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범 교수.(자료사진)
이윤범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교수

[중앙뉴스=이윤범] 한 동안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끝났다. 우리는 이처럼 국제질서를 크게 변화시키는데 기여한 정상들의 만남을 세기의 회담이라고 부른다.

우연한 기회에 핑퐁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화해무드는 이 지구촌에는 영원한 적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72년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는 것은 그자체가 크나큰 반전이었다.

뒤이어 보수 반공주의자인 레이건 대통령도 1986년 소련연방의 고르바초프와 회담을 계기로 수 십 년 동안 무수한 피를 흘리게 했던 동서의 냉전을 종식시켰다.

2018년 새해 북한 신년사의 화해 메시지를 감지한 청와대의 신속한 대응으로 북한 선수단과 대표팀의 평창올림픽 방문이 성사되었다. 이어서 역사적인 판문점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고모부를 무참히 총살하고, 이복형을 독살시킨 김정은과 문대통령의 만남을 보고 전 국민은 충격과 혼란의 순간을 겪어야만 했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형과 동생의 재회 같은 분위기마저 느낀 국민들은 오히려 미움보다는 동족의 연민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탄력을 받아 문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로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성사 되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이제 북한은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 난제의 시작은 지금까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불사하는 발언을 마구 쏟아 내던 북한이 왜 이 시점에서 화해 무드로 전환했을까 하는 점이 가장 핵심이라 하겠다.

북한으로서는 핵이 가장 중요한 안보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핵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연일 피폐해가는 북한 경제를 보면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정권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경제를 옥죄고 있는 주체는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개선 없이는 북한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베트남도 현재 북한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1975년 남북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후 북베트남 정부는 전역에 사회주의 통합을 이행하였다. 통합은 실패로 돌아갔고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아사 직전에 몰렸다. 심지어 인플레이션이 1,200%까지 치솟았다.

결국 1986년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경제부문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공표했지만 경제는 살아나지를 못했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광범위하게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풍부한 원유를 채굴해도 수출을 할 수 없었다.

마지못해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경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손을 벌려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에 국제관계는 상당히 복잡한 상황에 있었다.

미국과 중국이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베트남과 중국이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캄보디아 때문이었다. 중국이 캄보디아를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점령하여 중국과 전쟁까지 치러야 했다.

중국의 메시지를 받은 미국의 요구사항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수였다. 결국 베트남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철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베트남의 경제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북한의 절실한 문제도 바로 경제에 있다. 핵 포기의 대가로 경제지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에 의해 북한에 가해진 경제제재를 푸는데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를 벗어난다 해도 근본적인 경제문제가 완전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려면 경제개혁과 개방을 단행 할 수밖에 없다. 저렴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대외경제를 추구해야하기 때문에 개방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경제개혁을 단행한다면 중국과 베트남의 모델을 답습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개혁을 단행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달리 북한이 경제개혁과 개방을 선택하려면 모험이 따라야 한다.

소련과는 달리 중국과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문에서 개혁을 단행하였다. 즉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부문에 자본주의를 도입했던 것이다.

공산당 집단지도체제를 시행하고 있었던 중국과 베트남이 경제개혁 이후에도 안정적인 공산당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연성과 융통성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방에 따른 갑작스런 변화에도 나름대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보인다. 세기의 정상회담에 당당히 응하는 김정은 정권도 국내적으로 안정이 되어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3대 세습으로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집단지도체제 특유의 유연성이 없다.

개방을 하면 외국의 문물이 밀물처럼 몰려들 것이고 북한 내의 국민들의 삶도 크게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 동안 철권통치를 통해 경직된 정권이 개방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면 북한의 장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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