만 퇴임 이후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했던 정황이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임 기간 동안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했지만 퇴임 이후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했던 정황이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시 대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바람대로 상고 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정부에 재판권을 뇌물로 바치려고 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이 5일 98개 문건의 원문을 추가 공개했는데 이게 다가 아니다. 조사단이 정무적 판단에 따라 아직 덜 공개했다. 그게 228개에 이른다. 

안철상 현 법원행정처장은 특별조사단의 장을 맡아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대표회의는 이미 대법원에 410개 문건 전체를 공개하라고 촉구했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부분적으로 공개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안철상 특별조사단장은 앞으로 더 공개할 의향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일단 추가 공개된 문건의 내용은 이런 거다. 

법원행정처는 2015년 2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공작 관련 2심 재판에서 유죄가 내려지면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이 약화될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을 했다. 그래서 2심에서 박근혜 정부가 좋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 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전교조가 해고된 교사를 제명시키지 않으면 법외 노조가 될 것이라는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대해 대법원이 파기환송으로 신속히 결정해서 청와대의 환심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는 원 전 원장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좋은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양승태 체제의 행정처가 상고법원이라는 숙원사업을 성취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환심을 사려고 했던 적나라한 모습이 기록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조, 전교조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약칭을 만들어 핵심 인물군의 동향을 쉽게 정리하기도 했다. CJ는 치프 저스티스로 양 전 대법원장을 의미했고 VIP는 박 전 대통령을 뜻한다. CJ와 VIP의 독대 이후 VIP의 상고 법원에 대한 관심이 충분히 생겼다는 식으로 동향을 파악했고 이런 인식에 따라 대응 방향을 설정했다. 최고 실세였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설득하려고 했고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무특보를 맡았던 윤상현·주호영 의원의 심기도 살폈다. 

예컨대 행정처는 이 전 비서실장이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고 떠오르는 실세라는 점을 파악해서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접촉해야 한다는 전략을 짰다. 주 의원은 판사 출신이기 때문에 상고 법원 설치에 힘써줄 “우호 세력”으로 포섭해야 한다고 했고 윤 의원은 “대통령에게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라며 챙겼다. 그야말로 국가정보원이 따로 없었다.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법원장들이 순국선열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몇 가지 더 있다.

상고 법원의 판사 선발권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주려고 했던 정황도 공개됐다. 

박근혜 정부의 케치프레이즈였던 ‘창조 경제’가 추진되면 여러 기업들 간의 국제 소송전이 빈번해질 수 있는데 행정처는 ‘상사 법원과 중재 기구’를 설치해 정부에 잘 보이려고 했다. 

영장주의는 헌법에 명시된 형법의 대원칙이다. 현행범이나 긴급체포의 규정이 있지만 기본 전제는 영장없이 체포하고 구금하고 압수수색하면 안 된다. 하지만 행정처는 상고 법원 설치에 회의적인 법무부와 협상하기 위해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체포 전치주의’를 도입하려고도 했다. 법무부와 검찰이 원하기만 하면 피의자를 체포하고 구속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던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 재심을 신청할 수 있도록 ‘영장 항고제’까지 검토했다. 물론 현재도 기각됐더라도 피의자에 대한 동일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를 밝혀내 혐의를 좀 더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영장 항고제는 그런 것 없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체제 하의 법원에서 피해를 본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는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현 사태의 본질을 짚었다.

“지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진정성어린 주장으로 국민들에게 의심하지 말라고 계도하고 꾸짖는다고 해도 재판 신뢰가 과연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사법부가 스스로 재판 외관의 공정성을 해친 상태에서 국민들의 의심을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꾸짖을 처지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적어도 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내부)든 사법부 외부든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봐야 된다.” 

“재판 개입 여부가 입증되기 어려운 걸 알고 재판 개입이 입증되지 않았으면 이 모든 사법부가 한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런 프레임 하에 재판 개입이 없었지 않았느냐 이렇게 지금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양 전 대법원장이) 책임을 돌리는 것 같다.” 

“결국 법원행정처가 그 당시 스스로 재판을 청와대 협력 사안이라고 자랑을 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에 그런 사법부의 치부를 알린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신뢰를 떨어뜨린 게 아니다. 사법부의 분란도 김 대법원장 때문이 아니라 그런 국민들의 의심을 자아낸 반헌법적 행위를 한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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