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고진감래’를 말했다.

지금은 처참한 선거 결과에 직면했고 그만큼 고통스럽겠지만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에서 오는 폐해에 공감하는 창당 정신이 있는 만큼 언젠가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19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용문 캠핑장에서 바른미래당이 워크숍을 열었고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김 위원장은 “바른미래당의 창당 과정을 되돌아보면. 낡은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더불어민주당과 철지난 반공보수에 사로잡힌 자유한국당을 모두 배격하고 제3의 정당을 꿈꾸기 위해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 노선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적폐이고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는 탓을 하고, 한국당은 민주당의 독선을 빌미로 강하게 반발할 명분을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한국 정치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것이 바른미래당의 문제의식인데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김 위원장은 “내부에서 개혁보수니 중도 개혁보수니 논란이 많았다. 언론에서 근거없는 결별설까지 보도했다. 더 이상 이런 억측이 나오지 않도록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다만 진보와 보수 둘 중 하나를 강조할 게 아니라 중도 개혁이라는 큰 틀 안에 다양한 성향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2시간 넘게 토론을 진행한 뒤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통해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에 엮이지 말자. 국민들이 거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 왜 우리 스스로 얽매이는가”라는 의원들의 의견이 많이 있었다며 “우리 당내에는 보수적인 정치인도 있고 진보적인 정치인도 있다. 하나하나 규정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특히 “지금은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아젠다별로 어떤 것은 진보적으로 어떤 것은 보수적으로 갈 수 있고 이념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그러니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바른미래당의 의원들 간의 큰 이견이 없다. 쉽게 쉽게 합의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민들이 바른미래당의 정체성이 뭐냐고 하면 규정을 당할 수밖에 없어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내부의 색깔을 정립했다면 다른 정치 세력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로 넘어갈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하고 어떤 스탠스로 어떤 분야는 인정해주고 또 비판해야 할까”라며 예컨대 적폐청산, 남북관계 개선 문제, 교육 정책, 경제와 민생, 일자리 정책 등 여러 분야에서 각각 구체적인 전략과 입장으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토론해보자고 의원들에게 제안했다. 

또한 자유한국당과 민주평화당 등 다른 야당과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같은 야당이지만 한국당은 원조 적폐이기 때문에 분명한 차별화를 이뤄야 하고 호남 지역 정당인 평화당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왜 선거에서 참패했는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종훈 IGM 컨설팅 대표는 기조 발제를 맡았는데 그야말로 바른미래당을 향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대표가 주목한 지점은 △급한 통합 △안철수의 사심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실패 3가지였다.

이 대표는 “비극(선거 참패)의 출발은 급조된 통합에서 시작됐다”며 “(나는) 국민의당 창당은 찬성했지만 바른미래당 창당은 반대했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통합과 꼼수 통합은 문제다. 이것은 (통합을 밀어붙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사심으로부터 기인하고 그러다보니 통합 이후에도 융합이 잘 안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선거 과정에서 공천 논란이 있었고 후보자(박종진 송파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후보)가 전직 당대표를 상대로 쓴소리를 하는가 하면 집안 소란을 전국민이 다 봐야 했다”며 “그렇게 무리해서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면 대권주자 급에 맞게 서울시정 비전을 통해 국가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다. 지난 대선에 비해 별로 나아진 점을 보여주지 못 했다”고 비평했다. 

특히 통합 때처럼 “안 전 대표의 조급증”이 문제였다며 “빨리 출마해서 대권주자로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고 이후 상황 인식도 안이했다. 내가 대선 주자인데 그래도 2등은 할 것이고 1등을 위협하는 2등으로 양강 구도는 만들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을 했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의 정치적 이념 좌표에 대해서 이 대표는 “경제는 진보이고 안보는 보수로 하겠다고 유승민 전 공동대표가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경제와 안보 모두 약간 보수 쪽에 와있다. 이번 지방선거의 표심은 진보쪽으로 내려왔고 그런만큼 민심과 동떨어졌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에 바른미래당의 기회가 있을텐데. 

이 대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52시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대기업 구조조정 압박 등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이슈가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한꺼번에 불거졌기 때문에 바른미래당이 경제 분야에서 좀 더 보수적이어도 좋다고 조언했다.

반대로 안보 분야에서는 시대적 흐름상 좀 더 진보적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보면 더불어민주당에 몰표를 준 것 같지만 한국당의 몰락과 극우화로 인해 “중도의 광활한 대지가 확 열렸다”며 “여전히 많은 국민들께서 바른미래당이 좋은 모습을 못 보여주니 문재인 정부에 지지를 몰아줬다. 극단적인 좌와 우를 견제할 세력에 대한 기대감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진솔하게 표현하면 “결혼해놓고 계속 싸우면 외부에서 볼 때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우면 이혼 안 하냐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지만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조언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안 전 대표의 측근 의원들이 현장에 많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인데 이 대표는 “안철수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 정계 은퇴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력으로 안 된다. 3년 정도 재충전의 시간을 갖거나 아예 떠나는 게 맞다”고 뼈아픈 말을 했다. 

이어 “2012년 방송에서 안철수 편은 아니지만 안철수 신드롬의 편이라고 스스로 말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국민들 이미지가 안 좋다. 여전히 미숙하다는 그 이미지를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방탄소년단도 처음부터 이렇게 잘 되지 않았다. (안 전 대표가 재충전을 한 뒤 다시) 컴백할 기회는 있다.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공백 기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이 대표는 “(바른미래당이) 홍준표 식으로 가면 안 된다. 가끔 그 선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며 공격적이고 비난 일색의 대정부 스탠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끝으로 이 대표는 결국 “공격적인 인재영입을 해야한다”며 50대 이하 전문성이 있고 참신한 정치 신인이 유입되도록 정당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고언했고 “이 정도 준비가 됐으면 이혼 안 하는 것을 대전제로 민주평화당이나 자유한국당 중에서도 뜻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영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